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시계 왜
노을 진 하늘 위로 손톱만 한 비행기가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붕 떠 있는 게 마치 버튼처럼 느꼈다. 손가락 터치로 콜을 수락하는 게 내 일상이라서, 하늘로 전이된 감각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검지를 그곳에 가져다 댔다는 것이었다. 딸깍. 무얼 기대했던 걸까. 저 웅장한 구름 덩어리가 쫓겨나듯 옆으로 흩어지고, 갈라진 여백에 거대한 지도가 펼쳐지면서, 쩌렁쩌렁하게 주소를 읊는 천공의 목소리라도 상상한 걸까. 그러면 나는 겁도 없이 이렇게 묻겠지. “요금은 어떻게 결제할까요?”
잠시라도 좋았다. 외롭지도 않았다. 차를 세워두고 홀로 있어도 기억들이 날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공백에 숨이 들면 시공간 너머의 꿈같던 기억이 붉게 번져와 내게 닿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 편지 같은 그것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기뻐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던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모든 게 어색하고 과분하게 느껴졌던 신혼여행, 설렘과 기대로 응축된 가족의 단란한 휴가까지.
욕망이 없는 곳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택시 영업에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택시는 달릴수록 돈을 버는 직업인데, 멀리멀리 가는 손님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순리고 이치다. 여기에는 온갖 가설들이 난무해진다. 장거리 손님들이 많이 뜨는 장소부터, 5 단위로 장거리 콜이 들어온다는 둥(이건 너무 허무맹랑하다), 기우제를 드리는 간절한 마음같이 신께 호소하는 마음도. 회사 동료 기사님들의 이런 허풍스러운 말들 뒤에 유쾌하고 사려 깊은 인간 이야기가 남았다.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그 우수도, 택시 안에서는 운수로 변한다. ‘빈 차’ 임에도 나는 간혹 이상한 시선을 느끼는데, 괴상하게도 물색하던 내 시선이 메다기에서 멈춘 것이었다. 그럼 고요한 침묵이 맴돈다. 알겠어. 그럼 다시 나는 말없이 가야 할 곳으로 가곤 했다.
내 택시에 건방지게 떠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건 카카오 프렌즈다. 공항을 가는 손님을 태우면 카카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차량 아이콘이 변한다. 비행기에 탑승한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가 윙크하며 손을 흔드는 아이콘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 녀석이 내게 말을 건넸다. 말투가 아동 뮤지컬 배우들과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술과 담배로 걸쭉해진 말투였다. 자기 이름이 또 ‘프렌즈’라고 맘대로 날 친구라고 부른다. “어이 친구! 오늘 판 제대로 깔렸네? 이 분위기 그대로 쭉 가. 운수 좋은 날이 되겠어.”
택시영업에서 공항 손님이 반가운 건 사실이다. 인천공항에는 시계 외 손님으로 가득해서, 공항에 들어가면 장거리 영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또 특히 인천택시에게는 시계 밖으로 나간 택시를 다시 돌아오게도 만들어 준다. 공동영업구역이라서 모든 지역에서 모든 택시가 공항 손님을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이은 시계 외는 하루의 분위기를 통째로 바꿔놓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카카오 친구 말대로 두세 시간 만에 사납금의 절반이 쓱 하고 채워지기도 했다. 말초신경을 때리는 듯한 그 쾌감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시 외각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난 뒤에 불쑥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됐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내 안의 이미 거주하고 있던 사소한 감정들을 건드렸는데, 시계 외(外)라고 불리는 구역을 몇 번 다녀온 끝에, 그날은 양가의 감정 사이에 ‘왜’가 남았다.
그러니까, 먼 거리 운전은 나에게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는 은밀한 산책로이자, 가족 또는 지인과의 친밀한 여행로였다. 그런데 장거리 손님에게서 강렬하게 느낀 운수의 예감으로, 낭만의 한 자리를 남에게 덜컥 내주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막힌 도로 위에서 간혹 손님과 바쁘게 다른 차선책을 고려해야 했고, 좌, 우, 좌, 좌, 우로 이어지는 숨찬 판단이 이어졌다. 필살기 콤보를 넣는 것도 아닌데,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복잡한 도로와 사투를 벌이는 기분이 들었다. 택시 운전대만 잡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메다기에 큰 금액이 긁힌 동시에 타박상처럼 어딘가 아려오기도 시원하기도 했다.
장거리 영업에 대한 의문은 어느 택시기사분과의 대화에서도 이어졌다. 느지막한 오전에 OO대학교 앞 변두리에 차를 세워두고 숨을 돌릴 때, 개인택시 한 대가 내 옆으로 섰다. 콜이 한산해진 이후라서 나처럼 스트레칭도 하고 바깥공기를 쐬면서 숨 돌리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오던 그 기사분께 인사를 드리니, 씩 하고 웃으시면서 내게 물었다. “얼마 벌었어?”
부지런히 집 밖으로 나와서 끊기지 않고 손님을 받은 터라,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내가 얼마라고 말하자, 60대 아저씨는 이어서 자기가 번 돈을 말씀하셨는데, 나보다 삼만 원이나 더 버셨다. 우와. 나는 심문하듯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알고 보니, 그분은 대부분의 기사님이 야간 운행을 끝내는 시각, 새벽 네다섯 시부터 나오셔서 일하셨던 것이었다.
