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아이들은 읽지 않겠지만 작가는 책 서문에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며 시작한다. 4차 산업시대가 왔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뇌과학’이 빠지지 않고 오는데 이 책이 바로 “뇌과학‘에 대한 책이다. 뇌과학은 인간의 행동과 행동의 이유를 뇌 연구를 통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TV를 통해 익숙해진 정재승 박사의 이름을 앞세워 ’ 뇌과학‘을 담은 [인간탐구보고서]는 기획자와 소재만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뇌과학의 주체는 우리, 즉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뇌’와 ‘과학’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나의 몸과 머리를 경직시킨다. 대학시절 뇌를 배웠던 감각과 지각 심리학 시간은 재미있었지만 학점은 걱정되던 난이도가 높은 수업이었다. 트렌드 지식이지만 쉽지 않은 뇌과학 이야기를 아동용으로 어떻게 썼을까 하는 호기심과 어디 한번 보자는 의구심으로 책장을 열었다.
책은 새롭게 이주할 행성을 찾아 지구에 온 아우레 행성의 4명의 외계인 아싸, 바바, 오로라, 라후드로 구성된 아우레 탐사대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지구인슈트를 입고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지구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지구인의 행동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 ‘현명한 동물’(호모 사피엔스)이라고 부르지만 외모에 집착하고 기억력도 좋지 않으며 표현방식 또한 충동적이다. 그래도 아우레 탐사대는 인간의 옆에서 생활하며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지구인을 관찰하고 그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그들의 행성으로 보낸다. 그것이 뇌과학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내용이다.
지구인 생활을 외계인의 눈으로 본다는 구성이 신선하다. 아우레 탐사대의 좌충우돌 지구 적응기에 나도 모르게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인간에 대해서는 외계인보다 내가 낫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기며 뇌과학에 대해 가졌던 부담감은, 높아지는 재미에 반비례하여 사라진다.
아우레 탐사대의 이야기는 만화, 소설 형식의 긴 글, 각 챕터의 주제를 요약해 놓은 보고서, 이 3가지 형태로 돌아가며 진행된다. 이런 구성은 어느 연령에게나 좋은 책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어 보인다. 개성 있는 외계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만화는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아우레 탐사대의 재미있는 지구 생활기는 스토리의 힘을 실어 긴 글을 따라 읽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일상의 뇌과학 지식과 함께 저학년 자녀의 독서력도 높일 수 있다. 나처럼 아이의 책을 몰래 읽는 어른이라면 과학자 바바가 아우레 행성에 보내는 글씨가 빽빽한 보고서를 읽으면서 전공서에서 뽑아 온 듯 한 뇌과학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인간탐구보고서]는 현재 6권까지 나왔고 각 권은 외모, 기억력, 감정, 사춘기, 감각, 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외모’에 대한 1권은 심리학 시간에 뇌를 약간 배운 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음.. 이게 뇌과학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인들에게는 머리 하나, 눈 두 개의 지구인이 똑같을 정도로 비슷해 보이지만 지구인들은 외모의 차이에 민감해한다. 아우레 탐사대가 지구인으로 변장하여 공인중개사에서 집을 구하는데도 외모가 영향을 준다. 잘생긴 외모의 천재소년으로 변신한 아싸는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잘생기고 똑똑한 모습에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때론 똑같은 옷과 가방을 메는 ‘유행’에 따르며 보편성에 합류하지 않는 독특한 지구인은 오히려 외계인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뇌 과학인 듯 아닌 듯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나열한 것 같았다.
