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잃어버린 매트를 찾아서

3화 그럼에도 나는 인간예찬론자다

by 노에시스



승객과 소통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목적지에 관한 부차적인 대화 외의 소재들로 말이다. 손님의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은 대부분 일상적이라서 흘린 동전을 다시 주워 담거나 주워주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오간다.

우산 안 가지고 나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오전에 잠깐 소낙비 내리고 그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날씨가 무척 추워졌어요.

네, 사람들 잠바가 두꺼워졌네요.

혹시 추우신가요? 히터 온도를 조금 더 높여 드릴까요?

사장님, 요즘 택시 손님 많아요?

명절 이후로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그래도 타실 분들은 타세요.


하루에 적게는 열세 번, 많게는 마흔 번 정도 손님을 태운다. 장거리 손님이 많아질수록 횟수는 줄고, 한 사람을 태울 때도 있고, 네 사람이 함께 탈 때도 있어서 정확한 인원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타고 내리는 과정은 같아도, 상황은 제각각이다. 어떤 손님은 얼굴의 인상이 잔잔히 남고, 어떤 날은 얼굴 없는 손님을 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더더욱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우중충한 잿빛 하늘 탓인지 말이 텅 비는 순간에는 정말 내가 손님을 태운 건지, 불어닥친 바람을 싣고 달린 느낌이 들었다.

연속성의 굴레 아래, 손님은 모두 익명 불상의 존재가 되었다. 도시 속에 잠잠히 서 있는 건물들처럼, 손님도 마치 고정된 실루엣이라고. 오감으로 체감되던 지평이 자꾸만 관념의 바다에 잠겨 들어갔다. 거기에 가로등이 있었나. 돌아나가는 길이 여기인가. 저기서 손님이 탄 건 엊그제였던가.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속도 감각마저 점차 흐릿해지고 노곤한 피로감만이 그것을 간직하는 듯했다.


공간도 점점 더 작아졌다. 택시를 떠받치고 있던 벅찬 미래들이, 기대했던 나의 낭만들이 하나둘 제멋대로 내려버려서 천장이 덜컥 주저앉아 버렸다. 흉측한 택시는 되지 말아야지. 비어버린 곳은 가장의 책임과 직업윤리 따위의 딱딱한 다짐으로 채운다. 어디서라도 사람답게 사는 것. 아마도 이런 갈망에서 의로운 택시 기사분들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나 원 참, 칠칠찮게. 그것들이 바닥에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보니까 헛헛한 감정이 좀체 메워지지 않는다.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시점에서 달콤한 환상만은 내보내기가 어려웠다. 택시의 공간이 더 비좁아진다면 나는 떠날 수밖에 없다. 딱딱한 다짐만으로는 맵시가 안 산다. 사람은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사는 존재가 아닌가. 내게 비록 돌아다닐 자유를 선사해 준 택시라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어디든 뭔가 싸하고 공포가 서리면 재빨리 도망쳐야만 한다. 그 직감이 지금의 인간종을 살아남게 했다.


수습 기간 3개월은 택시에도 유효하다. 이 직업이 자신과 맞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1950년대에 자가용이 처음 보급되던 시절, 택시 업종은 한때 호황기를 누렸었다. 운전은 떠오르는 신기술이었고, 당시에 많은 젊은이가 이것으로 밝은 내일을 꿈꾸었다.


“내가 이걸로 집 장만하고 자식들 다 대학 보냈어.” 78세가 되신 택시 기사님이 내게 했던 말이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곧 은퇴하실 거란 말에, 어딘가가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윽. 억. 브레이크와 엑셀을 하도 끊어 밟으셔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 노인 기사 분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백전노장이셨다. 운전대를 꽉 잡고 유리창을 뚫을 듯한 시선에서 아직도 열혈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사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결정적인 건 나와 같은 또래의 택시 기사를 만나서였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김포공항에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어두운 밤 비속을 헤치며 그가 왔다.


그는 장발에 힙한 검은 모자를 쓰고 뿔테 안경을 썼던 것 같다. 우리가 택시 타기 전까지 고갤 흔들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가 뺐는데, 표정이나 동작에서 생기가 넘쳤다. 야밤에 낯선 공간을 부드럽게 다져야겠다고, 가장의 무게를 느낀 나는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희는 제주도로 휴가 갔다가 방금 돌아왔어요.” 예상했던 느낌과 달리 따뜻한 음색을 갖고 있던 그는 말했다. 올해 안에 곧 제주도로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그 말에 나는 마치 특별한 인연을 만난 듯이 그를 보고는 신기해하고 놀라웠다. 이어진 다음 그의 말이 더 날 흔들어 놓았다. 그곳에서도 택시를 할 생각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도대체 택시가 뭐길래, 이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를 협소한 공간 안으로 가두어두었을까. 나는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회사 생활에 지쳐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과 꽤 잘 맞았다는 것이었다. 수입과 일하는 방식, 운수 업계에 관한 정보를 듣고 나는 오, 오, 했다(그래서 내 택시 앞번호가 55인 건 우연이겠지). 묘하게 그의 말에 설득되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이건 나랑도 맞겠다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니까, 어쩌면 비 오는 밤에도 살아 있는 활어처럼 몸과 정신이 팔딱거렸던 그의 모습 자체에 매료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닐 바다 공간이 필요했기에, 그것이 강이라도, 하다못해 연못이 이라도.


