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점이다. 시간이라는 태엽 속에서 한 시점을 연속적으로 살아간다. 시계열 위에 놓여있어 우리는 앞으로 갈 기회를 얻지만, 뒤를 돌아볼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
점에게 주어진 축은 단 하나다. 주어진 축을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이동은 고독하다. 내가 x축에서 살아가는 이상, 내가 다른 축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같은 시점에 나와 같은 지점을 지나는 점을 만날 것. 이것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의 궤적이 있다. 올곧은 직선이기도, 포물선이기도, 난해한 복잡계 함수이기도 하다. 각자가 끌리는 것에 따라 그 직선은 방향을 바꿔 여러 영역을 지난다. 그렇게 영역을 지나면서 우리는 우연히 여러 점들을 만난다. 비슷한 영역을 지나는.
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 상대가 항상 그곳에 머물지는 않는다. 잠깐 지나친 나그네, 먼 길을 떠나온 기러기, 낟알을 주우러 온 참새도 그곳을 지난다. 상대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지 않는 이상, 상대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인지, 한달음에 달려온 기러기인지, 목적이 뚜렷한 참새인지 나는 알 턱이 없다. 상대가 달려온 길을 뒤돌아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영역에서 한 점이 찍힐 확률은 0에 가깝다. 지점과 시점이 일치하는 경우는 0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면서 사람을 만난다. 상대를 만났을 때 서로는 같은 시점, 지점에 있지만, 그들을 같은 시공간으로 모여들게 한 것은 그들이 지나온 궤적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가 겪었던 일들, 성장해 온 과정들이 함께 오는 것이다. 그의 행동에는 과거의 생각이 깃들어 있으며, 그의 생각에는 과거의 경험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