쌤은 동생네 집에 가있는건 어떻냐고 물었다. 갈 수는 있지만 좁은 집에서 자는것도 불편하게 지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본가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난 잠을 좀더 잘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약물치료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했다. 일을 안하면 좋을것 같았는데 또 다른 실존의 문제가 생겼다. 일 집 만 해서 제3의 장소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 걸까. 나중에는 산책도 하고 펫도 생각해보라고 하였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말해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한단 건데 솔직히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걸 누구한테 말해서 마음이 편해본 적이 없다. 수치심만 들었을 뿐이다. 이젠 상담도 병행해야 하겠지만 폭력적인 아버지와 수동적인 어머니 그 아래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던 무력한 아이로 이어지는 클리셰. 직장에서의 성추행과 물리적 폭력행위를 옛 연인, 또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말했던 적이 있지만 그건 그냥 말해짐으로 끝이었다. 그로 인해 내 과거의 상처가 줄어들거나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다시 해야 한다니 솔직히 상담도 안하고 싶었다. 그냥, 그런걸 타인에게 말하고 나서의 소모감이 내겐 너무나 컸고 불신이 커진 상태다.
근데 선생님은 사랑하는 상대, 애착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도 그게 맞는지 모르겠고 그런 관계가 없는 난 실패자처럼 생각돼서 눈물이 났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반발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런거 없이도 잘 살았는데 왜 나를 바꾸려고 하지'라는 마음이었다. 누군갈 만나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는 과정 전반이 너무 피곤하다고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오픈했다가 거절당하는 리스크도 감당해야 한다. 그럴 필요가 없을만큼 천천히,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스며들다가 운이 좋게 마음이 맞아도 둘 사이의 갈등이나 위기를 겪어낼 자신이 없다.
솔직히 사람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다.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모두 떠났는데, 또 그짓을 해야한다고? 그럴바엔 차라리 벽에 대고 말하는 방법을 택하겠다. 상담이 시작되면 그림치료 같은걸 한다는데 그런걸 하고 또 실패자처럼 비죽비죽 울 나를 보는 것도 꼴보기싫다. 나를 사랑하라고 말하는데 날 사랑하는건 어떻게 하는건데. 요샌 내 감정이 내 감정인지 모르게 별거 아닌거에도 눈물이 나고 지난것에 대한 후회가 든다. 유예기간 처럼 2달이 남아있지만 그 이후에 회사라는건 이제 도저히 못다니겠단 생각이 든다. 집을 팔고 원룸으로 가더라도 일은 안하는게 맞다. 그래서 일단은 집을 파는게 목표고 전업투자자로 생계를 유지하는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