그가 설명을 늘어놓는데 나한테 그 젊은 택시 기사의 이질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을 휘저어서 곧 환청 같은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 말투가 꼭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현혹스러운 말처럼 들린 것이었다.


“선생님처럼 자유로운 영혼은 직업을 갖기가 쉽지 않지요. 이런 야박한 사회 같으니라고, 아, 선생님께 분을 낸 한 말은 아닙니다. 직업으로 정체성을 가두는 이 낡아빠진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가 어디 쉽습니까?(직업이 삶의 이야깃거리와 관계의 안전장치가 되어준다는 걸 모르는 이 어리석은 녀석!). 아, 아, 이 고통스러운 세상이여,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돈을 못 벌면 축 처진 걸레짝처럼 푸석거리면서, 방바닥에 달라붙게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되니 말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택시는 그야말로 청춘입니다(고독이고 단절이며 생존적 직업이지)! 음, 도시 곳곳에 핀 낭만 사이로 벌처럼 맴도는 일은 일이라고도 할 수 없지요. 그럼요. 그건 자유! 삶! 밝은 미래! 그것들과 아주아주 잘 어울립니다. 어떻습니까? 또 이렇게 운명적으로 또래 기사님을 만나 내막을 파악하게 되었으니, 일생일대의 행운과 마주한 게 아닐까요? 기회는 인생에 세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도 말고 딱 세 번입니다. 굴러온 기획을 확! 하고 붙잡으세요! 그럼 전 이만, 다른 사람을 꾀어내ㄹ... 아, 아닙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행운을 빕니다.”


인간은 언어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사회적인 동물이면서, 지구상에서 독보적인 지성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실 인간은 그 자체로 놀라운 존재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도전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인생의 나날은 죽음의 필연적 선고 앞에서도 황홀감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 기묘하고도 놀라운 특성 덕분에 인생의 여러 채무에 시달리게 되어도 당장은 부유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당당하게 살지 않던가. 나는 택시 기사가 되는 게 썩 나쁘지 않아, 좋은 거지, 괜찮을 것 같아, 연신 감탄만 날리며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도대체가 무엇에서 기인한 건지 모를 체면이란 것도 연체를 한몫 거들었다.

쭈뼛거리던 나를 택시 기사로 만든 건 아내였는데, 그녀가 인터넷으로 OO 운수 회사를 알아보고 자식에게 심부름시키듯 날 보내버렸다. 성인 남성이 집 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이상해진다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조언도 있었고, 아내는 부담임 목사로 오래 일해서 기획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다시 돈을 벌어야만 했다.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협력해, 나는 택시 기사가 되었다.


백수여 안녕! 택시 만세!라고 외쳤건만. 아마도 나는 은근히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젊은 사람이 내게 보여준 환영이 택시라는 직업을 낭만적이라고 단언한 것이었다. 사람 때문에. 사는 것같이 잘살아 보자고, 자유롭게 도로를 오가며 청년성을 잃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며, 열혈의 상태로 택시를 몰았다. 한두 달 재미있게 열심히 해보니까, 그 낭만은 금세 반복된 지루한 노동으로 변해 버렸다.


외로움과 무미건조한 시간으로 둘러싸인 산어귀에서 돌을 반복해서 밀어 올리는 택시 영업으로 지쳐갈 때쯤이었다. 배우 김혜자 선생님 같은 손님이 한 분 타셨다. 넷플릭스 독점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의 김혜자 선생님 같은 말투와 외모를 쏙 빼닮은 지니셨는데, 그분은 손님으로 찾아와 내게 사람이 되셨다. 어쩌다가 택시를 하게 되었냐고 물으셨다. 나를 택시 기사이기 전에 한 인간, 젊은이로 호기심을 갖고 봐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분의 삶에 비해 무척 짧아 부끄러웠으나 내가 지나왔던 직업적 경험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신학을 전공했고 목회하고 싶지 않아서(이건 지금까지도 깔끔히 정리가 안 된다) 몇 가지 일들을 하다가, 택시를 하게 되었다고.


