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버터만큼 퍽퍽하고 진득한, 그렇지만 잘 살고있는 이야기
“아휴 정신없어. 얘들아 뛰지 좀 말라고!!”
나는 아기띠에서 푹 잠들어 버린 넷째를 안은 채 주방 수납장을 열고 아이들 간식 상자를 꺼냈다. 거실에는 누나가 그린 그림을 뺏어 든 미운 세 살 산봉우리가 뱅글뱅글 뛰어다닌다. 그 뒤로는 화난 표정의 이파리가 종종거리며 녀석을 잡고 있다.
간식통 안에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과자와 초콜릿, 과일 맛 막대사탕과 곰 젤리가 들어있다. 이름은 아이들 간식 상자지만 사실은 내 보물 상자다. 통 안을 이리저리 휘적거리다 작은 오트밀 사탕과 검은 포장의 아몬드 초콜릿이 집어 든다. 오늘의 당첨. 나는 오트밀 사탕을 쏙 까서 입에 넣었다. 잠깐의 행복이 찾아온다. 눈앞에 시끄럽고 어질러진 거실에서 잠시 나를 사라지게 해준다. 이번에는 아몬드 초콜릿 껍질을 벗겨서 오도독 씹으며 눈을 감았다.
“엄마 밤늦게 뭐해?”
방문을 꽉 닫고 공부하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왔다. 자다 깬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고 서 있다. 또 땅콩버터를 들고 있다. 파란색의 땅콩버터 뚜껑을 열고 커다란 숟가락으로 내용물을 퍼서 입으로 넣는다. 나한테는 매일 살찐다고 뭐라더니 엄마는 자다 깨서 이 밤에 땅콩버터를 먹는다. 그래도 엄마는 살도 안 찐다. 하늘은 불공평하다.
“엄마 자다 깨서 이 밤에 땅콩버터를 왜 드셔요. 아빠는 아직도 안 왔어?”
“모르겠다, 전화도 안 받네.”
벌써 자정이 다 된 시간. 몇 년째 달라지는 것 없이 사업이 힘들다며 술을 먹어야만 말을 하는 아빠. 그 이야기 중 내가 들어 달가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이제 아빠는 거의 매일 술을 먹고 늦게 온다. 굳게 닫긴 내 방문은 아빠의 달갑지 않은 이야기를 피해 갈 수 있는 얇은 방패막이다. 방어률은 50대 50쯤. 가끔은 너무 취해 어디선가 오는 연락에 엄마가 찾으러 가야 하는 날도 있다. 연락이 오는 곳은 다양하다. 아빠 친구, 택시 기사, 경찰서. 내가 데리러 가지 않으면서도 어디서 연락이 올 때마다 매번 덜컥거리는 마음은 술에 취한 아빠만 모를 뿐이다.
오늘 낮에 은행에 가서는 공무원인 엄마 이름으로 사업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나한테만 말한다. 집에서 엄마의 말을 들을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오빠는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끝났을 텐데 오지 않는다. 온다고 해도 신발을 벗자마자 현관문 바로 옆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을 테지. 나보다 더 굳게.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땅콩버터를 몇 번 퍼먹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었다. ‘틱’ 하고 닫히는 냉장고도 기운이 없다. 잠이 달아난 건지 연락 없이 늦는 아빠를 기다리느라 잠을 쫓아내는 건지 엄마 방에서는 작은 전등을 켜지고 책을 펴는 소리가 난다.
아까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으며 엄마가 같이 먹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식탁에 앉지도 않고 서서 빵을 찢어 먹는 엄마를 보면 엄마는 왜 앉지도 않고 서서 밥도 아닌 빵만 먹느냐고 핀잔만 했다.
아몬드 초콜릿 한 알은 입안에서 금방 사라져 버린다. 입안에는 초콜릿의 쌉싸름한 맛과 아몬드의 텁텁함이 남았다. 눈을 뜨니 냉장고 앞의 엄마와 땅콩버터도 사라진다.
결혼 전에는 삼시세끼 차려진 밥을 먹고 식사를 거르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밥순이인 내가 빵순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밥을 차리고 아이를 먹이면 진이 빠져버려 고프던 배도, 먹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버린다. 내 밥그릇 하나라도 설거지 더미에서 덜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간식통을 열고 부스럭거리며 초콜릿과 과자를 꺼내 먹게 되었다. 설탕과 밀가루는 에너지 부스터처럼 순식간에 입안을 채워주고 잠깐의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제야 이해된다. 그때 엄마가 왜 땅콩버터를 먹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