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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May 04. 2021

런던 근교의 공원 이야기

왕립 부쉬 공원(Bushy Park)

오늘은 오랜만에 런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런던에는 공원이 정말 많다. 런던의 중심부를 보면 하이드 파크가 눈에 들어오고, 런던 외곽으로 눈을 돌리면 수많은 공원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내가 소개할 공원은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다소 떨어져있는 부쉬 공원(Bushy Park)이다. 



왕실 소유의 아름다운 공원, 부쉬 공원


부쉬 공원은 영국 왕실이 소유한 공원 중에서 리치몬드 공원(Richmond Park)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공원이다. 이런 이유로 이 공원은 리치몬드 공원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다. 나도 이 곳을 짝꿍과 함께 갔었는데, 사실 우리도 이 때 리치몬드 공원을 향해 가던 길이었다. 그 곳으로 가던 중에 본의 아니게 부쉬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내 우리는 이 곳에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리치몬드 공원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런던에서 부쉬 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근교 열차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데, 공원이 워낙 커서 주변에 역도 꽤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 햄프턴 윅(Hampton Wick) 역이나 햄프턴 코트(Hampton Court) 역으로 가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일 것이다. 런던 워털루(Waterloo) 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햄프턴 코트 역 바로 옆에는 햄프턴 궁전(Hampton Court Palace)이 있기 때문에 공원과 더불어 관람하기 좋다. 우리는 사전에 계획하지 않고 공원을 찾았던 것이라서 궁전까지는 보지 못했다. 



우리가 부쉬 공원에 발목을 잡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슴들이다. 부쉬 공원을 가로지르는 중간에 양 옆으로 사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인 것을 넘어서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사슴들이 동물원이나 공원에 있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데, 이 곳에서는 공원을 자유롭게 활보하면서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지내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라 더더욱 이 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짝꿍 역시도 사슴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했다. 


사슴을 보기 위해서 부쉬 공원에 멈춰 섰는데, 막상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까 공원이 생각보다 훨씬 컸고 아름다웠다. (이 때는 부쉬 공원이 이렇게 큰 지 몰랐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짙은 녹색의 잔디밭도 나오고, 오리, 백조 등이 떠다니는 연못도 나온다. 사실 산책로라고 딱히 정해진 것도 없어서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면 된다. 우리가 갔던 날이 좀 흐려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것이 한 가지 아쉬움이긴 했는데,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았던 것에 감사했다.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우리이다. 



우리는 공원을 한참동안 걸어다녔다. 사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공원에서 살고 있었다. 공원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많은 동물들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들을 멀리서 구경할 뿐, 그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사람과 동물들이 서로 공존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 중에서도 사슴들에게 공원의 모든 공간은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였다. 그들이 공원의 주인이었고,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은 잠시 들렀다 가는 방문자일 뿐이다. 그런 모습은 사슴들이 차도를 건널 때 잘 볼 수 있었다. 사슴들은 모든 공원이 자기들 집으로 활용하고, 공원 한복판을 차도가 가로지르기 때문에 사슴들이 차도를 건너다니는 일이 꽤 많다. 그들이 길을 건널 때 차도로 가고 있는 자동차들은 즉시 멈추고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슴들이 길을 건너다가 잠시 딴 짓을 하고 있으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짜증이나 초조함이 읽히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원에 머무는 동안에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정말 많이 목격했는데, 단 한 번도 경적을 울리거나 도로의 중앙선을 넘어서 무리하게 지나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공원 안에서 운전을 하기는 하지만 최대한 그 곳에 머무는 동물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오늘은 런던 외곽에 있는 큰 공원, 부쉬 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리치몬드 공원도 한 번 다녀왔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 때는 부쉬 공원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공원 안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니는 사슴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런던에 가게 될 일이 있다면,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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