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인 자 둘째의 반란. 달려라 달려 사랑스러운 작은 나의 이파리
둘째 이파리는 나를 닮았다.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 내 모습같이 나와 너무 닮은 종아리 선에 놀라곤 한다. 겉모습뿐 아니다. 나도 둘째로 태어나서 이파리의 눈빛만 보아도 둘째의 심정을 느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재한 첫째, 매 순간 이기고 싶지만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동경과 억울함은 늘 둘째와 함께한다. 그동안 흘린 서러움과 억울한 눈물의 양은 오직 둘째만이 알 수 있다. 오빠 한 명만 있던 나도 억움함과 서운함이 가득한데 무엇이든 잘하는 언니와 아래로는 말도 안 통하는 동생이 둘이나 있는 우리 집 둘째 이파리의 심정은 오죽할까? 첫째가 맏이로서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면 둘째도 타고난 자기 몫이 있는 법이다.
둘째 이파리는 39주를 채웠어도 2.66kg로 작고 작게 태어났다. 얼마나 부지런한 아이인지 새벽 6시 병원에 간 지 30분만에 세상에 나왔다. 첫 출산의 진행도 빨랐던 나는 둘째의 출산도 빠를 거라고 예상했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분만실에 눕자마자 당직 선생님들 모두 나보다 더 당황하며 아이를 맞았다.
첫째는 누구를 닮았는지 생김새도 이국적이고 활동성도 커서 어디서나 눈에 띄는 아이였다. 그래서 둘째가 아주 작고 귀여운 아기일 때도 사람들의 시선은 늘 첫째에게 향했다. 그럴 때면 그 작은 아이는 나에게 안겨서 조용히 상황을 바라만 보았다.
이파리는 일찍부터 조잘대던 첫째보다 말이 늦었다. 정확히는 할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아 보였다. 걸음을 떼는 일도 그랬다. ‘하지 않음’ 속에는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그렇지만 이파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잘 전달했다. 표현 부족하면 내 뻗은 손가락 하나와 ‘응응’거리는 짧은소리로도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아이였다. 그것으로 충분해 보여 아이가 작아도 느려도 무엇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늦가을 태어난 아이는 유독 몸집이 작았다. 작고 생일이 늦은 아이가 또래 사이에서 치일까 봐 신경은 쓰였지만 아이는 모든 일에 무던히 적응했다. 이파리는 네 살이 되며 언니가 다니는 큰 규모의 숲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는데 세 돌을 채우지 못한 아이는 기저귀 찬 엉덩이로 울퉁불퉁한 숲길을 매일 걸으며 힘든 내색 없이 즐겁게 생활했다. 다만 교실에서는 좌식 책상에 낮을 때 키가 작은 이파리에게는 그 책상이 너무 높았다. 어느 날은 이파리가 빈 교구 바구니를 가져와 뒤집어 놓고 의자로 앉아서 밥을 먹으니 딱 좋더라고 얘기를 전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그 모습이 떠올라져 선생님과 한참을 웃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사랑받으며 힘든 내색 없는 이 당찬 아이를 믿었기에 ‘바구니 의자’는 걱정이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었다.
작은 이파리는 몸이 가벼워서인지 혼자 걷다가도 나풀거리며 자주 넘어졌다. 한번은 너무 자주 넘어지는 이파리가 걱정되어 어린이집 선생님과 진지하게 상담했다. 선생님은 이파리가 어린이집에서도 잘 넘어지고 씩씩하게 잘 일어난다고 했다. 네 살이 된 이파리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랐다. 어느새 바구니 의자가 없어도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고 기저귀와 이별도 했다.
나의 작은 이파리는 유독 손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분기별로 호되게 성질을 부리긴 했지만 예민했던 기질은 커가며 나아졌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배가 고프면 스스로 잘 먹고 졸리면 자리에 누워 어느새 혼자 잠이 드는 아이였다. 처음 숲 어린이집에 들어갔을 때 친구들 키와 머리가 하나 반이 차이 나던 아이는 한 해가 지나자 머리 하나만큼 차이를 줄였다. 어린이집에 잘 가지 못하던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잘 먹고 잘 자며 친구들과의 키 차이도 자신만의 속도로 줄여 갔다.