나의 이야기에 화답하듯, 나와 나이가 비슷한 자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손님의 자녀 중 따님이 어렵게 열심히 공부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반 학생에게 시달리다가 교직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받고 있다는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마음이 무겁고 무척이나 애석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듣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을 겪기도 하고 걷던 길이 달라질 수도 있는 혼돈 속에 놓여 있으니, 그러니까 너무 혼자 외로운 표정 짓지 말고 힘차게 살아가라는 위로이자 조언처럼 들렸다. 추측하건대 그건 머릿속에서 김혜자 손님을 애달피 괴롭혔던 이야기였다. 생각하기도 싫고 꺼내려고 해도 좀체 안 꺼내지는 묵은 이야기 말이다. 정성스레 독에 담아둔 김치 포기를 꺼내듯이 내게 주셨다. 말씀에도 오전의 포근한 빛깔이 담겨 있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말하듯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죄의 무게를 가볍게 해 줄 수도 있는 어머니의 눈물을 가지신 분, 그분은 나를 하나의 삶, 고유한 인격으로 봐주셨다. 참 감사했다. 그렇게 열혈로 태워버렸던 재들, 수북이 쌓였던 고뇌가 조금씩 휘날려갔다.


한편으로는 역으로 생각해 보니 아, 이런 느낌이셨을까, 이제 다른 손님들에게 내 과거를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나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아픔에는 상당한 무게가 있어서 마음의 근력이 연약한 사람에게는 그 힘에 쉽사리 눌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후 자주 손님이 사람이 되어서 나를 찾아왔다. 내 차에 점검 등이 들어왔었는데, 택시 안을 꽉 채운 네 명의 신사분들 중 앞자리에 타신 분이 그 사실을 친절히 알려주셨다. 노란불은 당장 운행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꼭 점검받으라고. 자신이 자동차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털웃음을 지으시고는 내리셨다.


어느 이십 대 청년은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서 마케팅 관련 회사로 이직했다고 말했는데, 날카롭고 예리하던 그의 인상이 나를 신뢰하는 투로 변했다. 그는 나를 가볍게 아는 형 정도의 지인으로 바라봐 주었다. 고마웠다. 금세 택시 공간은 미적거리는 동네 어귀나 카페로 변했다. 은행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상품을 판다며, 자신은 좋은 상품을 정말 필요한 고객에게 파는 정직한 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열의에 찬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열정이 훗날 멋지게 꽃피길 바란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 아침에는 정말 만족하면서 은행 직원으로 사는, 그러니까 어제 그와는 입장이 정반대인 또 다른 또래의 남성 청년을 만났다. 살가운 인사로 대화를 이어가는 그의 물음 앞에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말을 쉽게 꺼냈다. 대화가 오갈수록 신뢰감을 주는 그의 친절한 느낌 덕분에 나는 그만 내 야욕을 꺼냈다. “개인택시 사려면 어떤 대출상품이 제일 좋아요?”


이후에도 사람을 만났다. 손님으로 머문다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니다. 단지 나와 운명의 실타래 끈이 겹치지 않았을 뿐이다. 바람처럼 나를 거쳐가신 손님들 삶도 깊이 들추어 보면 반짝이는 소중한 것들로 가득할 거라 믿는다. 인간은 감탄받아 마땅한 존재다.


나는 인간예찬의 속도감에 떠밀려서 무모한 일을 하나 저질렀다. 등교하는 여중생이 화가 나서는 엄마로 여겨지는 대상에게 감정을 쏟는 말을 했다. “아니, 내 우선은 없어? 나만 빼고 다 우산 쓰고 갔어. 맨날 이래. 아빠가 가져간 우산이 내 거라고. 아 몰라.”


그 소녀의 모습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내 9살 딸의 미래 같기도 했고, 그 소녀의 아버지는 미래의 나의 모습이자, 뭐랄까 이 세계를 여행하는 중의 어떤 동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소녀가 전화를 끊자마자 말했다. “저기, 제가 우산이 두 개가 있어서요. 하나 가져가셔도 돼요. 저기 경비실에 쓰고 놓고 가셔도 좋고요.”


그러자, 소녀는 놀란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듣다가, 풋 하고 볼이 불그스레 붉어지더니 고갤 숙이고 웃었다. 한동안 그 소녀는 기분 좋은 표정을 유지했고, 내릴 적에는 내게 아버지 아는 지인에게 공손히 인사하듯 하고 떠났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자기 역할에 만족하고 충실하면 어떤 이야기도 만난다. 그게 우리가 사는 공간의 미학적 마술이며, 반들반들한 택시의 표면조차 인간의 다양한 심층적 일상과 표정이 새겨져 있다. 세계는 다채롭게 뒤섞여 있는 생명의 빛깔이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따분하고 획일화된 연속된 선상에서도 우연의 기적들이 생기 있게 계속 피어났다. 이러니 내가 마땅히 고독을 감당하며 인간예찬을 하지 않을 수 있겠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