역시 어린이 학습 만화는 구매욕을 위해 흥미위주로 만든 것 같다는 나의 선입견을 굳히는 실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아우레 탐사대가 지구에서 잘 살아가는지 궁금한 마음에 도서관에서 어렵게 빌려온 2, 3권을 읽어 보았는데 새롭게 보이는 탄탄한 구성과 깊이 있는 뇌 이야기에 놀라서 책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었다. 오히려 1권에서 수많은 뇌 이야기 중 어린 독자의 시선을 얻어내기 위해 고심했을 주제 선정과 적당한 지식의 양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4명의 외계인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아싸는 ‘하필이면’ 잘생긴 천재소년, 늘 앉아만 있어 잘 걷지 못하는 바바는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혹은 애완견으로, 오로라는 군인 외계인이지만 늘씬한 긴 머리의 여인으로 변하여 미용실에 취업을 하고, 큰 덩치의 라후드는 몸도 마음도 푸근한 아저씨로 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옆집에는 5학년 써니와 중2인 유니 자매, 아빠이자 공인중개사인 금 사장님, 미용실 원장님인 엄마 위니 원장 그리고 줍줍 할매가 산다. 흔히 만날 수 있을 만한 인물과 일상의 에피소드로 뇌 이야기를 설명하니 읽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나도 그랬지, 아하 그렇구나’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인간은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다는 주제로 배경은 위니 원장님의 동네 미용실이 나온다. 아줌마 손님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드라마의 이야기를 하는데 배우의 실제 이름과 극 중 이름을 헷갈려하고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한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오로라는 지구인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미용실에 도둑이 들어와서 가방을 훔쳐간다. 우리의 오로라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도둑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하고 엄청난 달리기 실력으로 도둑을 잡는다. 이에 대한 보고서는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와 종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들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빠인 금사장이 떡볶이를 사 오는데 떡볶이 냄새를 맡으니 낮에 있던 도둑 사건이 생각난다며 떡볶이가 우리의 기억력을 좋게 해 준다고 너스레를 떨며 ‘후각이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이 얼마나 얄미울 정도로 지식을 친절하게 전달해 주는 책인가!
며칠 전 아이 등교 길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전문가를 초대해서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중 후각을 통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때의 감정을 불러온다고 들었는데 책에서 왜 그런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바바의 보고서는 인간의 다른 감각은 뇌의 “시상”을 통해서 대뇌 곳곳으로 전달되지만 후각 정보는 대뇌로 직접 전달되고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바로 연결되어서라고 쓰여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아이도 어른도 자신의 관심과 이해력 수준에 따라 만화, 글, 보고서를 읽으며 뇌과학 지식을 입맛에 맞게 익힐 수 있다. 나는 4명의 외계인과 동네의 일상을 탐험하며 뇌과학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뇌과학의 경이로움을 전합니다. 뇌과학의 세계를 흥미롭게 탐험하시길!
얼른 첫째 아이에게 할머니께 전화하라고 옆구리를 찌른다. 연금으로 플렉스 하며 필요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하신 할머니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말이다. 더하여 언젠가는 상담계로 복귀하고 싶은 내 마음을 담자면 한번 읽고 이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기에는 내용이 제법 많고 알차다. 학교 상담자였던 내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책의 각 소재들과 내용은 매우 탐났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있는 집에 언젠가는 오게 되는 사춘기를 주제로 삼은 4권이 궁금하다. 누구도 못 건드리고 세계 공통 고민의 시기일 듯한 사춘기를 대체 과학으로 어떻게 설명하였는지 말이다.
엄마도 아빠도 함께 보자. 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는 마치 외계인이 지구인의 탈을 쓴 것처럼 어렵고 낯선 뇌과학의 정체를 숨긴 채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으로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 미래가 온다 [뇌과학], 와이즈만> 아동용 뇌 심리학 개론서처럼 중요한 뇌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만든 책이다. 쉽고 간단한 삽화 함께 ‘뇌’하면 생각나는 지식과 재미있는 뇌과학 실험들이 설명되어 있다. 만화가 아니라서 아이들의 관심을 한눈에 사로잡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글을 읽지 않고 중간중간 삽화만 보아도 괜찮다. 삽화에는 아이들용 유머가 재미있게 녹아있다. 그러나 뇌 관련 용어가 어렵고 뒤돌아서면 까먹는다 하여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뇌 관련 용어들을 한글로 풀어써 놓은 점은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