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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Aug 19. 2021

주사위는 던져졌다.

갈림길에서 오롯이.


     

 22살 즈음,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약간의 자만. 거만으로 차있었다. 남들과는 다르다며, 누군가의 꿈을 낮잡아봤고 왜 이렇게 살지 못하느냐고 일갈했다. 그런 내게 모든 이들이 택하는 취업은 매력적인 진로가 아니었다. 동나잇대보다 높은 연봉, 한국 사람이면 모를 리없는 회사의 이름값도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밥맛이었던 22살의 나는 보다 기발한, 나의 아이덴티티를 한껏 높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나의 선택은 창업이었다. 지금이야, 주변에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고 창업이 갖는 이미지도 한결 긍정적이지만, 당시에는 창업은 ‘실패할’ 사업과 동일한 의미였다. 부모님 세대에게 사업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란 ‘패가망신’과 거의 동일한 의미였다.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은 당연히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 원하셨고 친구들도 나의 선택에 호기심 반, 의문 반이었다.

 나에게도 창업이 갖는 이미지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의 나는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이었다. 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해 그 리스크조차 나에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참 어리석다.) 나는 AI, IoT, 자율주행 등 당시 화두가 되는 기술과는 동 떨어진 고전 역학이나 다루는 기계공학도에 불과했지만, 훗날의 나는 멋진 대표가 되어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서 여러 경험을 쌓아가면서, 나 자신이 특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상한 머리를 가진 천재도 아니고, 시장에서 내세울만한 무기도 없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능력은 보다 미천한 것이었고 가진 것조차 ‘특별’보다는 ‘독특’에 가까웠다. 내가 가진 거라곤 오직 ‘나다움’ 뿐이었다. 상대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세, 이것이 내가 특별하다고 착각했던 나다움이었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는 창업에 대한 관심이 더 멀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관심은 더해져만 갔다. 단순히 수동적인 강의 듣는 정도에 그쳤던 지난날과는 달리,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전에는 연락조차 하기 어려웠던 분들에게도 용기 있게 DM을 보내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나는 창업이라는 진로에 더욱 매료됐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걸 알지 못한다. 이것이 나 자신이 갖는 한계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비즈니스를 하기로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시장성을 평가받는 무대로 대학원 입시를 택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한다. 대학원은 창업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고, 오히려 안정된 직장인 정출연, 교수로 향하는 길목이다. 좋은 연구실적을 내는 대학원이라면, 안정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신의 직장’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는 이유가 창업이라니. 많은 분들이 물음표를 갖는 이유도 납득할만하다.

 그러나 내가 기술 창업을 마음먹은 이상, 대학원이라는 문턱은 어떻게든 넘어야 할 산이었다. 전세계에는, 한국에도 멋진 기술을 가진 경쟁자들이 많다. 이들과 경쟁이라도 해보려면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 경험을 쌓아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2021년 8월 19일, 나는 가장 염원했던 대학원 한 곳의 입시를 마무리했다. 대학원 입시는 각 대학원마다 조금씩 특징이 다르다. 서울에 위치한 대학원은 교수님과 컨택 여부가 중요하다. 반면, 대전에 위치한 공과대학은 교수님의 의중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학과의 종합적인 평가에 의해 당락이 결정된다. 이런 대학원 입시 특성상, 서울에서 방학기간 동안 인턴을 하고 대전 공과대의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확률이 높다. 그런데 내가 방학기간 동안 전력투구한 대학원은 대전에 위치해 인턴이 갖는 매력이 다소 떨어지는 대학원이다. 만약 같은 시간을 서울 혹은 포항에서 보냈다면, 나는 더욱 안정적으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성적인 선택은 아니다. 나는 방학을 가장 낮은 확률에 배팅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나의 첫 번째 타깃 랩은 여기였다. 2달간 어떤 연구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랩 구성원분들도 출중한 실력을 보유하고 계셨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나 또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분위기도 대학원이 갖는 칙칙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좋은 석사분들 덕분에, 면접 준비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풍족한 지원을 받았음에도 내가 합격하지 못한다면, 그건 경쟁률의 문제도, 대학원의 문제도, 교수님의 문제도 아니다. 온전히 나 자신이 대학원에 맞지 않는 학생임을 뜻한다. 오히려 나 자신이 내린 결정에 미련을 갖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 자신을 더욱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 말이다.     

 이제 수확의 계절이 머지않았다. 내가 옹골찬 열매를 수확하게 될지, 아니면 아쉬움이 가득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아쉬움이 가득한 그 결과조차도 나에게는 소중한 기회라는 사실이다. 만약 내가 그 지점에서 평가를 받지 않고 무턱대고 나의 길을 갔다면 나는 시장에서 버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때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은 나의 가치니,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것이다. 창업이 됐든, 무엇이 됐든 나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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