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위선 사이에서
요한복음 13:12~20[200주년 신약성서]
13:12 예수께서는 그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러고는] 당신의 겉옷을 걸치신 다음 다시 자리를 잡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바를 알겠습니까?
13:13 여러분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하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사실 나는 그렇습니다.
13:14 주요 또 선생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다면 여러분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13:15 내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3:16 진실히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릅니다. 종이 제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자가 그를 보낸 이보다 높지 않습니다.
13: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여러분은 복됩니다."
중동지역은 주변이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건조한 흙먼지로 발이 쉽게 더러워졌습니다. 위생과 청결을 위해 매번 씻어야 하는데, 그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종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사실, 주인의 더러워진 발을 씻기는 행위는 종을 종답게, 더욱 굴종적으로 만들기 좋은 훈련방식이었습니다. 종도 눈코입귀가 다 달린 동등한 사람이기 때문에, 주인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 마음에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를 얻고 싶은 저항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종에 관한 정서는 당시 식민 통치를 하던 로마의 사회 제도를 따르면서 생겨났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자기 민족을 종(노예)으로 부리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직 적대국의 이방인을 종으로 삼았거나, 토지와 재물로도 변상하지 못하는 예외의 경우에만 형벌의 의미로 종이 되게 했습니다. 이 또한 유대인들은 희년 제도를 통해 때가 되면 빚을 모두 탕감해 주고, 노예를 해방해 주어 자유의 몸이 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일은 사회 정서를 뒤바꾸는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랍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지님)이 종처럼 발을 씻겨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분명 그것은 반로마적인 행위이기도 하나, 사회의 구조를 정치적인 행동으로 전복시키는 게 주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16절, 진실히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릅니다. 종이 제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자가 그를 보낸 이보다 높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치 주종관계를 설명하는 기초적인 내용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미 예수님이 제자들의 스승으로서, 주님으로서 그들의 발을 씻기고 난 뒤에 한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어느 인간보다 신처럼 우월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의 자리에 군림하려는 제국주의의 횡포에 맞선 예수님의 일갈이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섬김을 받는 게 아니라 섬기는 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의 바람직한 태도이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고 법칙임을 드러내신 말씀입니다.
이 사랑의 원리는 어렵게 발견해야 얻을 수 있는 복잡한 과학원리가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서 대소변을 치워주고, 먹여주고, 자기 욕구를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밤낮으로 돌보고, 노쇠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살핌을 멈추지 않으려는 부모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시대와 국가와 인종과 생물학적인 종의 형태를 넘어서 존재합니다.
진화론적으로 원숭이가 언제부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을 때, 사회학자들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돌봄 받은 인간의 화석에서부터 인류의 기원을 찾습니다. 부러진 다리에 잘 손질한 부목을 대놓는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치료 흔적이었습니다. 돌봄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랑의 감정과 판단을 통해 가능합니다.
부모와 조상을 추적해서 올라가면 결국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생겨난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랑의 일치를 이루신 그 사랑은 모두가 하나님 아래 사랑해야 할 형제자매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 사랑의 혁명은 단지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일이 아닙니다. 힘의 논리로 굴종시키려는 인간의 강팍한 마음을 뒤집는 주님의 영적인 혁명이며, 지금 나의 마음에 감춰진 야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섬김으로 향하게 하는 사랑의 혁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