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화 말처럼 쉽지 않다
오후 2~3시에는 대체로 손님이 뜸하다. 남녀노소 모두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각자의 현장에서 에너지를 한창 쏟을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동이 생길만한 지역을 물색했다. 나의 선택지는 아파트와 상가 사이 도로. 나는 그곳을 어슬렁거렸다.
되도록 학교 주변은 안 가려고 했다. 그곳의 주변 도로에는 30km/h 제한 속도가 걸려 있기도 하고, 온갖 학원의 주정차들로 복잡하다. 거기에다가 등하교에 붐비는 인파를 만나면, 지나쳐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긴장도가 높아진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럭비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몰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날 때마다 예배당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이 진중해지고 떨려오는 건 사실이다.
만에 하나 인적 사고가 일어나면 이 일을 그만두자고 생각하곤 했다. 사고의 중대성 따라 내 의사와 상관없이 운전대를 놔야만 하는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행이 그 정도로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다. 타인에게 치명상을 입힌 기억은 아마도 암 덩어리처럼 달라붙어서 행복한 기억을 마구 파먹으며, 내 인생 전체를 조종하려는 숙주가 될 게 분명하다. 안 그래도 삶이 만만치 않은데. 그 사건 하나만으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거다.
이상하다. 콜이 안 들어온다. 길손님도 안 보였다. 나는 상가단지를 벗어나 옆 공단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크게 돌기도 했다. 공차로 도로를 배회한 시간이 30분이 되어가자, 초조해졌다. 똑딱똑딱. 도스 게임의 팩맨이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그를 쫓던 유령도 빨라진다. 이거 깰 수 있는 거 맞나.
신호가 빨간불이 되자 나는 멈추었다. 초조해진 마음을 다시 잡았다. 택시 영업을 단순하고 쉽게 생각했던 지난 나날을 반성하면서. 택시 뭐 어려워? 태우고 내려주면 되잖아,라고 아내에게 자신 있게 말했던 과거 나의 말들은 틀렸다. 손님과 만남은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다.
콜을 부른 손님을 찾는 것도 처음에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불러서 열심히 갔는데 손님의 얼굴을 모르니. 신기하게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콜 손님을 찾는 법을 감각적으로 익히게 되었다. 입 모양을 보면 주술처럼 내 차 번호를 읊조리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를 다급하게 기다리는 표정으로 도로를 두리번 살피고 있기도 했다.
혹은 나와 눈이 딱 마주치면서, “맞아. 그거.”하고 단번에 통하기도 했다. 단번에 딱 보면 오는 느낌이랄까, 간혹 분간이 어려우면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내 간절한 눈빛을 알아차린 행인들은 알아서 비켜주셨다.
시간은 금이다. 나한테도 손님한테도. 약속된 자리를 지나치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 몇 초가 서로에게 당혹의 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입장은 달라도 시간에 구속된 피차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안 그러면 초기에 서로 간의 착각에 대처하지 못해 서로 불편해진다.
손님의 유형은 정말 다양하다. 알아서 척척 타는 야무진 손님만 있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지정된 위치와 다르게 홍길동처럼 동에 번적 서에 번적하는 손님도 있었고, 쑥스러워서 긴가민가해서 멀찍이 떨어져 관찰하는 손님도 있었다. 그리고 도무지 댁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손님들도 종종 만나게 되었다.
도착지와 목적지를 다르게 설정하고 택시를(나를) 기다리는 손님이 은근히 있었다. 다행인 것은,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일반적인 낯선 만남보다 서로 간의 긴장이 오히려 누그러져서 편했다.
그러나 자신이 앱 조작에 서툴렀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손님의 경우는 달랐다. 앱 화면에서 택시 도착 위치를 설정하게 되어있다는 설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모든 택시가 멍청하게 공사로 막힌 후문으로만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저기요, 택시 기사도 사람인데요. 아직 AI 자율주행 택시는 시작도 안 했는데. 물론, 혼잣말이다.
술에 진득하게 취한 어느 한 손님의 경우는 심했다. 한 마디마다 뜸을 들이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는데, 목적지와 도착지를 잘못 설정했다는 걸 대화 도중 자신이 먼저 알아차렸던 것 같다. 미니카를 원격 조종하듯 건물 블록 사이사이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낄낄거리며 콜을 취소해 버리기도 했다. 그럼 나는 손님의 하루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매우 속상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안타깝게 여겼다. 피는 들끓었지만.
그런데 이게 단순한 실수나 착각만은 아니었다. 앱의 불일치는 손님들의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했다. 당장 서 있는 곳에서 콜은 잡았는데, 불법 유턴을 알아서 해주지 않으면 상당히 많은 거리를 돌아가야 하니, 알아서 돌아 붙이라는 손님의 무언의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장문의 메시지를 읽기도 했다. “아저씨, 지금 내가 술에 취해서 지금 당장은 걷고 싶으니까, 그 자리에 없으면 분명 연락하겠지요? 당신은 태우는 게 일이니까 말이야.”
