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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Aug 05. 2021

솔방울이의 충치

첫 아이를 키우는 일, 고마움 하나와 미안함 하나

   초등학생이 된 첫째 아이의 구강검진이 있었다. 귀찮은 마음미루고 미루다 치과 검진을 받았는데 충치가 여러 개 생겼다고 했다. 하필 그 충치가 영구치인 어금니에 심하게 생겨서 치과 선생님은 벌써부터 이렇게 썩으면 안 된다고 고개를 크게 저으셨다. 무거워진 마음으로 다음 진료를 예약했고 집에 와서 치과에서 온 문자를 확인해 보니 첫째의 검진시기라고  6개월 전에 온 문자가 있었다. 막내 들판이를 낳고 한 달이 지났을 쯤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라 괜찮겠지 하며 넘겼는데 6개월 사이에 아이의 이가 이렇게 상한 것이다.

 


  아침식사를 한 뒤 나는 주로 뒷정리를 하고 아이들 양치와 세수는 남편이 맡는다. 정신없는 시간에 첫째라는 이유로 고작 8살 난 아이의 칫솔질을 꼼꼼히 봐주지 않았다. 이가 썩는 걸 경험해 보지 않은 8살 인생의 아이가 서투른 양치질이 가져올 결과를 어찌 알았을까? 세수를 시키면 고양이처럼 물만 바르고 나오는 아이를 믿은 아빠와 남편을 믿고 꼼꼼히 보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서른에 낳은 첫째는 나에게 엄마라는 완장을 처음 채워 주었다. 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던 사람이 그렇게 엄마가 되었고 아이가 자라면서 나도 자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동생이 하나씩 생기며 천방지축 날뛰던 아이도 점잖아졌다. 아이가 넷이 되면서 더욱 힘들거라 생각했지만 학교에 들어간 첫째가 일찍 돌아와 조잘거리며 같이 막내를 돌볼 때면 시간은 수월히 갔다. 첫째가 넷째 들판이를 잠시 안아 줄 때는 기지개라도 켤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에게 첫째 솔방울이는 그냥 아이라기보다는 나의 친구였다.


  그래도 1학년 8살 난 아이였다. 밥을 먹을 때  급한 마음에 둘째와 셋째를  먹여주면 나도 동생들처럼 먹여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나이가 몇 살인데 먹여주니’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6살 난 둘째가 자기 이름을 그리듯 쓰는 일에 대견해하며 첫째 솔방울이가 6살에 책을 더듬더듬 읽는 일은 당연하게 여겼다. 셋째가 우다다다 뛰며 장난을 치면 ‘이놈, 뛰지 말랬지’ 웃으며 말하지만 첫째가 어쩌다 쿵 하고 발소리를 내면 동생들이 줄줄이 따라 하니 조심하라고 눈을 부릅떴다. 3살, 6살 무렵의 첫째 아이 사진을 보면 어린아이였는데 이미 언니이고 누나여야 했던 아이는 첫째라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많았다.


  첫째라는 굴레에 서운해하는 아이에게 네가 어릴 때는 아기가 너 밖에 없어서 모두가 너만 보고 너만 사랑했다고 지만 아이가 기억나지 않은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이해하라기에는 이 순간 동생을 안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애를 썼다. 따로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첫째 아이 스케줄에 맞추어 도서관이며, 수련관이며 수업을 따라다녔다. 첫째가 수업을 들을 때면 동생들은 수련관 복도에서 대기 인생이었다. 첫째에게는 동생들이 모두 널 따라와서 기다리니 잘해야 한다는 무언과 유언의 압박을 주었다. 무엇이든 첫 아이를 제법 하게 만들면 동생들은 눈치껏 따라 하 이미 한 놈이 제 몫을 하니 다른 아이들에게는 잣대가 유연했을 것이다.  아이는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 높은 엄격함 속에 자랐다.    


  그런 우리의 첫 아이가 돌봄의 공백 속에 충치가 생겼다. 그것도 첫 아이라는 이유에서 인 것 같았다. 아마 동생들은 충치가 이렇게 쉽게 생기진 않을 것이다. 부모의 방심 속에 충치가 얼마나 쉽게 생기는지, 충치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경험하였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처음인 아이는 그렇게 우리의 희생양이 되었다.     


  용감하지만 엄살이 많은 아이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치과치료를 받았다. 뿌리가 채 내리지도 못하고 상해버린 아이의 어금니는 성인이 될 때까지 잘 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치료 전 무서움을 견디느라 요란을 떨었던 솔방울이는 진료가 끝나자마자 대기실에서 읽다만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끝까지 읽고 나온다. 야단법석을 떨더니 무서웠을 뿐 부끄럽진 않았나 보다. 그래도 굳건히 치료를 받은 영원한 나의 아기 박솔방울 어린는 오늘 의왕시에서 가장 용감한 어린이였다.    


*첫째 솔방울이에게 글감을 소재로 받아 라이킷 한 번당 100원의 인세를 주기로 하였습니다. 치과 이야기에 모순적이지만 그 돈으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계획입니다.

 **충치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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