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카론의 운명
매트는 결국 찾지 못했다. 아마도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정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디 어디선가, 누군가의 발밑에서 요긴하게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매트를 분실한 이야기가 일단락 마무리되었으니 내 글쓰기는 여기서 끝인가? 아니다. 상실의 감정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지 않던가. 그것은 살아 있어서, 또 다른 이야기로 엮어 내고, 다른 이야기에 전이되어 세계를 이루는 힘을 지녔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 낭만에 대하여 / 택시에 대하여.
그러니, 영영 작별한 건 아니다. 그 녀석은 내 안에 기억으로 남았다. 그것이 상실의 충격이 되어서 내 게으름을 걷어내주었다. 그리고 잊혀가는 나 자신을 끌어안게 했던 것 같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자신과 마주하기, 그렇게 나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미적거렸던 게 아니라, 알기를 두려워했던 게 아닐까.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이 노인 드라세에게 울먹이며 말한다. “내가 뭔지 알았어요. 내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나는 시체 조각들의 모음이에요!” 그 대사는 정말 강렬했다. 나도 한때는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존재라는 건 이미 결정된 운명처럼 다가와서 충격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마주하기는 그래서 공포다. 기피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은밀한 혐오다.
글을 써 내려가기 전에 조금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몇 안 되는 독자분들 중에) 혹시 내가 매트 잃어버린 경험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고 염려하실까 봐서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다른 매트 구해서 꼈습니다.”라고.
내가 모험심에 취하거나 상실의 감정에 고양되어서 매트 없이 위험하게 막 돌아다니는 걸 상상하실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거 막 잃어버리고 다니면 안 돼요.”라고 말하며 정비과장님에게 꾸중 한 번 듣고서, 회사 마당에 굴러다니던 헌 매트 짚어다가 꼈다. 너무나 간단하게. 다른 게 내 발밑에 깔렸다. 그리고 나의 택시 영업은 계속되었다.
내 걱정에 대하여 그 누구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것은 혼자서 심각해질수록 온갖 가상의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일일 수 있다. 과몰입. 택시 안에 오래 갇혀 있다 보면 현실 감각이 떨어져서, 궁상맞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특히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심했다. 정작 손님과 어떤 말도 오고 가지 않았는데. 나 혼자 머릿속으로 계속 묻고 있었다. 손님들이 내게 말은 안 해도 뭔가를 묻고 싶어 하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뒤돌아보면, 그건 손님의 궁금증 같은 게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이었다. 내향적인 내 성향 덕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나(택시 운전사가 된)와 마주한 공포가 아니었을까.
온도가 다를까 싶어서, 차 안 온도가 괜찮으신가요? 하고 묻고 싶기도 했다. 온도가 달라서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닐까? 매번 손님들의 안색을 살폈던 것 같다. 아차, 내가 방지턱을 너무 세게 넘은 거 같은데, 아니 모두 이 정도쯤은 가볍게 여기잖아? 불쾌했을까? 사과해야 할까?
말을 건네려던 시도들을 몇 번이나 밟았다가 다시 떼었는지 모른다. 탑승객들에게 꼭 뭔가를 말하고 싶다기보다, 처음 맞닥뜨린 침묵 속에서 어쩐지 채워 넣어야 할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차를 깨끗하게 닦아냈는지, 택시 기사의 평범한 일과를 읊조리는 레퍼토리를 덧대서. 택시 운전사가 되기까지 지나온 길을 변명하듯 늘어놓는 레퍼토리도.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면서 차차 손님들에게 과몰입하던 감각이 무뎌졌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단순한 과정이 아니었다. 초보는 멍이 들고, 또 아물기도 한다. 나 역시 불행 중 다행이라고 부를 만한 순간들을 몇 차례 버티며 지나왔다.
“이 사고들의 공통점이 뭐야?”
불이 꺼진 교실의 한가운데 스크린에서 이제 막 세 개의 영상이 끝나자, 상무님은 말했다. 매서운 눈초리가 멀뚱히 앉아 있던 택시 기사님들을 훑었다. 얼굴의 곳곳에 자란 흰털과 큼지막한 두 주름 때문에, 상무님은 사나운 백범 같았다. 그는 이어서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운전자가 뭐 하고 있었어? 술 취한 손님과 대화하고 있었지?”
그 사고들은 정말 끔찍했다. 그 사고 장면에 대해서는 묘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니겠지. 정말 나한테도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려나? 무슨, 아닐 거라고, 되새기고 되새겼다. 꽃잎을 떼던 주술에 너무나 과몰입했던 걸까,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고 말았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밤에 만난 길손님은 술이 좀 과하게 취했었다. 육십이 조금 넘은 남성분은 택시가 힘든 일이라면서 나를 격려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한때 이 일을 했었다며, 그 길고 긴 이야기는 돌고 돌아서 대한민국의 경제 역사를 거쳐 부동산 업계의 위기와 노후를 대처하는 태도, 등등으로 이어졌다. 뻔하고 지루할 이야기 같지만, 그 선생님이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도 하셨고, 내게는 사람의 소리가 달았다. 달콤한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니, 내 택시와 갑자기 내 앞에선 버스가 입을 맞추기 직전이었다. 내가 비상등을 켜고 후진하여 잘못 든 길을 빠져나오자마자, 그 선생님은 그럴 수도 있고, 괜찮다면서 방금 상황과 비슷한 일을 겪은 일화를 다급하게 이어가실 때, 그분이 내가 처음에 어림잡았던 수준보다 훨씬 취했다는 걸 실감했다.
도로의 사정과 승객의 상태를 잘 파악할 줄 알고 제법 여유가 생기자, 나는 내가 카론의 운명에 빠져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택시는 단순하다. 잘 태우고 잘 내려주고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다니는 것 같아도, 결국 출발과 도착이라는 도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망자를 태우고 스틱스강을 오가는 일로 영원을 사는 그처럼. 아마도 카론이 자신이 그들을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자란 걸 인식하면서, 망자들의 슬픔에 잠식당했다면 계속 그 일을 못했을 것 같다. 그는 단지 출발과 도착을 반복한 거다, 라고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언제나 그에게 망자는 망자다. 그 옛적에 망자가 누구였어도, 무슨 속 깊은 사연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망자들은 그에게 저승으로 향하는 배의 승객에 불과했다. 카론의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지 못하면, 나는 건너게 하는 자가 아니라 저승으로 보내는 자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