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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Oct 23. 2021

이파리의 일등 달리기

달려 달려 사랑스러운 작은 나의 이파리

   6살 둘째 이파리는 나를 닮았다. 갸름한 얼굴에 가늘한 뼈대까지(나는 뼈만 가늘다.) 아이가 서있는 옆모습을 보면 어쩜 저리 나를 닮았나 다. 나도 둘째로 태어나 둘째의 짠한 심정을 안다. 태어났을 때부터 첫째에게 가려진 이인자의 마음은 둘째가 아니면 모른다, 위로 오빠밖에 없는 나도 눈을 흘기며 이를 갈던 순간이 많았는데 힘 센 언니와 아래로는  안 통하는 동생 두 명을 둔 우리 집 둘째의 심정은 오죽할까?

 

   둘째 이파리는 39주를 채워 나왔는데도 2.66킬로로 작게 태어났다. 얼마나 부지런한 아이인지 아침 일찍 병원에 간지 30분 만에 세상에 나와 당직 선생님들은 나보다  당황해하며 아이를 맞았다.


   첫째는 외모도 활동성도 눈에 띄는 아이여서 둘째가 아주 귀엽고 작은 아기였을 때도 시선은 첫째에게 쏠리는 일이 많았다. 이파리는 나에게 안겨서 혹은 유모차에 앉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파리는 말도 늦었다. 느리다기 보단 정확히 말하자면 말없이도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잘 전했다. 부족하다 싶으면 뻗은 손가락 하나와 ‘응응’ 거리는 짧은소리로 충분했다.


   작게 태어난 이파리는 크면서도 작았다. 나도 작은 키라서 아이가 작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일이 늦은 아이가 체구까지 작으니 친구들 사이에서 더 눈에 띄었다. 3살과 다름없는 4살이 되었을 때 언니가 다니는 규모가 큰 숲 속 어린이집으로 옮기되었는데 28개월 무렵에 아이는 매일 돌과 흙을 밟으며 울퉁불퉁한 길을 걸었다.


  4살 교실에서 사용하는 좌식 책상은 작은 이파리에게 너무 높았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빈 교구 바구니를 엎어놓고 의자처럼 앉으니 키가 맞는다며 엄청 기뻐하셨다. 선생님들은 작은 이파리를 요정 같다며 예뻐해 주셨고 힘든 내색 없이 당차게 다니는 아이를 보며 잘하고 있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아이는 작아도 참 작았다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나풀나풀 걷다가도 픽픽 어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니 선생님과  진지하게 상담도 했었다. 어린이집에서도 잘 넘어지고 잘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는 조금씩 크더니 바구니 의자 없이 밥을 먹생일이 빠른 친구들과 차이 없이 기저귀에게도 이별을 고했다.


  작은 이파리는 커갈수록 손이 가지 않은 아이였다. 분기별로 한 번씩 호되게 성질을 부리긴 했지만 예민했던 기질도 커가면서 나아지고 배가 고프면 알아서 먹고 졸리면 혼자 준비를 하고 방에 들어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먹고 자는 일힘을 쏟으며 지내더니 처음 숲 속 어린이집에 들어갔을 때  친구들과 머리통 하나 하고 반이나 작던 아이는 한 해가 지나자 머리통 하나만큼만 작았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더 열심히 키 차이를 줄여 갔다.


  어느 날 초록에서 노랑으로 변해가는 나뭇잎들이 가득한 어린이집 주차장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차에 앉은 이파리가 이런 말을 하였다.    


“엄마, 오늘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남자 친구들 중에서는 준이가 일등 했고

 여자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나가게 됐어.”

 

   타고난 혀가 짧은 것인지 아직도 귀염성 가득한 발음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말하는 이파리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귀를 깊게 기울여야 한다. 달리기를 해서 일등을 했다는 것 같은데.. 운동회 일정이 있어 이어달리기 대표 선발전을 할 시기이긴 했다. 상황은 추측되었지만 이파리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4살 운동회 반별 달리기를 할 때 파닥거리는 짧은 다리로 달리다 철푸덕 넘어져 모든 선생님의 응원을 받으며 겨우 결승선에 들어간 이파리였다.

 

   요새 언니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잘 달린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반에 유독 키 큰 친구들이 많아서 아무리 빨라도 친구들의 긴 다리가 우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대표로 뽑혔으면 이야기했을 선생님께서 아무 말도 없으셨다. 우선 왔으니 내일 여쭤보자 말을 했고 진짜라면 파리가 좋아하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하였다. 어른 입맛에 슬아이스크림은 맛은 없고 비싸기만 해서 자주 사주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아이의 말에 대한 믿음은 설마와 혹시가 반반이었다.


  요새 언니를 따라잡는다고 빠르고 오래도록 달렸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이파리는 언니를 잡을 때는 악바리처럼 달렸다. 어쩌다 한 번씩 화를 낼 때도 악바리 같은데 달릴 때도 성격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다음 날 아침, 평소 언니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던 이파리는 아빠와 함께 가겠다고 일찍 집을 나섰고 10분이 지났을까 출근길인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진짜래 진짜 이파리가 반대표로 나간다던데!!”


  세상에나!!! 모든 일에 작고 뒤에  이파리가 처음 맛본 일등이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도 일등 이상의 의미였다. 굳이 둘을 비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항상 언니에게 밀리기만 했던 아이였는데. 세상 감격하는 나에게 옆에서 솔방울이는 자기가 달리기 대표로 나갔을 때는 왜 그렇게 칭찬을 안 해 줬냐면 입을 삐죽거린다.    


  하원 길에 만난 이파리는 “거 봐 내 말이 맞지? 엄마 왜 내 말을 안 믿냐고!!!!”하며 의기양양한 얼굴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어제는 미쳐 얘기를 못했다며 이파리가 반대표가 되었고 남자아이들은 실력이 비슷했지만 여자아이들 중에서는 독보적인 빠르기였다고 . 언니를 이 악물고 쫓아다니더니 역시 결핍은 성장의 에너지 인가보다.


  6세 인생 박 이파리. 묵묵히 커오던 이파리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두고 보아라 조용히 실력을 연마하던 작은 이파리가 얼마나 매운맛을 보여줄지! 선생님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이파리가 오늘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언니처럼 용돈으로 가족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다고 다.

  그럼 물론이지 얼른 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달려가야겠다. 오늘은 이파리가 쏘는 아이스크림의 달콤 살벌한 맛을 보러 가야겠다.


<빵 봉지 만한 5살의 이파리>



**운동회날, 굳이 불이 번쩍이며 발에 여유 있는 운동화를 신고 가겠다고 고집부린 이파리는 달리던 중 운동화 한 짝이 벗겨져서 달리기에서는 졌다고 합니다.. 운동화가 벗겨지기 전까지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이파리야 선생님도 너무 뿌듯하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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