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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Feb 09. 2024

[스코틀랜드] A82번 도로의 전망대

툴라호/바호/글렌코 전망대

오키 다리를 짧게 보고 난 후에 우리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기 전에 앞으로 멈춰설 만한 장소를 지도를 보면서 물색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A82번 도로가 워낙 절경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경치를 감상할 만한 포인트가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를 열고 우리 주변을 확대하자 우리가 멈춰설 만한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구글 지도에 친절하게도 뷰포인트(view point)라고 나와있었던 것이다. 



"우리 자주 멈춰서야 할 것 같은데? 너무 절경이야 여기!"

"정말 장엄하다.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


오키 다리 주차장을 벗어나서 5분 남짓 달렸을까, 우리는 다시 차를 세웠다. 브릿지오브오키에서 불과 언덕 하나만 올라왔는데, 차 여러 대가 멈춰있는 주차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투어 버스도 이 주차장에 잠시 들렀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의 모습은 꼭 보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멈춰선 곳이 툴라호(Loch Tulla) 전망대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풍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만큼 우리의 설렘과 기대도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다라랐고 우리는 잠시 말을 잊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커다란 툴라호가 아래에 있었고 그 주변으로 산과 구름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잠시 멈춰서서 풍경을 감상하고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사실 투어버스가 멈췄다가 가는 장소라는 설명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산 꼭대기에 걸려있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참 신비롭다고 생각했다. 흐린 날씨 탓에 깨끗하고 청명한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구름 가득한 날씨가 전해주는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산 정상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구름 사이로 빛이 내려올 때면 그 빛내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이렇게 구름이 가득한 날이었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았다. 이렇듯 여행하면서 항상 깨닫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맑은 날씨에 대한 미련을 갖기보다는 구름 가득한 날씨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에 집중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순간 감상한 모습은 맑은 날 이곳을 감상한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일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더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의 풍경과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툴라호와 그 주변을 바라보면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정말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차를 세웠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바호(Loch Ba) 전망대였는데, 사실 이곳까지 오는 중간에 뷰포인트라고 쓰여진 곳이 두 군데 더 있었다. 모든 뷰포인트에 멈춰섰다가는 오늘 안에 숙소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몇 개의 장소는 과감하게 지나쳤다. 이곳도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주차된 차들이 많기도 했고, 이곳 주차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넜는데 짝꿍이 그 다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다시 멈췄다 가기로 하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다리로 걸어갔다. 사실 정말 작고 평범한 돌다리였는데, 그 다리를 보고 싶은 것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더 보고 싶었다.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툴라호의 모습과는 달랐다. 지도 상으로 볼 때 바호도 정말 큰 호수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산이 있어서인지 호수가 그렇게 크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고 얕은 물이 연달아서 이어지는 일종의 늪지대를 보는 듯했다. 불과 5분 남짓 왔을 뿐인데 풍경은 완연하게 달랐다. 앞서 봤던 것과 비슷한 풍경이라면 짧게 보고 다시 길을 나섰을텐데 사뭇 다른 모습에 우리는 다시 감상 모드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눈을 돌리며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세세하게 관찰했고, 한곳에서 감상이 끝나면 자리를 옮겨서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감상했다. 얕은 언덕을 올라가서 조금이나가 위에서 내려다 보기도 했고, 물 옆으로 다가가서 가만히 물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잠시나마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는 안 멈출 수가 없는데? 이건 너무 웅장하잖아." 


바호 전망대를 떠난 우리는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숙소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A82번 도로는 우리의 발길을 계속해서 붙잡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짝꿍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조수석에서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풍경에 압도당한 채 묵묵하게 운전만 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은 풍경은 바호 전망대를 떠난지 불과 10분만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을 바꾸고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글렌코 전망대(Glencoe Viewpoint)였다. 이곳의 풍경은 앞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또 달랐다. 앞선 전망대는 호수와 산이 함께 보이고 비교적 평탄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는 곳이라면, 이곳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이 가득했다. 큰 나무가 없고 이끼와 같은 잔디와 그 위에는 검은 바위가 이어지는 산의 모습 때문에 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짙은 구름 때문에 우리 주변의 산꼭대기가 어떤 모습인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온통 절벽과 같은 산이 있었다. 그리고 우뚝 솟은 산들 사이로 좁은 길 하나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이 우리가 온 길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었다. 높은 산과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신비로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가득했는데, 산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동화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너무도 이국적이면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그에 압도당하면 할 말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 곳에서 나는 자연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예전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에서 풍경을 감상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 짝꿍을 보는데, 살짝 눈물이 맺힌 듯한 눈길로 할 말조차 잊은 채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에 압도당한 채, 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잊은 채, 그곳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이제 정말 숙소로 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가다 보면 멈췄다 갈만한 장소가 더 있긴 했는데, 다 멈췄다가는 숙소에 너무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곳에 다시 오기로 했다. 그냥 지나친 장소도 구경하고, 글렌코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그 길 위를 다시 한 번 달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웅장한 자연과 함께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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