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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an 26. 2022

영랑호 위를 걸어보기

속초 영랑호수윗길

지난 달에 속초를 다녀왔는데, 속초에서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푹 쉬다 오기로 약속하고 떠났던 속초였는데,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서 짝꿍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다. 그랬더니 짝꿍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보자고 했다. "오빠가 가보고 싶은 곳은 항상 예쁘고 멋있었어" 라는 고마운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해가 뉘엿거리면서 넘어가는 시간에 우리는 영랑호에 도착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 영랑호 위에 새로 만들어진 영랑호수윗길이었기 때문이다. 



□ 황홀한 풍경과 마주하다.


영랑호는 예전에 짝꿍과 속초로 여행을 왔을 때에도 찾아왔던 곳이다. 그때는 차로 한바퀴 둘러보고 말았던 곳인데, 최근에 이곳에 영랑호수윗길이라는 다리를 개통했다. 영랑호를 둘러서 산책하는 길만 있었는데 이제는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생긴 것이다. 이 다리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찾게 되었다. 영랑호수윗길을 만들면서 주차장도 꽤 크게 만들어서 영랑호를 따라가다 보면 주차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그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영랑호 리조트 한쪽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렇게 많은 차량을 댈 수 있지는 않아보였지만, 자리가 있다면 이곳에 차를 대고 영랑호수윗길로 걸어가도 된다. 

우리가 영랑호수윗길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지고 노을이 남아있을 때였다. 밤에 조명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 시간에 찾아갔다. 호수 위에서 노을진 하늘의 모습과 조명이 들어온 영랑호수윗길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겨주는 영랑호는 차분했고 잔잔했다. 물결 하나 없이 정말 고요한 영랑호 위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영랑호수윗길은 영랑호 수면과 정말 가까워서 호수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리가 아주 살짝 흔들리긴 했는데 무섭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몇 발자국 가다가 나와 짝꿍은 그대로 멈춰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침묵한 채 굳어버렸다. 



너무나도 황홀한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영랑호수윗길에서는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을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설악산 방면이다. 영랑호 뒤쪽으로는 설악산이 병풍 역할을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산의 모습과 그 산이 잔잔한 영랑호에 반영되는 모습, 그리고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까지 더해지니까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영랑호수윗길을 3분의 1도 채 건너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설악산과 눈을 마주쳤다. 물론 다리 위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긴 하지만, 그 순간 그 풍경이, 설악산이 우리에게 첫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더욱이 하늘이 그렇게 핑크빛으로 물든 순간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도 잠시 멈춰서서 화답을 해줬고, 강렬했던 첫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 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다리를 걸어갔다. 걸어가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자꾸 설악산 쪽으로 향했다. 핑크빛 하늘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1분 1초가 그렇게 아쉬웠다. 놓치기 싫고, 계속 우리 앞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는데 핑크색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영랑호수윗길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중간지점에는 큰 원형 형태의 광장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는 옅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원형 가장자리로는 밝고 화려한 조명이 그 장소를 빛내고 있었다. 



이 광장에서도 역시나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설악산의 풍경이었다. '계속 보다보면 그 모습에 질릴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봤는데,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그 모습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을 바라보면 영랑호와 동해바다 사이에 있는 도시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속초에 있는 또 다른 호수인 청초호와 비교하면 정말 소박하고 차분한 느낌이 가득한 야경이었다. 우리는 그 광장을 한 서너바퀴를 돌았다. 봤던 풍경을 보고 또 봐도 항상 새롭게 아름다웠고 바닥의 조명 색깔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이제는 돌아가자'라고 얘기하다가도 주변 풍경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되고, 한 번 더 사진을 찍게 되었다. 

우리는 중앙 광장에서 더 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끝까지 건너가더라도 다시 되돌아와야 했고, 더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보게 될 풍경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숙소로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공간의 크기에 비해 꽤 오랜시간을 머물렀는데도 막상 떠나려고 하니까 아쉬웠다. 그리고 다리를 다시 건너서 영랑호 밖으로 나왔다. 영랑호수윗길로 들어갈 때는 그래도 어느정도 밝았는데, 돌아 나올 때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내가 말했지? 

오빠가 가자고 하는데 따라가면 항상 좋다고.

근데 여기는 역대급이네.

내일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



돌아오는 길에 짝꿍이 감상평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수많은 수식어를 말하긴 했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름답다, 경이롭다'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짝꿍에게도 정말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짝꿍이기에 예상했던 반응이긴 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풍경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고, 산이 감싸고 잔잔한 물이 선사하는 편안함과 평화로움에 노을진 하늘이 더해진 그 날의 영랑호의 분위기는 황홀했다. 뭔가에 홀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뭔가 묘한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짝꿍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짝꿍은 영랑호를 낮에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도 가볼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가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쉬움이 남아 있으면 그 장소에 다시 갈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낮에 바라보는 영랑호의 모습은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두었다. 그 모습을 보려면 속초를 한 번 더 가야한다. 물론 그 때도 내 옆에는 짝꿍이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면서 때로는 같은 생각을, 때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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