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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Dec 09. 2021

달구지를 끌고 (OX Cart man)가 들려준 이야기

12월, 또 한 해를 성실히 보낸 나에게

   한 남자와 달구지를 맨  가 있다. 그림책 ‘달구지를 끌고’는 구입한 지 몇 년 되었지만  올해 느지막한 가을, 낙엽 지는 표지 배경에 눈길이 가서 책을 잡았다. 이 책을 읽어 보았냐는 나의 물음에 첫째 솔방울은 “엄마 이거 안 읽어봤어?”라고 답했그제야 책을 읽은 나는 집안의 또 하나 숨겨진 보물발견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이들과의 잠자리에서 솔방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내밀었다. 솔방울은 가끔 나에게 그림책을 읽어 줄 때 있었는데 바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그림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12월 아침 6시 50분, 아직 어둑한 시간에 눈을 떠서 오늘도 아이들이 챙기느라 종종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 주는 선물이 필요했다. 책은 한 장씩 넘기는 페이지마다 깊고 진하게 빠져드는 아름다운 삽화를 보여준다. ‘달구지를 끌고’는 쳇바퀴 같은 오늘을, 하루들이 모여 일 년을 보낸 우리에게 울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0월 농부는 달구지를 소에 매었다. 달구지에는 가족들이 일 년 동안 기르고 만든 것 중 남겨둔 것들을 싣는다. 4월의 농부가 깎아 둔 양털 한 자루, 그 털로 아내가 털실을 자아 만든 뜨개 숄과 딸이 만든 벙어리장갑, 농부의 아들이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밭에서 캔 감자를 자루에 담고 나무통에는 사과를 넣어 싣는다. 봄에 만든 단풍나무 수액 시럽과 뒷마당 거위들에게서 떨어진 털을 모은 것도 함께 실었다. 농부는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언덕을 넘고 계곡을 지나 몇 개의 마을을 거쳐 여러 날을 걸어 포츠머츠 마을 시장에 다.

   시장에 도착한 농부는 달구지에 싣고 온 물건들을 좋은 값에 팔고 물건을 담아온 나무 상자와 나무통, 감자를 담았던 자루, 물건을 싣고 간 달구지도 판다. 싣고 온 것을 모두 팔고 난 뒤 소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뒤 소 그리고  멍에와 고삐도 판다.

  물건을 팔아 주머니가 두둑해진 농부는 가족을 위한 것들을 구입한다. 아내가 요리할 무쇠솥, 딸을 위한 영국산 수예 바늘, 아들에게는 나무깎을 주머니칼, 모두를 위한 앵두 맛 박하사탕 2파운드를 사서 솥 안에 넣고 다시 며칠을 걸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일 년이 담긴 달구지를 끌고 시장을 향했던 농부는 어떤 마음일까? 소와 달구지도 팔고 가족을 위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농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십여 일의 여정 동안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농부를 기다렸을까?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의 빈 공간을 천천히 채워본다.


  집으로 돌아온 농부는 아내가 새로운 솥에 만든 요리를 먹고 딸은 새 수예 바늘로 수를 놓고 아들은 선물 받은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는다. 그리고 앵두 맛 박하사탕 사탕을 모두 나누어 먹는다. 그날 밤 농부를 벽난로 앞에 앉아 헛간의 송아지에게 씌울 새 고삐를 만든다.


  새로운 봄, 농부의 가족은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 끓이고 졸여 단풍나무 수액을 만들 것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양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밭에는 감자와 순무를 심을 것이다. 그리고 뒷마당에 떨어진 거위들의 털을 10월의 달구지를 또 채울 것이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느라 애쓴 몸과 마음을 잠자리에 뉘이며 읽은 ‘달구지를 끌고’는 그래 오늘도 충실했어 잘했어라는 토닥임의 손길로 나에게 닿는다. 지나가는 계절을 주어진 일을 성실히 살아낸 모든 하루들이 의미 있는 거라는 마음의 위로를 준다.    

 

  그날의 주어진 일을 하며 그런 하루들을 모아 일 년이 되고 또 다음 해를 살고 그런 한해들이 모인다. 눈에 띄는 무엇을 바라지만 집에 앉은 채 그러지 못한 날들이 8년.

  큰 성과가 없어도 큰 벌이가 없어도 자기 몫의 주어진 일을 하며 성실히 지낸 날들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고 책은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 오늘을 다지고 내일을 준비한다. 주어진 하루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두에게 읽어 주고 싶은 책,  글 도널드 홀, 그림 바바라 쿠니의 ‘달구지를 끌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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