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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Aug 12. 2022

느림의 미학

아이의 책 읽기가 선물해준 느림의 아름다움

   나는 네 아이의 엄마이다. 아침에 눈을 떠 잠이 들 때까지 나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런데 올해 7살이 된 둘째가 바쁜 나의 일상에 느림의 미학을 선물해주었다. 둘째는 찬바람이 시작하는 계절, 작고 작게 태어났다. 가뜩이나 작은 아이가 늦은 가을에 태어나 봄여름 태생 친구들을 따라 크느라 바쁘게도 자랐다. 언제 크나 했던 아이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키도 작은 아이가 글까지 모르면 뒤처질까 싶어 저녁마다 시간을 내서 아이와 한글 읽기를 시작했다. ㄱㄴㄷ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는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나와 한 쪽씩 번갈아 읽는 것이 요새의 일이었다.


  아이는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책을 고르느라 신중하다. 책을 고르는 아이의 뒷모습은 매번 웃음이 난다. 행동은 다람쥐처럼 쪼르르, 입은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가 책 앞에서는 그렇게 신중하다. 언니처럼 술술 읽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어려운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이는 한참의 선택 끝에 적당한 글 밥의 책을 골라서 나와 나란히 누웠다. 펼친 첫 장에 글씨가 많다.


“에이 뭐가 이렇게 많아.”

  아이는 큰 숨을 쉬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신.기.한. 일.이.었.습.” 한 글자 한 글자를 어찌나 또박이며 읽는지 잠시라도 딴청을 피우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솔솔 잠이 왔다.


“뭐야 엄마 자는 거야?”

  아이의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다시 함께 책에 집중했다. 아직 한글에 익숙치 못한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 나의 시간도 함께 느릿해진다. 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 많으니 내가 읽어 줄 때는 빨리 책장을 넘기느라 미처 눈길에 닿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수줍은 고슴도치의 얼굴, 구석진 곳의 한 송이 꽃, 나무에 매달린 매미. 흐리게 떠오르는 태양. 첫 아이 때부터 몇 번을 읽었던 책인데 처음 발견한 것들이다. 아름답다. 매일 힘들다 바쁘다 투덜거리던 나의 하루도 천천히 바라보면 이렇지 않을까? 느리고 어수룩한 아이의 책 읽기가 선물해 준 시간 속에서 소중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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