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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Nov 12. 2021

백운사 가는 길

우리 동네 숲 이야기

  제가 사는 이곳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의왕 백운산 아래 작은 마을입니다. 4년 전 우연히 들렸다 동네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한강이 보이는 서울 언덕 높은 곳에 살았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면 유모차를 끌고 위로 위로 올라야 합니다. 힘들지만 바닥만 보고 걷다 보면 어느새 언덕 위입니다. 이제야 허리를 펴서 앞을 보면 반짝이는 한강과 큰 다리들, 저 멀리 산이 보입니다.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시간이 지나자 언덕에 올라서도 무엇도 보이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파란 하늘과 반짝이던 한강은 어디로 숨고 희뿌연 미세먼지만 가득했습니다. 비싼 동네에 살아도 마음은 시야처럼 답답한 날이 많았습니다. 산과 나무가 보이는 곳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히 들린 이곳에서 지금의 집을 만나 첫째 아이가 네 번째 겨울을 맞던 해, 이사를 왔습니다.

     

    이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습니다. 사당에서 버스로 15분이면 됩니다. 의왕 톨게이트를 나와 좁은 도로를 내려오면 커다란 은행나무 조형물이 있는 굴다리가 보입니다. 그곳이 제가 사는 곳입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왕곡천이 우리를 맞습니다. 왕곡천을 따라 백운산 입구까지 1차선 도로와 산책길이 이어집니다. 그 길을 따라 이팝나무 가로수도 줄지어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본 이팝나무는 작고 여렸지만 몇 년간 피고 지며 건실히 자랐습니다. 이팝나무는 벚꽃이 지는 늦은 봄 연초록의 잎을 틔우고 5월 말이 되면 하얀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꽃은 불어오는 바람에 한가득 흩날리며 지는데 꽃들이 날아갈 때면 아카시아 향과는 또 다른 은은하고 싱그러운 초여름의 향기를 알려줍니다.     


  왕곡천을 따르는 도로와 산책길 옆으로 작은 텃밭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텃밭들은 언제 보아도 예쁘고 부지런합니다. 사계절 내내 쉬는 법 없이 생명력 가득한 여러 가지를 만듭니다. 해마다 계절마다 같은 모습이 아니라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조금만 기운 내어 집 앞 산책길로 나옵니다. 애써 걷지 않아도 잠시 서서 텃밭을 바라봅니다. 자라는 작물들을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은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집니다. 11월의 밭은 김장을 위해 심어진 무들이 무청을 달고 흙 위로 하얀 머리는 내밀고 그 옆으로는 넓은 잎을 자랑하는 배추들은 열심히 속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수확되면 밭은 또 비어지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할 것입니다.    


  마을 입구에서 길을 따라 15분쯤 걸으면 이팝나무와 밭은 사라지고 백운산 입구가 나옵니다. 차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마을 입구 뒤편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보입니다. 도시는 가까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물 같은 숲이 있습니다. 산의 입구부터 여러 층높이만큼 키를 뻗은 소나무들이 양 옆으로 서 있습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이 조각이며 보입니다. 산으로 향하는 초록의 길은 탁한 공기도 도시의 소음도 걸러줍니다.    


  오늘은 빨강과 노랑이 색 짙게 물들어 가는 예쁜 가을 산을 구경하기 위해 온 가족이 숲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곳으로 와서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숲과 나무를 보며 살더니 그만큼의 여유가 생겨 네 아이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이곳부터 8살, 6살, 3살의 아이들은 익숙한 숲길을 앞서 뛰어갑니다. 유모차를 탄 10개월의 막내는 커다란 나무숲을 동그란 토끼 눈이 되어 올려다봅니다. 코로나와 함께한 시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챙기며 조심하느라 잦은 외출은 못했지만 집에서도 앞뒤로 훤히 보이는 산과 하늘은 힘들고 지친 마음에 언제나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4년 전 서울을 떠날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서울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고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려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숲을 만났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숲에 나가고 흙을 밟고 농작물을 가꾸었습니다. 숲은 매일 새로운 놀잇감으로 자신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계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이들을 밝고 건강하고 튼튼합니다. 숲과 함께한 기억은 아이들이 자라며 기대어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크게 욕심을 내지 않은 나의 남편은 이곳에 원하는 집을 짓고 오래도록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이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고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남편과 나는 매번 오가는 마을 입구 이팝나무 가로수길을 지날 때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게 돼서 좋다는 말을 지리지도 않고 4년째 하고 있습니다. 동네 팔불출이 따로 없습니다.    


  마을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습니다. 물들었던 낙엽이 지면 겨울이 되고 개천과 마을을 둘러싼 산에는 소복한 하얀 눈이 덮일 것입니다. 조용해진 마을에 깊은 밤과 이른 새벽이면 먹을 것을 찾아 살며시 내려온 고라니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산과 나무가 주는 회복의 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은 때 이곳이 기억난다면 기억해 주세요. 오래된 은행나무와 함께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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