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밍꼬 Aug 05. 2021

박솔방울의 충치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너에게 미안한 날

  1학년이 된 첫째 아이가 구강검진 가정통신문을 가져왔다. 귀찮은 마음에 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검진 기간이 끝날 때쯤 치과를 찾았다. 치과 의사는 아이의 입 속을 한참을 보더니 충치가 여러 개 생겼다고 했다. 그중 유독 심하게 충치가 생긴 곳이 영구치인 어금니였다. 모든 치아에는 유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고개도 다 들이밀지 못한 아이의 안쪽 어금니가 심하게 상해있었다. 의사는 평생 써야 할 치아가 벌써 이렇게 썩으면 안 된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충치라니. 아이 입 속 상태를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6개월 전 솔방울의 치아 검진 시기라고 치과에서 온 문자를 발견했다. 막내를 낳고 한 달이 지난 때였다. 이전 검진에서는 아이에게 작은 충치가 있다고 했지만 치료할 정도는 아니라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래서 검진 문자를 받고도 큰 문제가 있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신생아를 낳고 돌보느라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도 버거워 치과 방문을 미룬거다. 귀찮음에 눈 감아버린 6개월 사이, 솔방울의 치아가 이렇게 되었다.


  아침 시간 온 가족이 밥을 먹고 나면 나는 먹은 것을 정리하고 남편은 아이들을 양치와 세수를 시킨다. 몸이 몇 개라도 정신없는 시간이라 고작 여덟 살 난 아이의 칫솔질을 꼼꼼히 봐주지 않았다. 첫째라는 이유였다. 여덟 살 인생, 이가 썩는 게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아이다. 아이가 서투른 양치질이 가져올 결과를 어찌 알았을까? 세수를 해도 고양이처럼 물만 바르고 나오는 솔방울을 믿은 아빠와 남편이 잘했을 거라 믿고 아이를 다시 살피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아이의 상해버린 치아도 앞으로 받아야 할 여러 번의 치료도 모두 내 탓 같았다.      


  서른에 낳은 첫째.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던 내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낯설고 어설픈 엄마 역할도 아이가 자라는 만큼만 같이 자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천방지축 날뛰던 솔방울은 밑으로 동생이 하나씩 생기며 꽤 점잖아졌다. 막내를 낳자고 마음먹었을 때도, 아이가 넷이면 더 힘들어질 걸 예상했지만, 낳고 보니 솔방울의 역할이 컸다. 학교를 끝낸 솔방울이 옆에 와서 조잘거리면 온종일 첫째 둘째를 혼자 키우던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솔방울이 잠시 들판이를 안아 줄 때 나는 기지개를 켰고 솔방울이 들판이와 까르르 놀아줄 때면 편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솔방울의 존재는 나를 숨통이 트이고 고맙게 했다. 솔방울은 자라면서도 지금도, 마냥 아이라기보다 나의 친구 같았다. 그래도 솔방울은 막 초등학생이 된 여덟 살 아이였다.      

  서둘러 식사를 마쳐야 해서 둘째와 셋째에게 열심히 밥을 먹여주면 솔방울은 나도 동생들처럼 먹여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넌 나이가 몇 살인데 먹여주니’라고 말했다. 둘째가 여섯 살에 자기 이름을 그리듯이 쓰는 일은 대견해하며 이미 동생이 둘이던 여섯 살의 솔방울이 더듬더듬 책을 읽는 일은 당연하게 여겼었다. 셋째 산봉우리가 집에서 우다다다 장난치며 뛰는 일에는 ‘이놈, 뛰지 말랬지’ 웃으며 말했지만 첫째가 어쩌다 신이 나서 쿵 소리를 내면 동생들이 따라 하니 조심하라고 눈을 부릅 떴다. 3살, 6살의 솔방울의 사진을 보면 사진 속 아이는 너무 어렸는데 그때의 솔방울은 이미 언니이고 누나이어야 했다. 가장 먼저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혼자 받았지만 첫째이기 때문에 더 해야 할 일이 있고 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솔방울에겐 있었다. 첫째라는 굴레를 쓴 아이에게 ‘네가 어릴 때는 양쪽 집안에 아기가 너밖에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의 온 사랑을 다 받고 자랐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기억나지 않은 시간을 빌미로 지금을 이해하라는 건 여덟 살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솔방울은 그저 지금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서운했을 거다.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애를 썼다. 솔방울이 커 가는 만큼 해야 할 일이 생겨났다. 봐 줄 사람이 없는 세 명의 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솔방울의 일정에 따라 뺑뺑이를 돌았다. 도서관, 청소년 수련관으로 수업을 들으러 갈 때면 동생들은 강의실 밖 복도에서 고개를 빼고 기다려야 하는 대기 인생이었다. 솔방울에게는 모두가 너를 따라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잘해야 한다는 무언과 유언의 압박을 보냈다. 첫째가 자기 몫을 잘하면 동생들이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나의 잣대는 언제나 솔방울에게 더 엄격했다. 나의 첫 아이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가장 높은 엄격함 속에 자랐다.      

  그런 나의 솔방울이 내 돌봄의 공백 속에 충치가 생겼다. 그것도 첫 아이라는 이유 같았다. 아마도 이파리, 산봉우리, 들판이에게 이렇게 쉽게 충치가 생기지 않을 거다. 부모의 방심 속에 충치가 얼마나 쉽게 생기는지 솔방울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처음인 아이가 희생양이 된 것 같아서 아이의 충치는 나에게 미안함과 후회스러움이었다. 


  집에 와서도 치과 의사가 내젓던 고갯짓이 계속 생각났다. 충치가 없던 나는 크면서 치과 치료를 거의 받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의 충치는 나에게 더 큰 일로 다가왔다. 크는 동안 나의 치아는 지켰지만 엄마가 된 첫 아이의 치아는 지키지 못했다. 이것도 처음이라 그럴 거다.


  아이의 충치 치료는 몇 차례로 나누어 일정이 진행되었다. 용감하지만 유독 엄살이 많은 나의 솔방울은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치료를 받았다. 간신히 살려놓은 아직 뿌리를 다 내리지 못한 어금니가 어른 솔방울이 될 때까지 잘 건사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아직도 속상하고 미안한 내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치료할 때 울며불며 치과 의자에 누웠다 일어났다 요란 떨던 솔방울은 진료가 끝나자마자 아무 일 없다는 듯 대기실에서 읽다만 만화책을 끝까지 보고 치과를 나선다. 그 야단법석을 떨더니 치료가 무서웠을 뿐 자신의 눈물이 부끄럽진 않았나 보다. 첫 치과 치료를 받은 박솔방울 어린이는 오늘 우리 동네에서 가장 용감한 어린이였다. 앞으로 남은 치료도 잘 받아 보자. 앞으로 양치를 더욱 깨끗히!

 

영원한 나의 첫째 솔방울

*첫째 솔방울이에게 글감을 소재로 받아 라이킷 한 번당 100원의 인세를 주기로 하였습니다. 치과 이야기에 모순적이지만 그 돈으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계획입니다.

 **충치 조심하세요

이전 02화 이파리의 일등 달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