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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Jun 23. 2021

아들의 놀이

우악스럽고 천진난만하게 놀아보자

  아들이 하나 있다. 우리 집 셋째 세 살 박 산봉우리 어린이다. 산봉우리는 나 어렸을 적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사내아이이다. 아빠를 꼭 닮은 통나무처럼 단단한 몸집에 힘도 쎄서 몇 년씩 멀쩡하던 장난감도 이 녀석이 가지고 놀기만 하면 툭 부러진다..


  이런 산봉우리 주변에는 여자가 많다. 집에는 누나 두 명과 여동생이 있고, 어린이집 같은 반 비슷한 개월 수 친구는 모두 여자아이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소꿉놀이도 좋아하고 시크릿 쥬쥬 노래에 원피스를 입고 즐겁게 춤을 춘다. 그래도 언제부턴가 누나들 장난감 사이에서도 알아서 자동차를 찾아와서 ,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포크레인과 공룡을 구경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남자아이는 다르구나 싶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잘 노는 산봉우리를 보며 양성 평등시대 어울리는 인재로 자라는 구나 흐뭇하게 보았다.  

 

  어제는 그런 산봉우리의 어린이집 상담이 있었다. 최근에 떼가 늘었지만 셋째이다 보니 눈치도 있고 애교도 있는 편이라서 마음속으로는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집에서는 누나들과 싸우는 것이 일상이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상담의 마무리쯤 원장님께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머니, 조심스럽지만 2학기에는 산봉우리가 다른 반으로 옮기는 게 어떨까 싶어요.”

    

  집에서 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물어보는 원장님의 설명은 이러하셨다. 산봉우리가 어린이집에 오면 오전에는 혼자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여자아이들은 그의 놀이에 관심이 없고, 그도 여자 친구들의 놀이를 매번 같이 하는 것은 재미없어한다고 하셨다. 혼자 노니 아이의 놀이는 계속 짧게 끝나고 자기도 답답한지 요새는 오후가 되면 자동차로 교구 선반을 쿵쿵 찍고 다닌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생각하니 집에서도 누나들, 같은 반 친구들도 여자아이들이라서 산봉우리와 함께 ‘남자아이의 놀이’를 할 사람이 없구나 생각하셨다고 한다.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남자아이들이 많은 옆 반으로 옮기는 게 어떤지 물어보신 것이다.


  당연히 아이가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자아이들의 놀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들어오는 옆구리 공격을 받은 기분이었다.


   놀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아이들은 눈뜨면 잠들 때까지 누구도 빠지지 않고 신나게 놀았고, 아빠도 평일이며 주말이며 시간이 날 때마다 몸으로 놀아주고 한적한 곳으로 킥보드도 자주 타러 나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산봉우리는 집에서는 누나들과 같이 놀 때면 그 놀이를 따라 하고, 시골 출신 70년대생 남편은 몸으로 놀아 줄 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 본 적이 없어 그 방법을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집안일이며 막내를 먹이고 챙기느라 ‘산봉우리’만의 놀이에 초점을 맞춘 적이 없었다.   


  원장님의 말을 듣고 그래도 “산봉우리가 혼자 어디서든 자동차를 잘 가지고 놀아요.”라는  변명 같은 말을 지만 원장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어머니, 자동차를 바닥에 굴리면서 혼자 노는 건 한계가 있어요. 같이 신나게, 길게 놀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거죠. 그래서 놀고 싶은 마음이 풀리지 않고 답답해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막내를 안고 아이들을 챙기려면 산봉우리는 뒷전이었다. 리모컨은 항상 누나들 차지여서 시크릿 쥬쥬와 캐치 티니핑을 틀기 바빴고, 놀아 달라며 막내를 안고 있는 나에게 올라타거나 장난감 중 긴 막대를 휘두를 때면 위험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어린이집에서도 집에 와서도 이러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마음이 짠했다.


  오늘은 막내 들판이에게 마지막으로 수유를 하고 산봉우리와 놀기로 하였다. 자야 할 시간이지만 엄마가 2층으로 올라가 놀자고 하니 아이의 눈은 동그래졌다.


  그렇게 아들과 놀이가 시작되었다. 자동차 매트 위에 몇 개의 자동차를 꺼내서 놀았다. 나는 도로 매트에 자동차를 굴리며 사고가 났다고 도와 달라고 하였고 아이는 빙글빙글 버스 타운 주차장에 차만 종류별로 바꿔가며 주차를 하였다. 서로 같은 행동과 말을 반복하며 우리의 놀이는 침묵이 자주 찾아왔다. 침묵 속에서 눈이 마주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서로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늘은 마음먹고 놀아 주려고 한 것인데 나도 산봉우리도 놀아 본 적이 없어서 남자아이의 놀이에서는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하는지 몰랐다. 혼자 놀던 산봉우리도 이랬겠구나 싶었다. 또 눈이 시큰해졌다.

   나는 산봉우리가 나를 성가시게 했던 행동을 따라 했다.     


“출발합니다. 부릉부릉”    


  나는 산봉우리의 머리와 몸에 부릉부릉 자동차를 굴리며 부비댔고 내 손이 있던 자동차는 아이의 온몸을 지나 장난감 방의 벽과 낮은 천장을 타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벽과 천장을 타고 우다다다 부르르릉 움직이자 순간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며 나를 따라 하였다. 이거였구나!


 까르르 웃음이 가득 차오르는데 마침 아이는 똥을 쌌고 한참 느껴지는 재미에 절대 기저귀를 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니야 아니야 똥 아니야.”  

“장난감 안 치우고 기다리고 있을게”    


  눈치가 백 단인 산봉우리, 기저귀를 갈고 오면 장난감을 정리하고 그만 자자고 할 것 같았나 보다. 한 발짝 물러서니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아이는 나를 의심했지만 기저귀를 처리하러 아빠에게 갔다.

  잠시 후 놀이는 다시 시작되었다. 북적이는 소리에 1층에서 책을 읽던 첫째도 합류하였다. 자동차와 슈퍼윙스 친구들, 미니 특공대까지 총출동하며 우리는 신이 났다. 마음의 여유를 내어 아이의 놀이에 온전히 집중하니 나도 재미가 있었다. 놀이에 빠져 신이 나니 아이들이 장난감을 왜 하나씩 안 꺼내고 와르르 쏟아 버리는 것인지, 놀고 있을 때 정리하자고 하면 왜 듣는 척도 안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고가 난 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견인차가 오고 미니 특공대가 출동했지만 구조할 이 없어 결국 날개 달린 슈퍼윙스가 오고서야 모두 힘을 모아 자동차를 구해내며 놀이가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놀고 정리할까?”     


산봉우리가 어린이집에서는 그렇게 정리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집에서 정리는 늘 누나들이나 내 몫이었다. 그렇게 한 타임 신명 나게 놀고 난 아이는 장난감을 각각의 바구니 속에 깨끗이 정리하고 잠자리로 향했다. 모든 일은 기저귀를 갈고 난 후 10분 만이었다.    


“산봉우리야, 내일도 엄마랑 신나게 놀아줘!!”    


우리 산봉우리가 신이 났다. 나도 새롭게 마음이 차올랐다. 이것이 놀이의 힘인가 보다.  

때론 우악스럽고 천진난만하게,

놀이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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