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오브오키(Bridge of Orchy)
언 호수(Loch Earn)를 떠나 얼마나 달렸을까, 우리는 다시 멈춰설 곳을 찾았다. 하이랜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때, 정말 작은 마을인데 많은 블로그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브릿지오브오키(Bridge of Orchy)라는 마을로, 이름 그대로 오키다리가 있는 곳이다. 왜 많은 블로그에서 이곳을 언급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 우리는 가던 길을 잠시 멈췄다.
"여기는 정말 작은 마을인데, 왜 이렇게 유명한 걸까?"
언 호수를 벗어나고 얼마 후에 우리는 A82번 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A82번 길은 글래스고(Glasgow)에서 하이랜드로 이어지는 길로, 하이랜드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 우리는 중간에 합류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도로에서 경치가 아름답다고 알려진 곳은 대부분 우리 합류 지점 이후라서 시작부터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 도로를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가 잠시 멈출 마을인 브릿지오브오키에 도착했다. 건물도 몇 개 없는 정말 작은 마을인데, 마을 주차장이 꽤 넓었다. 주차장을 보면서 작지만 많은 여행객이 오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우리도 주차장 한 쪽에 차를 대고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나오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오키다리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브릿지오브오키 기차역이 나온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다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다리를 본 후에 시간이 된다면 기차역까지 가보기로 했는데, 결국 기차역은 가보지 못했다.
갈림길을 지나 조금만 가면 바로 오키다리를 건널 수 있다. 평범한 돌다리처럼 보이는 오키 다리는 사실 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다리는 18세기 중반에 군사 목적으로 영국군이 건설한 다리이다. 처음에는 군사용 목적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트레킹 코스로 이용되고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브릿지오브오키가 정말 작은 마을임에도 여행객이 꾸준히 찾는 이유는 하이랜드의 주요 장거리 트레킹 코스의 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그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숙소이다. 오키 다리 아래로는 산과 구릉 사이를 지나 이곳까지 온 오키강의 물줄기가 흐른다. 온통 녹색뿐인 풍경에 물이 흐르면서 만들어내는 약간의 흰색이 포인트를 더하고, 물소리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했다. 싱그러운 색감과 소리가 더해져서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작은 잔디밭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사람은 캠핑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텐트 앞에 앉아서 물이 흐르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한곳에 진득하게 머물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지금까지 '여행'이라고 하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최대한 많은 것을 봐야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여행하면서 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여행하고 돌아오면 더 피곤해지는 상황이 되곤 했다. 여행 계획을 널널하게 세우더라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바쁘게 돌아다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하지만 짝꿍을 만나고 이러한 강박관념이 조금은 옅어졌다. 짝꿍은 돌아다님과 휴식을 적당하게 섞으면서 여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행을 가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되, 그 사이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넣어서 여행하면서도 재충전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도중에 너무 피곤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우리가 계획한 것을 포기하고 쉬는 것을 선택할 때도 있다.
"저들처럼 한 곳에 머무는 여행은 어떨까? 그 또한 매력이 있겠지?"
"그렇겠지? 다음에 저렇게 여행해 볼까?"
이러한 짝꿍을 만나고, 함께 여행하면서 나와 짝꿍은 둘 모두의 여행 방식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도 하루에 너무 많은 것을 넣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 계획을 바꾸고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넣어둔다. 이번 스코틀랜드 로드트립도 너무 빡센 일정으로 세우지 않았다. 그 일정대로 우리는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적당히 관광도 하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오롯이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게 된 것이다. 나와는 정반대의 여행 방식을 갖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여행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들처럼 휴식과 재충전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가더라도 막상 가면 그 동네를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생기겠지만, 언젠가는 그 욕구마저도 통제하면서 쉬는 여행을 가보고 싶어졌다. 아마 그런 여행을 가게 된다면, 짝꿍이 좋아하지 않을까.
브릿지오브오키는 정말 작은 마을이고, 우리가 트레킹을 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짧게 보고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사실 짧게 보고 끝내기에는 아쉬울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그곳에 진득하게 머물러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오래도록 머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브릿지오브오키를 떠나면서 앞으로 우리의 여행 방식에 조금 더 다양성을 더해보자고 서로 이야기했다. 때로는 바쁘게 돌아다니는 관광 중심의 여행을, 때로는 온전하게 휴식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여행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고 더욱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짧게 브릿지오브오키를 보고난 후, 우리는 다시 A82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얼마 안 가서 다시 멈추게 되었지만... 다음 장소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