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섬세한 세상 흔들리는 엄마에게 필요한 건 무던한 위로
“산봉우리야 그만하고 밥 먹자. 계속하면 이제 진짜 화낸다!”
어느 아침 나는 셋째의 작은 투정에도 예민했다. 그날 오후 대학병원에 첫째의 성장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아홉 살이 된 솔방울은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고. 한참 크는 여자아이의 일이다. 전에도 한 번씩 말할 때가 있었지만 곧 괜찮아지길 반복했다. 이번에도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며 크는 일이라고 아이를 토닥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자주였다. 솔방울은 키도 평균이고 살이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평균 체형이다. 내가 자라던 때와 다르게 요새 아이들에게 성장검사는 흔한 일이 됐지만 그 일이 나에게 오리라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성장 검사받을 곳을 찾아보았다. 이리저리 검색해 봐도 오랜 대기를 해야 해서 당장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진전없는 검색을 계속하며 왜 나만 전전긍긍이지?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아이의 말이 들리는 건지 모를 남편의 귓구멍이 떠오르며 외로운 한숨이 나왔다. 한참을 검색하여 그나마 몇 개월 안에 진료가 가능하다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는 마침 내일 취소된 예약이 있다며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솔방울과 나는 다음 날 오후 병원으로 향했다. 유일하게 집 앞에 오는 한 대의 버스가 병원을 지나는 노선이었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택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았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7월의 날씨는 덥고 축축했다. 비 올 듯 구름 낀 하늘이 내 마음 같다. 초조한 마음으로 서둘렀기에 30분이나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동생들 어린이집 하원 시간 전에 돌아가야 했다. 하나하나 사사로운 일로 주변에 도움받을 곳이 없으니 병원 가는 일도 쉽지 않은 다자녀 가정이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가 시작되어 다행히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여유가 생겼다.
나는 아이의 키, 몸무게, 부모의 키, 나의 초경 연령 등의 정보를 적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안에는 화장기 없는 모습에 머리를 질끈 묶은 의사가 있었다. 의사는 막 진료실로 들어선 아이에게 앉으라고 하더니 빠르게 청진하고 아이의 가슴을 쓱 만져 보았다. 그러곤 별말 없이 수납 후 방사선 과로 가서 뼈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다. 나와 아이는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키는 대로 뼈 사진을 찍고 수납을 하고 다시 소아 청소년과로 향했다. 그리고 진료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그 사이가 10분 정도나 됐을까 짧은 시간 동안 진료실에 들어오고 나가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솔방울처럼 초진을 받으러 온 아이, 익숙한 듯 주사를 맞으러 온 아이들도 있었다. 진료실은 오가는 사람으로 붐볐고 붐비는 진료실을 보며 나는 걱정을 해야 하는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위로받아야 하는지 마음이 헷갈렸다. 잠시 후 간호사는 나만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남겨진 솔방울의 눈망울이 겁을 참는 망아지 같았다. 몸만 크고 겁이 많은 아이인데.
이번에도 의사는 내가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내가 앉기도 전에 말을 한다. 아이의 상태는 가슴 성장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고 뼈 나이는 1년 반이 빠르다고. 자세한 상황은 피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한 달 뒤로 피검사 예약을 잡고 가라고 말했다. 끝. 눈맞춤 없던 20초 안팎의 시간, 그럴 거면 왜 앉으라고 한 건지 나는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을 바랬을까? 과한 영양 섭취와 환경호르몬이 난무하는 시대, 같은 이유로 진료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수많은 환자 중 하나일 텐데. 나의 작은 키와 초경 연령을 생각하면 누굴 탓할까 싶었다.