전략가의 냄새가 물씬 나던 그분의 말씀 가운데, 뜻밖인 것이 있었다. “나는 거기로는 안 가. 거긴 시계 외가 많이 뜨잖아. 아휴, 장거리는 피곤해. 난 딱 두 시까지만 하고 들어가. 그 정도면 충분해.” 아니, 왜. 택시는 장거리가 돈이 되는 것 같은데, 두 시 전까지만 갔다 와도 되는데.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택시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시계 외가 잘 나온다는 곳을 돌며 택시 영업을 재개했다. 주말에는 늦은 오후에 나와 새벽에나 들어갔다. 그래서 주말의 영업은 마치 내가 어딘가 홀로 동떨어져 있단 느낌을 주었는데, 포근한 일상에 서둘러 다시 이어 붙고 싶어서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이슬비에 젖은 도로는 어느새 검은 금속처럼 번들거렸다. 날 선 도로를 천천히 배회하던 나의 감각도 예리하게 단조되었다. 할증에 할증이 더해지는 승부의 시간. 여기에 시계 외 할증까지 더해지는 목적지라면, 금세 목표치를 달성하게 된다.
돌고 돌았다. 침묵한 채 밤이 이끄는 대로. 반대편 차량 라이트가 종종 내 안경 렌즈를 투과하자 푸른빛이 안광에 서렸는데, 몇 차례 반복되다가 스마트폰이 퍼렇게 변했고 알림음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카카오 T!” 나는 온 기운을 담아 반사적으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는 콜을 부른 위치 주소 위에 하얗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시계 외 지역. 운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문을 연 손님에게 차분하게 인사를 건네며 호흡은 가다듬었다. 손님 탑승 버튼을 눌러 목적지를 확인한 뒤, 맞는지 묻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지. 손님이 울고 있었다. 시야가 하얗게 되고 머리는 멍해졌다.
아니, 우는 정도가 아니라 꺽꺽하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오열하고 있었다. 강도라도 만났나, 그랬으면 살려주세요,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같은 말을 먼저 했을 것이다. 자, 침착하게. 나는 목적지를 확인해 보았다. 서울의 OO 병원 응급실. 손님 괜찮으세요, 같은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 찰나에, 손님은 내게 힘겹게 말을 건넸는데, 하도 울먹거려서 어눌한 말투로 느릿느릿 말했다. “아저씨, OO 병원까지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최대한 빨리 가주실 수 있어요?”
“아, 예, 오십 분 정도 걸립니다. 최대한 빠르게 가볼게요.” 교과서적인 말 이외에 다른 말을 끼어 붙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가능한 내 대답으로는 오직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는 것밖에 없었다.
시야를 도로 앞에 고정한 터라 그녀의 존재는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내게 식별되고 있었다. 사십 대 후반 정도. 나는 여전히 귀로 상황을 자세히 살폈다. 그 손님이 환자로 응급실로 가는 건지, 응급실에 입원한 누군가를 만나로 가는 건지를 묻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상식 수준에 어긋날 정도로 손님을 살피지 못하게 되면,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나 훗날 부주의로 문제 삼아지게 될 수 있었다. 만일 그런 불상사가 현실로 일어난다면 지금의 이 순간을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계속 내 귀에 손님을 담았다. 그녀는 여전히 뒷좌석에서 곧 기력을 모두 쇠진할 정도로 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다가 갑자기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로 그 누구의 음성이 내게 좀체 들리지 않았다. 저 손님의 말은 바깥 소음에 간섭받지 않고도 내 귀에 잘 들렸는데.
저 전화기 너머에서 슬픔에 잠긴 그녀를 다독이는 소리가 나오면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누군가 그녀를 도와줘야 될 듯싶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다시 꺽꺽 헐떡일 때마다 나도 온몸이 경직되어 숨이 막혔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내 역할은 빠르고 안전하게.
운전에만 집중하자고, 나를 다그쳐도 그녀의 말들이 다시금 귀에 생생하게 꽂혔다. 말하는 투가 나이, 성별, 관계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단 한번의 통화에 수화기 건너편으로 귀와 입의 수가 자꾸만 불어났다. 쉴 틈 없이 우뢰처럼 변칙스럽게 그녀의 목소리 톤이 빠르게 바뀌고 있단 걸 직감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가 통화를 나누던 대상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새로이 통화를 거는 장면을 편집이라도 한 건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나. 귓가에서는 상식을 추월하는 추측들이 겹겹이 쌓였고,
침묵 속에서 답을 얻을 수 없는 물음들만 남았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그녀의 울음이 어둠 안에 잠들어있는 것들을 전부 불러들이는 것 같았다. 내리 달리는 창가에 흩뿌려지는 이슬비들이 턱턱 하고는 덥석 매달리는 것 같은 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위급한 상황보다 내 숨통을 조여왔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메다기의 숫자가 자꾸만 오르는 쪽으로 나도 모르게 시선이 끌렸기 때문이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금액이었고, 그 수치는 불어나는 내 잡념들보다도 더 빠르게 솟구쳤다. 이상하게도 메다기를 보면 볼수록, 온 힘을 다해 우는 손님과의 거리는 조금씩 벌어졌다. 경직돼 있던 몸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 기분이 들었다. 야, 어서 눈 안 떼? 못하겠어. 너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지금도 그 금액은 시계 외에서 여전히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손님을 내려주고 나는 온몸이 녹초가 되어서, 야간에 서울에 가면 어디로 가라던 조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불쑥 박차고 나오려는 어떤 감정을 억누르는데도 힘겨웠다. 그날에서야, 그 택시 기사님이 왜 시계 외로 나가길 꺼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