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우리에게 고기를 달라!

민수기 말씀 묵상

by 노에시스
민수기 11:10~23[새 번역]
11:10 모세는, 백성이 각 가족별로, 제각기 자기 장막 어귀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이 일로 대단히 노하셨고, 모세는 그 앞에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11:11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11:12 이 모든 백성을 제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11:13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11:14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11:15 주님께서 저에게 정말로 이렇게 하셔야 하겠다면, 그리고 제가 주님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면, 제발 저를 죽이셔서, 제가 이 곤경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11:16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이스라엘 장로들 가운데서, 네가 백성의 장로들 또는 그 지도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일흔 명을 나에게로 불러 오너라. 너는 그들을 데리고 회막으로 와서 그들과 함께 서라.
11:17 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겠다. 그리고 너에게 내려 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백성 돌보는 짐을, 그들이 너와 함께 지게 하겠다. 그러면 너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11:18 너는 또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일을 맞이하여야 하니, 너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라. 너희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이려나? 이집트에서는 우리가 참 좋았었는데’ 하고 울며 한 말이 나 주에게 들렸다. 이제 나 주가 너희에게 고기를 줄 터이니, 너희가 먹게 될 것이다.
11:19 하루만 먹고 그치지는 아니할 것이다. 이틀만도 아니고, 닷새만도 아니고, 열흘만도 아니고, 스무 날 동안만도 아니다.
11:20 한 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줄곧 그것을 먹게 될 것이다. 너희가 너희 가운데 있는 나 주를 거절하고, 내 앞에서 울면서 '우리가 왜 이집트를 떠났던가?’ 하고 후회하였기 때문이다."
11:21 모세가 되물었다. "저를 둘러싸고 있는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고기를 주어, 한 달 내내 먹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시나,
11:22 그들을 먹이려고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그들이 만족해 하겠습니까? 바다에 있는 고기를 모두 잡은들, 그들이 만족해 하겠습니까?"
11:23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 이제 너는 내가 말한 것이 너에게 사실로 이루어지는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볼 것이다."




민수기 11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원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원망은 광야 생활의 어려움이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께 절규하는 장면을 통해서 모세의 지도력에 관한 강한 반발도 원망의 한 이유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민족을 인도하는 자기의 역할이 유모가 젖먹이를 품는 듯한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깊은 원망 속 실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모세는 그런 기분이 든 것일까요?



13절,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원망의 이유는 고기였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다름 아닌 "고기"가 먹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럼 사냥을 하거나, 제사로 올릴 가축을 먹으면 될텐데,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였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그 당시 그들의 인구수가 실제로 60만 명이었다고 한다면 모세의 절규는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문제는 얼만큼의 고기가 필요한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60만 명이 한 명당 고기 ‘200g’씩 돌아간다고 쳐도 12톤입니다. 엄청 많은 양이지요. 그런데 육류 공장의 하루 생산량이 10톤으로 이 양은 ‘12,000’인분 정도라고 합니다. 이 계산대로라면 60만 명의 사람이 한 번 먹을 고기는 500톤이 됩니다. 여기에 30일로 계산하면, 자그마치 1만 5,000톤이 됩니다. 2023년 5,000만 명의 인구의 대한민국에서 수입한 돼지고기가 대략 49만 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많은 양의 고기를 어디서 얻을 것이며, 또 이렇게 운반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고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많은 고기를 광야에서 어떻게 준비할까요?



사람들은 당장 먹을 고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집트로 되돌아갈 기세로 하나님께 불만을 가졌습니다. 우리에게 당장 고기를 달라! 라는 그들의 요구는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모세가 언약이 담긴 돌판을 받고 있을 때, 자신들만의 우상을, 금송아지 신상을 세우던 완악하고 탐욕스러웠던 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고기! 고기! 고기!!!



저도 고기 반찬을 먹기 위해 떼를 쓴 적은 있습니다. 그건 철이 들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투정이었지요. 그러나 문득, 세상을 향해 투정 같은 마음을 품는 저 자신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요구한 ‘고기’는 고기 이상의 걸 의미합니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이 사회의 탐욕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민족의 요구 사항을 어떻게 들어주어야 할지, 대안을 찾기 위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좋다. 너희에게 앞으로 한 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 먹기 싫어질 때까지, 너희가 그토록 원했던 고기를 실컷 먹게 해 주겠다(20절 의역).



모세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려고 양 떼와 소 떼를 잡아 주신다고 할찌라도 그들이 만족해할 수 있겠습니까? 바다에 있는 모든 물고기를 잡아 주신다고 할찌라도, 그들이 정말 만족해 할 수 있겠습니까?"(22절 의역)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줄곧 그것을 먹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탐욕을 향해 달려가는 그 인간의 욕구를 들어주시겠다는 그 결정에 그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는 욕망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려는 막장 열차 같기도 합니다. 사회에 통용되는 암묵적인(?) 법칙들, "괜찮아. 걸리지만 않으면 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남 줘서 뭐하게?" 간교한 이기심이 제 몸을 잡아 끌며 이 열차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은 탐욕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는 이 기차에 제동을 거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세도 고기가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구를 너머서 모세는 멈출지 모르는 그들의 탐욕을 하나님께 고합니다. 그들의 탐욕에 절규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간의 탐욕에 대해 토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 이제 너는 내가 말한 것이 너에게 사실로 이루어지는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볼 것이다."(23절).



하나님은 우리의 절규와 간구를 듣고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기도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우리의 물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욕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을 향하여 걷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주님, 그, '고기' 투정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