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 어린이를 위한 입학 선물
우리 집에서 첫 번째 후원이 시작되었다. 후원의 주인공은 올해 초등학생이 된 첫째 박 솔방울이다. 박 솔방울 어린이는 똘똘한 편이지만 TV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나는 TV를 보여줄 때 왠지 모를 나의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EBS에서 방영되는 만화를 선택한다. 채널을 보다 보면 어릴 적부터 솔방울은 방송과 방송 사이에 나오는 후원 광고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그걸 보며 아이는 나에게 다양한 질문을 자주 했다.
“엄마, 후원이 뭐야?”
“후원금으로 저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데.”
“저 친구는 마실 물이 없데.”
“엄마 지구가 아파서 북극곰이 아프데.”
“나도 후원이 하고 싶어.”
처음 후원이 뭐냐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흐렸다. 내가 생각한 ‘후원’이란 경건한 자세로 진지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첫 후원은 14살 때 기아 체험 24시간이란 공개방송 참여였다. 실내 경기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24시간 동안 굶으며 기아 체험을 해보는 방송이었다. 선의의 마음보다 좋아하는 가수도 보고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제는 신생아를 위한 모자도 떴다. 그러나 당신의 후원금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린다는 전화번호에 나를 등록시켜 매달 돈을 내는 일은 어려웠다. 매월 3만원이란 돈이 참 애매하다. 나를 위해 쓰자면 외식 한 번으로 사라지는 돈인데 다른 이를 위해 매달 내기는 아까운 이해관계로 따져지는 돈이었다.
몇 년간 TV 프로그램 사이 후원 광고를 보고 자란 박 솔방울 어린이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 해, 우리는 드디어 마음에만 있던 후원을 하기로 했다. 그 전화번호에 솔방울의 이름을 등록하여 매달 후원금을 내기로 말이다.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월급이 아니라도 아이가 원한다면 몇 년간 마음으로만 바라던 후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 이름으로 된 후원은 솔방울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이었다. 아이의 결정 앞에서는 매달 내는 후원금이 아깝다는 옹졸한 생각을 벗어날 수 있었다. 든든한 지원책은 생일과 명절에 꾸준히 모아 온 아이의 용돈 통장이었다. 들어오면 월급이 스쳐나가는 생활비 통장과 다르게 아이의 통장은 우리 집에서 가장 든든한 계좌였다. 우리는 그렇게 후원을 시작했다.
솔방울의 이름으로 된 계좌를 후원금 통장으로 신청했다. 보호자인 내가 신청하여도 번거롭지 않았다. 아이는 나와 함께 후원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절차를 살피며 대상 아동이 정해지기를 매일 손꼽아 기다렸다.
“내 친구는 어디에 살고, 몇 살일까?”
도움을 받는 아이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하는 솔방울의 단어 선택에 나는 매우 놀랐다. 후원금을 내기 때문에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건 어른인 나의 굳은 생각일 뿐이었다. 며칠 후 대상 아동이 정해지고 아이의 정보가 핸드폰에 도착하였다. 예쁘게 원피스를 입고 엄마와 함께 있는 사진 속 여자 아이는 작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솔방울은 처음 들어보는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를 궁금해했고 아이가 쓰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후원 아동이 인형을 좋아한다고 하니 선물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도착한 ‘친구’의 사진은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매일 그 사진을 보니 새 가족이 생긴 기분이었다.
“엄마! 어떻게? 이 동생이 학교에 안 다닌 데. 내가 보낸 돈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말하는 아이의 진지한 얼굴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 친구는 우리 집 들판이처럼 아직 1살이라 학교를 안 가는 거야,
나중에는 솔방울이 열심히 모아 보낸 돈으로 학교에 갈 거야.”
사실 나는 당연히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를 후원하게 될 걸 생각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 정도 후원을 예상했는데, 막 한 살이 된 아이라니.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당황스러웠다. 조심스럽게 투덜거리는 내 이야기에 남편은 20년을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 8살인 솔방울이 자라서 스스로 벌게 된 돈으로 그 후원을 이어간다면 의미가 더 크지 않겠냐고 했다. 정말인지 이 집 사람들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계산을 하자면 20년간의 내가 내야 할 후원금은 아이를 학원에 몇 달간 보내면 사라지는 돈이다. 돈으로 계산한다면 그렇지만, 이십 년간 솔방울과 자라날 나눔의 의미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 비용일 거다. 이 또한 내 아이를 위한 보이지 않는 투자였다. 항상 최상의 가성비를 따지는 내가, 솔방울과 후원 아동, 두 아이를 함께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후원에 대한 고민을 더욱 덜어주었다.
내 돈으로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돕는 일, 내가 낸 돈이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곳을 갈까? 머릿속으로 생각을 거르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팍팍한 서울 여자이던 나는 후원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네 아이를 키워 보니 내가 낸 후원금이 온전히 내 후원 아이를 위해 사용되기만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목마른 아이에게 깨끗한 물 한 모금을, 배고픈 아이에게 당장 밥 한 끼, 열이 펄펄 끓는 아이에게 해열제 한 알을 주는 것, 마음이 서글플 아이에게 건네는 봉사자의 한마디. 그 상황에 있을 아이와 부모에게는 무엇이라도 표현 못 할 큰 고마움이라는 걸 네 아이를 키워 보니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의 후원은 작은 날갯짓이지만 그들에게 닿을 때면 나비효과처럼 큰 바람이 될 것이라 믿는다.
방글라데시의 아이와 친구가 된 지 이제 3달이다. 1살인 방글라데시의 어린이도 자라서 박 솔방울 어린이처럼 학교에 가게 될 거다. 두 아이가 함께 자라는 날들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줄지 두근거린다. 우리 가족이 된 후원 아동에게 말하고 싶다. 너의 삶을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이다.
*본 이야기는 2021년 월드비전 후원 스토리 공모전에 수상하여 월드비전 홈페이지와 오디오 북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함께 수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