손님의 요구를 충족해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나의 실수와 불편에 대하여 사과하는 일로 그럭저럭 택시 영업이 돌아가긴 했다. 서비스란 손님의 불편을 덜어주는 기술이지, 기사의 마음은 돌봐주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동물적 본성이 노상에 오물을 투척하듯 자꾸 내게 무언가를 남겼다. 혐오, 환멸, 냉소, 역정. 그건 손님으로부터도 나왔고, 내 안에서도 나왔다. 정말이지, 인간의 피가 엔진오일처럼 검지 않다는 건 정말 기적이다.
택시를 직접 몰아보니 그동안 손님으로서 묵혀두었던 묘한 감각들이 하나씩 풀렸다. 이전에 만났던 기사님들의 멍한 눈빛, 이상하게 큰 음악, 말 걸기 어려울 정도로 뒤숭숭한 표정들, 그것들에 달린 물음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새 손님을 만나면 마음도 새로워야 하는데. 흡사 늪처럼 당겨오던, 그 경험의 유사성에 감각이 놀라서, 반복되는 건가? 아니, 착각인가, 하고 자꾸만 묻는 나. 점차 몸이 굳고 한기가 스며드는 건, 만유인력의 법칙같이 강력했다.
그래도 나는 자고 일어나면 깨끗해졌다. 그러니까, 자고 일어나는 건 하루를 내리 달리며 쌓인 육체 피로와 정신의 피로 모두 청소하는 일이었다. 잠으로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신에게 항소하며 인간에게 불필요한 잠을 주었다고 주장했던 철학자는 고생스럽게 시달려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잠자고 나면 다 이해가 되었다. 살다 보면 사람이 실수할 수 있고, 자신도 모르게 진한 본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러쿵저러쿵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주고받는 게 피곤한 사회에서, 당혹스러울 수 있는 택시 기사의 정서를 고려해 주는 건 사치가 되니까. 이동의 순간은 인지의 영역 안에서 금방 잃어버리게 되는 찰나에 불과하기도 해서. 이상하게도 잠의 보상처럼, 지쳐가는 내게 힘을 주는 신비한 손님들도 존재한다(이건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사람은 매 순간 완벽함을 도모하며 살 수 없다. 나도 사람이고 사람이 원래 어떤 존재인지 곱씹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응?
콜이 들어왔다. 거의 한 시간 만에 들어온 반가운 콜이었다. 콜이 들어온 곳은 아파트 학원가 상가였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며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가 나왔다.
이 근처인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다시 빨간불 신호에 걸렸다. 이번에는 학교와 인접한 횡단보도 지역이다. 조심해야 한다.
횡단보도로 남자아이가 자신만 한 책가방을 지고 걸어갔다. 미취학 아동처럼 외소한 아이는 분명 저학년 같았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 택시에 가끔 아이만 태워서 보내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 같은 경우, 대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워야 할 손님이 저 아이는 아니겠다, 싶었다.
그 아이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철수처럼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달고 있었다. 그래서 커서도 머리 모양을 오랫동안 고수할 법한 고집스러움 같은 게 느껴졌다. 뚜벅뚜벅 걷던 아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오, 사랑받을 줄 아는 아이구나. 그래. 우리 같이 힘내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이지, 아직도 이다음에 일어난 장면은 놀라워서 생생하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이 SF, 공포, 미스터리 장르에서나 볼 법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횡단보도를 지나던 그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괴상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날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자, 나는 조금은 놀랐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는데, 그 미소가 다른 미소로 변주되었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파인 얼굴의 굴곡들이 점차 깊어지면서, 음흉한 노인의 미소처럼 노골적으로 변했다.
섬뜩해진 나는 순간 거기서 일종의 공격성을 느꼈다. 그 아이의 표정이 곧 재미나고 위험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경고 내지는 다짐처럼 보였다. 섬뜩한 그 표정 때문에 양쪽 인도와 차도를 살펴보았는데, 택시 안에 탄 나와 횡단보도 위에 선 아이 둘 뿐이었다. 정지선도 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확실히 그 아이는 나를 묘한 미소로 주시하고 있었다.
럭비공이 이렇게도 튈 수 있구나. 그 아이가 갑자기 내게 가슴 높이까지 주먹을 천천히 올리고서, 면봉처럼 보이던 주먹에서 솜털 같은 중지가 빳빳하게 펴졌다. 유난히 아이의 검지가 하얗고 길어 보였다. 놀이에서 악의 대마왕 역을 맡은 것처럼 미소가 더 음흉해졌다. 만족스러웠는지, 깜빡이는 녹색 횡단 신호를 한 번 확인하고 길을 떠난 것이다.
차에 달라붙어 있는 거울이란 거울은 죄 다 살펴 주변을 살폈다. 나 혼자였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나는 왜 저 아이가 날린 엿의 무게까지도 홀로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강렬했던 그 아이의 중지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마 저 아이도 힘들 거야. 안쓰러운 알파 세대, 많이 누리고 부족하면 못 느끼면 뭐 해. 학교 갔다가 학원 가랴, 하루가 다양한 배움으로 도배된 게 사실상 부모의 돌봄의 부재인 것을. 그걸 알아차린 걸까, 지금도 해석하고 있겠지. 한글도 다 뗐을지 모르는 저 어린 영혼이, 얼마나 힘들길래 손에서 저것이 나오게 했을까. 그래. 아저씨가 그 엿 받아준다. 그런데 아저씨도 말처럼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