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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Nov 12. 2021

사남매가 사는 우리 동네 숲 이야기

숲과 하늘을 보며 얻어내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

    우리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 산 아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6년 전 우연히 이곳을 들렸다 마을의 분위기와 모습에 반하여 바로 이사를 결정했다. 나는 강 건너로 여의도 벚꽃길이 보이는 한강 어느 다리 옆에서 자라났고 결혼하고도 한강이 보이는 어느 언덕 위에 살았다. 아이를 낳고는 언덕이 많은 곳에 살아 아이와 외출했다 돌아오려면 바닥만 보며 유모차를 밀어야 했다. 위를 보고 걸음을 끌면 기울기에 압도당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바닥만 보고 유모차를 밀어야 한다. 그렇게 걸어 오르며 어느새 언덕 위 허리를 펴서 눈앞에는 반짝이는 한강과 대교들 그 너머로 산이 보였다. 솔방울을 낳고 키울 때만 해도 강은 반짝이고 맑은 하늘은 막 전업주부가 된 나를 위로해주었다.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시간이 지났다. 뉴스에서는 늘 미세먼지 소식을 이어졌다. 힘들게 언덕에 올라도 한강 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파란 하늘과 반짝이던 강은 사라지고 잿빛 미세먼지만 가득했다. 나고 자란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했지만 갈수록 뿌연 하늘을 보면 마음은 답답해졌다. 그때부터 어렴풋한 소망으로 산이 보이는 곳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린 이 마을에서 좋은 집을 만나 솔방울이 네 살이던 겨울에 이사를 왔다.     


  지금 사는 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다. 사당역에서 버스로 20분이면 도착한다. 톨게이트를 나와 좁은 도로를 내려오면 빛바랜 커다란 은행나무 조형물이 있는 굴다리가 마을의 입구이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수원에 위치한 사도세자 묘를 참배한 후 쉬어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면 산에서 길게 내려오는 개천이 우리를 맞는다. 개천을 따라 산 입구까지는 작은 도로와 산책길이 이어진다. 그 길로 심어진 이팝나무는 매년 5월이면 새하얀 꽃을 만개하다 흩날리며 내년을 기약한다.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이팝나무는 작고 여렸지만 우리가 적응하고 사는 몇 년간 나무도 건실해졌다. 이팝나무는 벚꽃이 지는 늦은 봄 연초록의 잎을 틔우고 초여름 작고 하얀 꽃을 가득 피우는데 바람에 꽃이 흩날릴 때면 아카시아 향과는 또 다른 은은하고 싱그러운 초여름의 향기가 난다. 


  산으로 향하는 정직한 길옆으로 누군가의 텃밭이 줄지어 있다. 텃밭은 언제 보아도 예쁘고 부지런하다. 일년내내 쉬는 법 없이 가득한 생명력을 담아낸다. 계절마다 밭에서 나는 건 같지 않아서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마음이 쳐지는 날에는 약간의 기운만 챙겨 나와 텃밭을 바라 본다. 애써 걷지 않아도 자라는 것이 주는 에너지를 보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11월의 밭은 김장을 위한 밭이다. 무는 무청을 달고 흙 위로 하얀 머리는 쑥 내민다. 그 옆에는 넓은 잎을 자랑하는 배추가 열심히 속을 채우고 있다. 무와 배추가 수확되면 밭은 또 비워지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할 거다.

  마을 입구에서 15분쯤 걸으면 이팝나무 가로수와 밭은 끝나고 산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차들은 들어갈 수 없다.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면 저 멀리 마을 입구 뒤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바로 옆에 도시를 끼고 있는 숲이지만 입구부터는 키를 뻗은 소나무가 빽빽하다. 그 사이 나무가 만든 하늘길로 파랗고 높은 하늘이 조각 인다. 산으로 향하는 길은 탁한 도시의 소음과 공기를 걸러 준다.

  오늘은 곱게 물든 가을 산을 보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섰다. 우리는 이곳으로 와서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계속 서울에 살았다면 산봉우리와 들판이를 낳지 못했을 거라고 남편과 나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숲과 나무를 보고 살며 마음이 바뀌었고 그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네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부터는 첫째, 둘째, 셋째는 어린이집 생활로 익숙해진 숲길을 앞서 뛰어간다. 다람쥐 밥으로 해바라기씨를 놔둔 곳, 친구들과 숲 아지트를 만든 곳 등 서로 아는 장소를 말해 주며 아이들은 신이 났다. 유모차를 탄 들판이는 뛰어가는 언니 오빠 바라보다 커다란 나무들을 토끼 눈으로 올려본다. 코로나와 함께한 시간 마음을 졸이며 아이들과 집에만 있을 때도 앞뒤로 훤히 보이는 산과 하늘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6년 전 우리가 서울을 떠날 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멀쩡히 집이 있는데 이사를 왜 가냐고. 서울은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고.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려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곳에 와서 숲을 만났다. 아이들은 매일 숲에 나가고 흙을 밟고 농작물을 가꾼다. 숲은 항상 새로운 놀잇감으로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계절을 알려 주었다. 아이들을 밝고 튼튼하다. 그리고 숲과 함께 자란 기억은 아이들이 커가며 지칠 때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살면서 크게 욕심을 내지 않은 나의 남편은 이곳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매일 오가는 마을 입구를 지날 때면 이곳에 살게 되어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이제 물들었던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개천과 마을을 둘러싼 산에는 하얀 눈이 덮일 거다. 그때면 조용해진 깊은 밤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온 고라니를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산과 나무가 주는 회복의 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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