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또 한 해를 성실히 보낸 나에게
“솔방울 이거 읽어 봤어?
친구 같은 나의 솔방울. 아홉 살이 되니 제법 나의 말동무가 되었다. 나의 물음에 솔방울은 “엄마 이거 안 읽어봤어? 정말 좋아”라고 답한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가 추천하는 책이라니 그 책은 바로 나의 신뢰를 얻었다. 나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곧장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솔방울의 추천사처럼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이런 책이 집에 있었다니! 나는 집안에 숨겨진 또 하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 때 나는 솔방울에게 이 책을 읽어달라고 내밀었다. 솔방울이 가끔 나에게 ‘엄마 내가 책 읽어 줄까?’라고 물을 때가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이의 목소리에 기대어 그림에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누가 이렇게 책을 읽어 줄 때면 글을 잘 읽는 솔방울조차 왜 아직도 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지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만나는 책 속 세계는 새롭고 다채롭게 흥미롭고도 안락하다.
오늘 12월의 아침 6시 50분, 아직 아침 해가 올라오지 않은 아직 어둑한 시간에 눈을 떴다. 가족을 챙기느라 종종거리는 하루를 보냈다. 이런 하루의 마지막에 아이 목소리를 통해 나도 선물을 받고 싶었다. 그림책 ‘달구지를 끌고’는 한 장씩 넘기는 페이지마다 깊고 진하게 묘사된 아름다운 삽화가 함께 나온다. 한 장씩 넘기며 마지막 장은 넘기자 쳇바퀴 같은 오늘로 돌아온다. 이런 날들을 지내며 일 년을 만드는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이다.
10월 농부는 달구지를 소에 매었다. 달구지에는 가족들이 일 년 동안 기르고 만든 것 중 남겨둔 것들을 싣는다. 4월의 농부가 깎아 둔 양털 한 자루, 그 털로 아내가 털실을 자아 만든 숄과 딸이 만든 벙어리 장갑, 농부의 아들이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밭에서 캔 감자를 자루에 담고 나무통에는 사과를 넣어 싣는다. 봄에 만든 단풍나무 수액 시럽과 뒷마당 거위들에게서 떨어진 털을 모은 것도 함께 실었다. 모든 짐을 달구지에 실은 농부는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다. 그는 언덕을 넘고 계곡을 지나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여러 날을 걸어 포츠머츠 마을 시장으로 간다.
시장에 도착한 농부는 달구지에 싣고 온 물건들을 좋은 값에 팔고 물건을 담아온 나무 상자와 나무통, 감자를 담았던 자루도 팔아버린다. 그리고 물건을 싣고 간 달구지마저도 판다. 싣고 온 것을 모두 팔고 난 뒤 그는 소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뒤 소 그리고 소의 멍에와 고삐도 모두 팔아버린다. 가져온 모든 것을 팔고 난 농부는 두둑해진 주머니를 들고 가족을 위한 새로운 것을 구입한다. 아내가 요리할 무쇠솥, 딸이 사용한 영국산 수예 바늘, 아들이 나무를 깎을 때 사용할 주머니칼, 그리고 모두를 위한 앵두 맛 박하사탕을 사서 새로운 무쇠솥 안에 넣는다. 솥을 매단 막대를 어깨에 걸치고 걸어왔던 며칠의 길을 되돌아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들의 일 년이 담긴 달구지를 끌고 시장을 향했던 농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소와 달구지 가져간 모든 것을 팔고 난 후 가족을 위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농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달구지를 끌고 시장에 다녀오는 이십여 일간의 농부 여정, 집에서 농부를 기다리는 동안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아빠를 기다렸을까? 나는 아이의 말소리를 따라 책장을 넘기며 그림책 속 남은 빈 공간을 채워본다.
집에 온 농부는 아내에게 건넨 새로운 솥에서 만든 요리를 먹고, 딸은 새 수예 바늘로 수를 놓는다. 아들은 선물 받은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는다. 그리고 앵두 맛 박하사탕 사탕을 나누어 먹는다. 그날 밤 농부를 벽난로 앞에 앉아 헛간의 송아지에게 씌울 새로운 고삐를 만든다.
새로운 봄이 오자 농부의 가족은 단풍나무 수액을 끓이고 졸여 단풍나무 수액을 만들 것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양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밭에는 감자와 순무를 심을 것이다. 그리고 뒷마당에 떨어진 거위들의 털을 모아 새로운 10월의 달구지를 채울 거다.
나는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느라 애쓴 몸을 잠자리에 뉘었다. ‘달구지를 끌고’의 이야기는 나에게 속삭인다. 그래 오늘도 충실했어. 잘 살아냈어라고 속삭이며 토닥이는 손길로 나에게 닿는다. 지나가는 계절에 집중하며 그 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살아 낸 평범한 하루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거라고 말해준다.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를 산다. 그런 하루들을 모여 일 년이 되고 다음 해도 또 다를 것 없이 똑같다. 그런 일 년이 하나씩 모인다. 나도 눈에 띄는 무엇을 해내고 싶지만, 집에 앉은 채 그러지 못한 날들이 십 년이 되었다. ‘달구지를 끌고’에서 나오는 농부의 일 년은 대단한 성과가 없어도 큰 돈벌이가 아니라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가족들을 위해 지낸 나의 날들이 하찮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 오늘을 다지고 내일을 준비한다. 주어진 하루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두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싶다. 도널드 홀의 글, 바바라 쿠니의 그림 《달구지를 끌고 (OX cart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