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말씀 묵상
민수기 11:1~9[새 번역]
11:1 [다베라] 주님께서 들으시는 앞에서 백성들이 심하게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시어,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 버리셨다.
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드리니 불이 꺼졌다.
11:3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고 불렀다. 주님의 불이 그들 가운데서 타올랐기 때문이다.
11:4 [모세가 장로 일흔 명을 뽑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11:5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11:6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11:7 만나의 모양은 깟 씨와 같고, 그 빛깔은 브돌라와 같았다.
11:8 백성이 두루 다니면서 그것을 거두어다가,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고, 냄비에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에 반죽하여 만든 과자 맛과 같았다.
11:9 밤이 되어 진에 이슬이 내릴 때면, 만나도 그 위에 내리곤 하였다.
4절,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은 시내 산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멈추어 서게 됩니다. 사흘 길의 강행군으로 인해 심한 갈증을 겪게 되었고, 그만 지치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5절,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그들은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만나’를 먹으며 배고픔을 채웠던 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려던 그들의 목적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배고픔이 그 목적을 삼켜버렸습니다. 탐욕이 그들의 목적을 잃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음식을 잘 먹었던 때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저 얻은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싱싱한 생선과 채소는 노역의 대가로 주어진 것들이었습니다. 정말 값을 치르지 않고 얻는 것은 하나님이 날마다 공급해주시는 '만나' 양식이었습니다.
탐욕은 목적을 잃게 만듭니다. 그리고 불평을 늘어놓은 채 주저앉게 합니다. 불평은 불편과 비평과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불편은 편안함을 갈망합니다. 비평은 반성하고 수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불평은 부정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생각을 좁게 만들 뿐입니다.
탐욕은 타는 목마름을 참지 못해서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로 비유하곤 합니다. 바닷물은 갈등을 해소해주지 못합니다. 결국 더 이른 죽음에 다다르게 됩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죽음이 앞에 기다린다고 할지라도 탐욕에 눈이 멀어서 걸어 나가는 게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합니다.
타는 목마름에 삼켜지면 삶을 잃어버립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의 전략 중 하나도 돌을 빵으로 만들어 먹는 것, 즉 내가 얻을 수 없는 걸 탐하게 하려는 욕망에 관한 유혹이었습니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찬찬히 생각해보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꽤 많이 떨어져 나가는 걸 느낍니다. 내게 유익을 선사해 주는 것과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살게 하는 소중한 가치들은 대부분이 익숙한 것들입니다. 숨을 쉬게 하는 공기와 발을 딛게 하는 땅, 따스한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지만,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허다합니다. 때로는 그것들의 가치를 나도 모르게 깎아내리거나 망각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된 신앙을 갖은 사람은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할 줄 아는 자입니다. 무엇이 귀하고 소중한지를 아는 신앙인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숭고한 가치를 아는 이들이며, 탐욕의 늪을 지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목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