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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Jun 03. 2021

우리 집 후원 이야기

솔방울 어린이를 위한 입학 선물

   우리 집에서 첫 번째 후원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 가족 구성원은 우리 부부와 아이 넷, 총 여섯 명이다. 그중 후원의 주인공은 올해 초등학생이 된 첫째 박 솔방울 어린이이다. 박 솔방울 어린이는 똘똘한 편이지만 TV 시청을 매우 좋아한다. 엄마인 나는 TV 시청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주로 EBS를 함께 보는데 아이는 몇 년 전부터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나오는 후원 광고를 보고 내게 질문을 했다. 그 물음의 종류는 다양하다.    


“엄마, 후원이 뭐야?”

“후원금으로 저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데”

“저 친구는 마실 물이 없데”

“엄마 지구가 아파서 북극곰이 아프데.”     



  처음에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같이 보았다. 왜냐하면 설명할 말이 없기보다 ‘후원’이란 마치 경건한 자세로 잘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중 1 때 월드비전 기아체험 24시간에 참가하는 일로 첫 후원을 경험하였다. 좋아하는 가수도 보고 싶고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하루 밤 외박을 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신생아를 위한 모자를 떠서 보내기도 했지만 당신의 후원금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린다는 전화번호에 ‘나’를 등록시켜 매달 후원금을 내는 일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언젠가는 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매달 3만 원이란 돈이 참 애매하다. 나를 위해 쓰자면 외식 한 번에 사라지는 돈이지만 다른 이를 위해 매달 쓰자니 아까운 이해관계로 따져지는 돈이었다.    


  몇 년간 교육방송 어린이 프로그램 사이의 후원 광고들을 보고 자란 박 솔방울 어린이는 올해 3월 결정을 하였다. 그 전화번호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을 하여 매달 후원금을 내기로 말이다. 우리 부부는 화수분 같은 월급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이름을 앞세우면 몇 년간 마음속에만 있던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학 선물은 아이 이름으로 된 후원이었다. 아이의 결정 앞에서는 매달 내는 후원금이 아깝다는 옹졸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든든한 지원책이 되었던 건 매년 생일과 명절에 틈틈이 모아 온 아이의 용돈 통장이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우리 집 생활비 통장과 다르게 아이의 통장은 우리 집 계좌들 중에서 가장 두둑하다. 그렇게 월드비전에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솔방울 어린이의 이름으로 된 계좌를 후원 통장으로 연결하였다. 보호자인 내가 신청하여도 번거롭지 않았다. 아이는 나와 함께 월드비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후원 절차를 살피며 대상 아동이 정해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내 친구는 어디에 살고, 몇 살일까?”    


  도움받는 아이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하는 솔방울이의 단어 선택에 사실 나는 매우 놀랐다. 후원금을 내기 때문에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건 어른인 나의 굳은 생각일 뿐이었다.


  며칠 후 대상 아동이 정해지고 정보가 도착하였다. 예쁘게 원피스를 입고 엄마와 함께 있는 사진 속 여자 아이는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솔방울이는 방글라데시가 어떤 곳이지 궁금해하며 아이가 쓰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인형을 좋아한다니 보내주고 싶다 하고 ‘친구’의 사진을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 사진을 매일 보니 새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엄마! 어떻게 이 동생이 학교에 안 다닌데, 내가 보낸 돈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에 나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 친구는 우리 집 막내 들판이처럼 아직 1살이라 학교를 안 가는 거야,  나중에는 솔방울이가 열심히 모아 보낸 돈으로 학교에 갈 거야.”    


  사실 나는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를 후원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쯤 후원을 생각했는데 막 한 살이 된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해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 조심스레 투덜거리는 내 이야기에 남편은 20년을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 8살인 우리 솔방울이가 커서 스스로 벌게 된 돈으로 그 후원을 이어간다면 얼마나 더 의미가 크겠냐고 말하였다. 이 집 사람들은 나를 참 부끄럽게 만든다.

  계산을 하자면 20년간의 후원금은 내 아이를 사설학원에 몇 개월 보내는 것으로 사라질 돈이다. 그것을 돈으로 계산한다면 그렇지만 20년간 솔방울 어린이와 자라날 후원의 씨앗과 나눔의 의미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 비용일 것이다. 이 또한 내 아이를 위한 보이지 않는 투자였다. 항상 큰 가성비를 따지는 내가 솔방울이와 후원 아동, 두 아이를 함께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후원에 대한 고민을 덜어 주었다.


  후원이란 무엇일까, 내가 돈을 내어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돕는 일, 내가 낸 돈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위해 사용될까? 머릿속에서 생각을 거르던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팍팍한 대도시 아가씨였던 내가 어느새 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작도 하지 않았던 후원에 대해 내가 낸 후원금이 온전히 아이만을 위해 사용되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목마른 아이에게 깨끗한 물 한 모금, 당장 배고픈 아이에게 밥 한 끼, 열이 펄펄 끓는 아이에게 해열제 한 알을 주는 것, 마음이 서글플 아이에게 건네는 봉사자의 한마디,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상황의 그 아이에게, 그들의 부모에게는 무엇보다 고마운 일 것 같았다.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나의 후원은 작은 날갯짓이지만 그들에게 닿을 때면 나비효과처럼 큰 바람으로 감싸질 것이라 믿는다.  


 우리 집에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 세 명 더 있다. 첫째 아이를 시작으로 취학 아동이 될 때마다 한 명씩 후원을 시작하려 한다. 그날을 위해 다른 아이들 역시 각자의 이름으로 세뱃돈과 용돈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식구 많은 집 외벌이 살림을 하는 남편과 나의 입장에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더 편한 마음으로 후원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인 우리도 지금보다 더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긴다.     


  방글라데시의 어린이와 친구가 된 지 이제 3달이 지났다. 1살인 방글라데시의 어린이도 자라서 박 솔방울 어린이처럼 학교에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두 아이가 함께 자라는 날들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줄지 두근거린다. 우리의 후원 아동에게 말하고 싶다. 너의 삶을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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