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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Aug 29. 2020

42, 그에게 경의를

Chadwick Boseman Tribute

피 위 리즈와 신시내티 레즈 경기에서

     

 8월 28일, 그가 죽었다.

 채드윅 보스만, 그가 연기하는 모든 배역은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함께 했다. 많은 이가 그를 ‘최초’의 마블 흑인 히어로라고 칭송했으며, 그와 그의 페르소나 트찰라 국왕을 좋아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내게도 그의 캐릭터, 트찰라는 매력적인 국왕이자, 히어로였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가 마무리된 지금, 나는 채드윅 보스만을 와칸다의 국왕이 아닌 베이스를 훔치며, 모자를 쓰윽 닦는 등번호 42번, 재키 로빈슨으로 기억할듯하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8월 29일(한국시간), 나는 본래보다 조금 일찍 기지개를 켰다. 당초 28일로 예정되어있었던 류현진의 선발 등판 경기가 하루 밀렸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코로나 19도, 궂은 날씨도 아니었다.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일어난 제이콥 블레이크 사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MLB, NBA 등 여러 스포츠 경기가 줄줄이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밀린 류현진 선발 등판 경기에서 그의 등번호는 99번이 아니라 42였다.

 2013년, 양키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백넘버 42가 피치 위에서 떠난 뒤, 42번은 메이저리그 선수 어느 누구도 달지 못하는 전설의 등번호로 남았다. 42는 모든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MLB의 영예로운 등번호다. 다저스타디움에서도, 팬웨이 파크에서도, 부시 스타디움에서도 42는 경기장에서 펄럭이고 있다.

 등번호 42의 주인공은 재키 로빈슨, 라이브볼 메이저리그의 첫 번째 니그로리그 출신 선수였다. 그리고 채드윅 보스먼이 영화, 42에서 연기한 선수이기도 하다.     

 나에게 ‘최초’는 가장 영예로운 찬사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한국 최초의 MLB 선수, 한국 최초의 EPL 챔피언... 이들은 학생들에겐 큰 귀감이 되었고 성인들에겐 자부심이었다. 박지성을 보며, 박찬호를 보며, 이소연을 보며 모두가 ‘대단하다’고 말했지, ‘안쓰럽다’고 말하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영화 ‘42’ 속 채드윅 보스만, 재키 로빈슨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울분을 토하는 모습에 나는 울먹였고 도를 넘은 조롱을 보며 나는 그 위대한 개척자가 안쓰러웠다.

 영화 속 전설적인 단장 브랜치 리키는 니그로 선수를 데려오는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브루클린 다저스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혁명적인 일인 만큼, 단장은 철저한 준비를 한다. 오랫동안 활약해야 하기에 나이가 많지 않아야 했고, 극한의 차별을 이겨낼 줄 알아야 했고, 차별하지 못할 정도의 뛰어난 야구 실력을 지녀야 했다. 그 자질을 지닌 선수가 바로 재키 로빈슨이었다. 그는 모교인 UCLA에서 백인들과 같이 스포츠를 했고 세계대전에서 장교로 복무하며 인종차별을 겪었다. 무엇보다도 야구 센스가 뛰어났다.     

 ‘차별을 이겨내니, 최초가 됐다.’     

 그는 영화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는다. 남부 출신들은 노예와 함께 팀을 이루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어디를 가나 그를 향한 야유와 욕설이 가득했다. 그리고 상대팀은 빈볼로 최초의 흑인 메이저 리거인 재키 로빈슨 멘털을 흔들었다. 여러 일을 겪게 되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단장을 원망한다. 왜 자신을 뽑았냐면서.     

 그가 겪었던 온갖 비난과 고난은 미국을 바꿨다. 미국에서 미식축구는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축제’이고, 야구는 매일 열리는 ‘일상’과 같다. 미국 어딜 가나 연고팀 야구 경기 중계가 틀어져 있다. 인기는 미식축구에 못 미칠지라도, 영향력에서 162경기를 하는 야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매일 그들은 야구 경기 소식을 접하고 재키 로빈슨의 이름을 들었다. 그가 어떤 플레이를 선보였고 어떤 욕을 들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그는 페어플레이를 하는 신사이자, 멋진 플레이를 보이는 선수였다. 욕을 들어도 참았고 뛰어난 실력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개척자였다. 연일 호명되는 그의 이름은 무기력한 흑인들에게 가능성을 줬다. 백인들은 그의 타격 자세를 따라 했고 흑인들은 재키 로빈슨이 되고자 피땀을 흘렸다. 그렇게 지금의 메이저리그가 탄생했다. 백인,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프로 스포츠, 멜팅팟의 미국을 상징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나는 재키 로빈슨의 플레이를 본 적이 없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남아있는 영상들도 구닥다리뿐이다. 그의 도루, 타격, 그리고 능청스러운 미소까지 나는 그때의 재키 로빈슨의 모습을 채드윅 보스만의 얼굴로 기억할 것이다. 동양의 일반인이 최고의 배우에게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최초’가 가는 길엔 고난과 역경이 가득하고 그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배우, 채드윅 보스만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Rest In Peace Chadwick Boseman

On Jackie Robinso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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