항상 어른스러웠던 나의 솔방울이 줄줄이 동생들을 보느라 너무 빨리 성숙해졌을까. 요새는 책에서 나오는 작은 로맨스에도 얼굴이 발그레하던데 그걸 못 보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피검사를 하자고 한다. 주사 한 방도 무서워하는 아이가 오랜 시간 동안 몇 번씩 해야 하는 채혈 검사를 할 수 있을까. 검사 시간이 오래 걸리면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크고 작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전화가 온 남편에게 검사 결과를 얘기했다. 한 달 뒤에 피검사를 또 해야 한다고 검사결과를 말했다.
“그래?”
남편의 무던한 성미는 예민하고 복잡한 세상과 늘 한 걸음 떨어져 있다. 반면 아이를 낳고 치이며 조금 무던해지긴 했지만 타고난 나의 성미는 예민하고 불안이 가득하다. 불확실한 세상을 모두 대비하듯 살아가야 살아지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편의 반응엔 아이의 문제를 온통 혼자 짊어진 기분이다. 같이 살자 결혼하고, 같이 키우자 애를 낳지 않았나? 남편이 그동안 잘해주었던 건 기억이 나지 않고 화와 서운함만 밀려온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휴대폰으로 성조숙증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정보는 차고 넘친다. 이미 주변에 만연한 일이다. 피검사의 수치에 따라 어떻게 치료할지가 결정되고 주사를 맞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하건 운동과 질 좋은 수면이라고 한다.
초조한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결국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서 한 소리를 퍼부었다. ‘애가 아프다고 하는데 걱정 안 되냐. 별일 아니라고 생각되면 애 힘들게 검사할 필요도 없다. 초경을 일찍 시작하면 어린애가 뒤처리는 어떻게 할지 걱정도 안 되냐고.’ 저녁 식사를 챙기며 구겨진 얼굴로 한숨을 쉬는 나에게 고개를 파묻고 책을 보던 솔방울이 묻는다.
“엄마 나 때문에 화났어?”
감추지 못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게 싫었다. 퇴근하자마자 내가 안고 있던 근심 폭격을 그대로 받은 채 씻으러 들어갔던 남편이 나왔다.
“그래서 솔방울이 어떻다는 건데? 나는 여자애들이 어떻게 크는지 모르는데 앞뒤 없이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저녁 식사를 정리하고 휴대폰을 확인하자 아는 언니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결혼 전 동호회를 통해 맺게 된 인연인데 비슷한 또래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때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솔방울보다 한 살 많은 쌍둥이를 키우는 언니도 몇 년 전 아이의 성장 치료를 위해 분기별로 먼 거리 병원을 오가며 애쓰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같은 입장이 되자 그동안 아이의 치료는 어땠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어서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솔방울의 이야기를 남겨놓았었다.
[솔방울이 훌쩍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랬구나. 피검사도 해야 하고 힘들지. 병원 예약하고 데려가고 다 엄마가 고생이야. 근데 솔방울도 잘 크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나도 괜히 걱정한 거 같아.]
별다른 것 없는 무던한 말이었다.
다음 날, 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괜히 걱정할 거 같아.’
언니는 첫 출산을 앞둔 나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자연분만으로 쌍둥이를 낳은 언니는 아이 낳는 일이 너무 무섭다는 만삭의 나에게 견딜만 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 했다.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 누구나 하는 죽다 살아난 구구절절한 출산기가 아닌, 힘들지만 할 수 있다는 말. 그때도 그 말을 듣고 믿고 그렇게 되었다. 나는 네 번의 출산을 약물이나 수술 없이 자연스럽고 건강히 끝냈다. 감사한 일이었다. 복잡한 내 마음이 그때와 같은 위로가 듣고 싶었나 보다.
‘나도 괜히 걱정한 것 같다’는 무던한 위로가 아침이 되어 흥분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어왔다. 아이에 대한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기우였다. 흙탕물 같던 마음이 가라앉고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아이와 운동하기, 일찍 자기, 간식 줄이기, 식단 조절 등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섬세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불안을 부채질하지 않은 그녀의 무던한 위로가 오늘 나에게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