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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Jul 16. 2021

내 인생 마지막 이유식

이유식 한 수저에 온갖 담긴 내 감정

  넷째 들판이가 태어나고 6개월이 되었다. 이유식의 시기가 왔다. 빠른 아기는 4개월 들판이처럼 모유 먹는 아이는 6개월부터 철분 섭취를 위해 소고기 이유식을 하는 게 한국 이유식의 표본처럼 되어 있다. 이유식은 액체식을 하던 아기가 고형식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먹는 연습을 하는 거다. 워낙 정해진 걸 따르는 성격인 나는 막내가 6개월이 되기 전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고기 먹기 전에 쌀과 채소로 만든 초기 이유식 연습을 미리 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은 급해지는데 이유식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세상 그렇게 귀찮은 일이 없다.


  요즘 육아는 아이템 발이라고 한다. 첫째 때 여행을 가려면 이유식을 꽁꽁 얼려 얼음팩과 함께 보냉팩에 넣어 소중히 품고 갔다. 그러나 이제는 시기별 종류별 이유식을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미련스럽다 생각도 하지만 솔방울부터 산봉우리까지는 나는 여태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그러나 이제 돌볼 아이가 넷. 막내를 임신했을 때부터 이번에는 꼭 이유식을 사 먹일 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막내의 이유식 시기가 다가오자 마음이 흔들렸다. 네 아이에게 공평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막내만 이유식을 사 먹이지? 나중에 얘만 작으면 어떡하지 자주 아프면 어쩌지? 얘만 편식하면 어쩐다? 아무도 묻지 않은 걱정이 내 머릿속에서 또 시작되었다. 결국 이번에도 이유식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나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공장을 거치면 음식 맛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이상한 고집이 내 안에도 고집스레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지식하지만 바뀌어 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유식용 쌀가루를 알아보았다. 초기 이유식의 가장 번거로운 불린 쌀을 절구에 찧고 채에 거르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고작 몇 번 먹을 양이 만원이라니. 결국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러던 나는 중고 거래에서 이유식 제조기를 발견했다. 재료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모든 시기의 이유식을 만들어 준다는 마법 같은 기계다. 이유식용 쌀가루를 살 돈으로 중고 거래에서 죽 제조기를 구했다. 압력솥처럼 묵직하게 생긴 스테인레스 죽 제조기는 가마솥처럼 맛 좋은 이유식을 만들어 낼 거 같았다. 


  불린 쌀과 물을 넣고 버튼을 누르니 드르륵 쓱쓱 쌀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내 끓는 소리가 나며 20분 만에 이유식이 만들어졌다. 신기한 기계를 구경하며 나는 맛있어지라고 주문도 외웠지만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들판이는 기계에서 나온 이유식을 먹지 않았다. 죽 제조기를 만나 기뻐하던 나는 결국 쌀을 불리고 절구에 갈아 냄비 앞에 서서 20분째 이유식을 젓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기 입속에 꺼끌거리지 않도록 채로 걸러 그릇에 정성껏 담는다. 이걸 또 하고 있다.


  들판이와 비슷하게 태어난 친구들은 이미 이유식을 잘 먹는다고 했다. 잘 먹어도 너무 잘 먹는 다고 다 먹고 더 달라며 식판을 팡팡 친다고 하던데. 우리 집 들판이는 대체 수저를 입에 넣지 않는다. 베실베실 웃는 얼굴로 혓바닥을 수비삼아 수저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혀만 내둘거리며 입을 벌린 생각이 없다. 허리에 아직 힘이 없는 아이는 오래 앉아있어 힘들다고 결국 짜증을 냈다. 내가 아이에게 이유식을 주는 건지 사약을 주는 건지 모르겠다. 


  맛이 없나? 죽 제조기로 만들어진 이유식을 먹어보니 기계에 쌀이 너무 갈려서 맛과 식감이 밀가루 풀 같았다. 귀신같은 애들 입맛에는 왕도가 없다. 심지어 어제 확인한 6개월 된 들판이 몸무게가 백일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더 조급해졌나 보다. 잘 먹이고 키운다고 애썼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으로 결국 나는 오래된 이유식 냄비를 꺼내 든 것이다.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이면 다를까 싶어서.     


  불린 쌀을 갈아 냄비로 끓인 이유식은 적당한 식감에 향긋한 쌀 내음이 난다. 간을 하지 않아도 좋은 쌀의 향기와 한우의 구수한 맛이 돈다. 비싼 한우인 줄을 어떻게 알고 심심한 맛을 좋아하는 솔방울과 산봉우리가 한 입만 달라고 달려온다. 그러나 들판이는 이것도 먹지 않았다. 먹을 생각이 없다. 남은 이유식은 주걱을 핥고 냄비 바닥을 긁어 가며 솔방울과 산봉우리가 신이 나서 먹고 있다. 나는 이유식을 젓느라 아파진 팔목을 주무르며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밥맛 없다고 맨날 시리얼이랑 커피만 먹고 모유를 줘서 들판이가 음식 맛을 모르나 봐.”     


남편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다 나를 보며 토닥인다.     


“시리얼이랑 커피만 먹고 모유를 먹여도 잘 큰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엄마가 되면 별생각이 많아진다. 아이가 이유식을 안 먹어도 걱정 모유를 먹고 몸무게가 늘지 않아도 걱정이다. 아마 너무 잘 먹어도 걱정했을 거다. 들판이가 첫 아이가 아닌데 네 번째 같은 일이 하는데도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 정성들여 이유식을 만들다 보면 이유식 한 숟가락에 온갖 감정이 실린다. 내 정성만큼 여러 마음이 섞인다. 그런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이를 보면 이유식이 아닌 나를 거부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제발 한 입만 먹자며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애교를 부리며 애걸복걸한다. 아이가 이유식을 한 그릇 뚝딱 비운 날은 내 기분은 날아간다. 최고의 요리사로 인정받는 기분이다. 넷째 아이인데도 이 마음이 익숙해지지 않고 똑같이 반복된다. 다행인 건 네 번째가 되니 이런 생각들이 조금은 얕고 빠르게 지나간다.      

  당신이 좀 먹여보라고 이유식을 남편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들판이와 남편을 바라본다. 남편도 반쯤 먹이다 안 되겠는지 그릇을 치우며 나와 먹을 차와 과일을 꺼내 왔다. 


  이유식 책에는 단맛은 늦게 보여주라며 과일은 이유식에 익숙해진 다음 먹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건 먹나 싶은 마음에 들판이의 고사리 손에 슬쩍 사과를 내밀었다. 사과도 먹지 않는다. 과일을 처음 맛본 아이는 단맛에 눈을 번쩍 뜨는데 들판이는 이것도 아닌가 보다. 나의 이유식이 맛 때문은 아닌 거 같아 들판이에게 외면받은 사과 한 조각이 나를 위로한다. 

  쪽쪽이 한번 안 물리고 키웠더니 입에 들어오는 느낌이 낯선가? 모유를 먹을 때처럼 혀는 내둘거리는데 먹는 법을 모르나? 또 쓸데없는 생각이 시작이다. 허튼 생각이 사라지라고 머리를 통통 쳤다. 솔방울, 이파리, 산봉우리도 이럴 때가 있었지. 지금은 셋 다 잘 먹고 잘 자란다. 다 지나갈 일이야. 


  그래도 오늘은 우울하다. 정성껏 만든 내 이유식을 거부당하다니. 분하다. 네 아이 육아 8년, 넷째 이유식 고작 5일 차 엄마의 넋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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