이파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건 그쯤이었다. 집 근처 놀이터에 나갈 때면 이파리는 언니와 언니 친구들 사이에서 함께 놀고 싶어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따라다녀도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것을 분해했다. 그렇게 열을 낼 때면 이파리는 언니들을 잡으려고 달리고 또 달렸다. 이파리가 타고난 근성은 그때 나타났다. 아이가 뛰는 모습을 보자니 신기할 정도로 빨랐고 오래 달렸다. 좋게 포장하면 그렇지만 이파리는 같이 놀자며 악바리처럼 달렸다. 어쩌다 한 번씩 화를 낼 때도 무서운 애가 달릴 때도 그런 면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코로나 2년 차, 이파리가 여섯 살 이던 가을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나와 차를 타자마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파리가 말을 꺼냈다. 어린이집에서는 운동회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엄마, 오늘 달리기했는데 남자 친구 중에는 준이가 일등 했고, 여자 친구 중에는 내가 됐어.”
타고난 혀가 짧은 것인지 아직도 귀염성 가득한 이파리의 말투는 급한 내 성격까지 더해져 말을 알아들으려면 귀를 한껏 집중해야 한다.
“이파리야 뭐라고?”
아이의 말대로라면 반에서 여자아이 달리기 중 자기가 일등을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전 큰 운동회를 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반대표 달리기 선수를 뽑을 때였다. 상황은 추측되었지만 나는 믿기 어려웠다. 코로나 전 4살 운동회 때 파닥거리는 짧은 다리로 달리다 철퍽 넘어져서 모든 선생님의 응원을 받으며 겨우 결승선에 들어갔던 아이였다.
언니와 놀며 제법 잘 달리는 것은 알았지만 반에 유독 키가 큰 친구들이 많아서 이파리의 발이 아무리 빨라도 친구들의 긴 다리가 우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이라면 아까 선생님께서 내게 먼저 얘기하셨을 텐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선생님께 내일 다시 물어보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설마일까 하는 마음이 컸다. 진짜라면 아이가 좋아하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선뜻 사주겠다고 했다. 구슬 아이스크림은 별맛은 없고 유독 비싸서 자주 사주지 않은 간식이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평소 언니가 등교한 후 나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던 이파리는 아빠 출근길에 먼저 어린이집을 가겠다고 아빠와 먼저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이 집을 나섰고 10분이 지났을까 남편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진짜래 진짜 이파리가 반대표로 나간다던데!?”
“진짜?!!”
이파리의 일등소식은 우리에게 남달랐다. 꼭 1등을 해서가 아니라 모든 일에 작고 느리던 이파리에게 일등은 1 이상의 기쁨이었다. 굳이 비교할 일이 아니지만 늘 앞서던 언니에게 밀리기만 했던 이파리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을 거다. 세상 감격하는 나에게 옆에서 솔방울은 자기가 달리기 대표로 나갔을 때는 왜 그렇게 칭찬을 안 해 줬냐면 입을 삐죽인다.
하원 길에 만난 이파리는 “거봐 내 말이 맞지? 엄마는 왜 내 말은 안 믿어!!!!” 하며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를 냈다. 선생님도 흥분한 목소리로 어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깜빡하셨다고 하며 정말로 이파리가 여자 달리기 반대표가 되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은 비슷비슷한 실력이었는데 여자아이들 중에는 이파리가 독보적인 빠르기로 이겼다고 덧붙이셨다. 언니를 이 악물고 쫓아 놀더니 이파리의 결핍이 성장의 연료가 되었나 보다. 이파리의 반격이 시작됐다. 선생님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이파리가 오늘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느냐고 싱글대며 물었다. 물론이지. 오늘은 얼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달려가야겠다. 둘째가 쏘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을 느껴야겠다. 듣거라 보아라! 작디작던 이파리의 달콤 살벌한 반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