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신 일들을 맞이하다.
우주선이 탐험을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중력’이다. 먼저, 지구의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 11.3km/s라는 탈출 속도를 넘어야 한다. 1초에 11.3km를 가는 수준의 속력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40초면 충분한 수준의 속력이다. 이 정도의 속력과 추진력이 있어야만, 우주선은 지구의 중력, 궤도에 갇히지 않고 먼 망망대해로 항해를 떠날 수 있다.
중력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선은 항상 중력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자칫 잘못해서 행성의 궤도에 갇히게 되면 예정된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고 한정된 연료와 에너지로 항해를 하는 우주선의 경우 미션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중력은 우주선에게 언제나 성가신 존재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문제점을 활용하기 위해 고민한다. 인간은 약한 하드웨어를 극복하고자, 뇌의 용량을 채웠고 손으로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결국 인간은 약점은 감추고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지구의 먹이사슬 최상단에 위치에 올랐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성가신 중력을 인간은 슬기롭게 활용하고 있다. 바로, ‘스윙 바이’라는 기술로.
스윙 바이는 쉽게 말하면, 행성의 에너지를 활용해서 우주선을 가속시키는 방법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행성은 우주선이 얻은 에너지만큼을 잃지만, 질량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우주선은 행성의 에너지를 받아 가속을 할 수 있다. 이는 연료를 절약할 수 있어 우주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로 여겨진다.
인터스텔라에서 처음 접한 이 기술은 ‘성가신 존재를 활용하는’ 매력적인 기술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골치 아픈 일이 닥칠 때마다 ‘이것을 스윙 바이 해야지.’라고 속에서 되뇐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 시점이다.
나는 앞으로 1년을 바라보거나,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서 그 1년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날이 아쉽고 그 지난날을 온전히 추억하기 위해 한 단어로 남기는 것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독서로 채웠던 2017년은 ‘개안(開眼)’, 2018년은 자경(自鏡)이었다. 2019년은 새로운 시작이자, 마중물을 대는 해였다. 그리고 2020년은 꿈을 위해 승부수를 거는 ‘분수령’이었다. 힘차게 시작했던 2020년은 역시나 분수령이었다.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학 생활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우연의 일치로 여러 경험을 해볼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둘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실패한 적이 없다. 나는 대학에 오고 나서 바라던 것들을 꽤 쉽게 얻어냈다. 고등학생 때부터 바라던 여행도, 낭만처럼 꿈꿔왔던 해외봉사도, 하나의 전환점이었던 WEST도 언제나 잘 이뤄냈다. 내게 계획은 하나의 ‘도전’이라기보다는 때가 되면 하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19는 차치하더라도, 2020년에 준비했던 것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출판 계획도, 대회 준비도, 어느 것도 말이다. 말뿐인 준비가 아니라 어느 정도 확신도 있었기에, 상심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처음으로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게 됐다.
처음으로 많이 흔들렸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안 되는 순간은 내 인생에 없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조금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결과들을 마주하면서, 앞으로의 날을 되돌아봤다. 내일, 내년, 10년 뒤... 보이지 않는 미래에는 계획한 일보다 계획하지 못했던 일을 마주할 날이 더 많았다. 당장 내년에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로 다가왔다. 언제나 나는 계획을 그대로 해왔는데도. 그리고 나는 그대로일지라도, 내 주변 환경은 하나씩 변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대학에서 졸업반이 되었고 선배들은 하나씩 학교를 떠나갔다. 팀 프로젝트를 할 때면, 나는 높은 학번을 바탕으로 팀장 자리를 도맡았다. 내가 의지하던 것들은 하나씩 사라졌고 나는 이제 홀로 오롯이 서있어야 했다.
2020년, 나는 이 성가신 것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 집단에서 최고 연장자가 되는 것,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는 것, 좌절을 맛보는 것, 모두 오랜만에 만나는 것들이다. 앞으로 조우할 것들도 이런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획하지 못한 불투명한 미래,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가 싫어도 그들은 내 주변에 있는데. 좌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곁에 있을 동반자다. 언제나 청명한 하늘과 푸르른 숲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푸르른 숲이 있기 위해서는 먹구름 낀 하늘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 비가 오더라도, 언젠가는 해가 뜬다. 그저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금을 스윙 바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