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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Jul 19. 2021

이팝나무 공주 이야기

아름답게 흩날리는 하얀 꽃잎에서 태어난 이팝나무 공주의 모험

  5월 마지막 날입니다. 흩날리는 바람에 이팝나무 꽃들이 날아갑니다. 보릿고개에 지친 사람들은 날아가는 꽃잎을 보며 잠시 배고픔을 잊습니다. 그날 밤, 환하고 커다란 달이 떴습니다. 환한 달빛이 떨어져 있는 꽃잎들에 닿으니 무엇이 움직이네요. 그 안에는 여자아이가 이팝나무 꽃잎을 덮고 쌔근쌔근 자고 있어요. 그 숨결에 향긋한 이팝나무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얘야. 일어나거라.


여자아이는 눈을 부비며 일어납니다.


“아함~ 무슨 소리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소녀는 엄지손가락만큼 작고 아름다운 아이입니다.


“나는 은행나무란다. 이곳에서 500년을 보냈지. 너는 이팝나무 공주란다.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빛에 닿아 네가 태어났단다. 네 개의 별을 모으면 마을에 풍년이 올 것이란다.”


  이팝나무 공주는 자신이 꽃잎이던 때가 생각납니다. 자신을 보고 아름답다 하던 사람들을 꼭 도와주고 싶었어요. 이팝나무 공주는 봇짐을 둘러매고 개천을 따라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냇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네요. 돌인 듯 보이지만 바위 색과 비슷한 눈이 툭 튀어나온 도롱뇽이었어요.

“봄이 되어 알을 낳았는데 내 알들이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돼서 울고 있어.”

이팝나무 공주는 작은 돌을 모아 알 주변에 둥글게 탑을 쌓았어요.

“도롱뇽 아주머니 울지만 말고 도와주세요. 이 돌멩이는 너무 커서 혼자 옮길 수 없어요.”

엄지만 한 이팝나무 공주와 검지만 한 도롱뇽은 힘을 모아 마지막 돌을 옮겨 지붕을 만들었어요.

“이제 돌멩이 탑이 알을 지켜줄 거 에요,” 

“고마워요 이팝나무 공주님. 제가 도움을 드릴 일이 있을까요?”

“마을 사람들이 밭에 심어 놓은 씨앗을 벌레들이 먹지 못하게 해 주세요.”

“걱정 마세요, 그런 벌레를 잡는 것이 제 전문이니까요.”

그 순간 하늘에 반짝이던 작은 별이 이팝나무 공주에게 왔어요. 이팝나무 공주는 첫 번째 별을 봇짐 속에 소중히 넣고 다시 떠났어요.


  얼마나 걸었을까요. 굉장히 덥고 축축한 밤이었어요.

“껍 껍 껍.”

시끄러운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징그럽게 생긴 두꺼비가 담벼락 앞에서 울고 있어요. 징그러운 생김새에 겁이 났지만 울음소리가 너무 서글퍼서 지나칠 수 없었어요.

“난 두꺼비예요. 담벼락 건너편에 아기 두꺼비가 혼자 있는데 여기를 지나갈 수 없어요.”

이팝나무 공주가 주변을 둘러보자 담벼락 아래 작은 구멍을 발견했어요.

“두꺼비 아저씨 여기로 지나가면 될 거 같아요. 이리 와보세요.”

두꺼비는 구멍에 겨우 머리를 넣었지만 엉덩이가 너무 커서 구멍에 껴버렸어요.

“껍껍, 이를 어쩌지? 이제는 아예 움직일 수가 없잖아.”

“걱정 마세요. 제가 뒤에서 힘껏 밀어 볼게요.

두꺼비 몸은 울퉁불퉁하고 찐득한 액체가 있어서 이팝나무 공주는 망설였지만 담벼락 넘어 들리는 아기 두꺼비 소리에 그런 생각은 사라졌어요. 온 힘을 모아 두꺼비를 밀었어요.

‘뿅!’ 아빠 두꺼비는 시원하게 구멍을 빠져나왔어요.

“우리 아가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빠가 왔단다. 이팝나무 공주님 고마워요.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마을 사람들이 모내기한 곳에 물이 마르지 않게 물길을 한 번씩 살펴봐 주세요.”

“걱정 말아요 그건 내 전문이니까요.”

하늘에서 또 하나의 별이 이팝나무 공주의 손에 떨어졌고, 그 별을 소중히 봇짐에 넣었어요. 그렇게 여름이 지났습니다.  



  더운 여름이 가고 바람은 선선해졌어요. 하지만 남은 두 개의 별을 찾지 못했어요. 그때 낑낑거리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소리를 따라 가보니 아기 고라니가 밭두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엄지만큼 작은 이팝나무 공주는 도움을 줄 수가 없었어요. 고라니는 아기였지만 이팝나무 공주보다 훨씬 컸거든요. 이팝나무 공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슬픔에 봇짐을 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이팝나무 공주의 눈물이 봇짐에 닿자 별은 밝은 빛을 냈어요. 아기 고라니 옆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나뭇가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헐래 벌떡 달려온 엄마 고라니가 있었어요. 엄마 고라니는 아기 고라니를 몸으로 밀어 밭두렁에서 구해냈어요.

“빛나는 별빛을 보고 왔어요. 아기 고라니가 있는 곳을 알려주어서 고마워요. 제가 도움을 드릴 일이 있을까요?”

“제가 한 일이 없는 걸요,”

“아니에요. 겁먹은 우리 아기 옆에서 함께 있어 주셨어요.”

그럼 고라니 친구들에게 밭에서 자라는 고구마를 먹지 말라고 해주세요.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식량이거든요.”

“걱정 말아요. 숲에도 먹을 것이 많답니다. 그 말을 꼭 기억할게요”

이팝나무 공주의 봇짐에 또 하나의 별이 생겼어요.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어요. 이팝나무 공주는 떨어진 낙엽을 감싸 덮고 찬바람을 견디었어요. 이제 마을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는 큰 나무만 가득했어요. 하늘에서 툭하고 뭐가 떨어졌어요.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네요. 이팝나무 공주는 도토리가 떨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찾지 못한 마지막 별을 생각했어요. 이미 겨울인데 마을 사람들은 무사히 지내고 있을까요? 그때 낙엽 사이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장수풍뎅이 총각이 뿔을 다쳐 쓰러져 있었어요. 이팝나무 공주는 봇짐에서 봄에 따 두었던 애기 똥풀 진액을 꺼내어 장수풍뎅이에게 발라주었어요.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이팝나무 공주의 오랜 돌봄에도 쉽게 기운을 차리지 못했죠. 하지만 이팝나무 공주는 장수풍뎅이 옆을 떠나지 않았어요. 배가 고플 때는 다람쥐가 도토리와 참나무 수액을 갖다 주었어요. 그렇게 장수풍뎅이는 기운을 되찾았답니다.

“오랜 시간 저를 돌봐주어서 고마워요 이팝나무 공주님.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마을 사람들이 한해를 잘 보냈는지 궁금해요. 이팝나무들이 있는 마을로 돌아갈래요.”

“제 등에 타세요.”

  이팝나무 공주는 장수풍뎅이 등에 타고 숲을 날아서 마을을 지나 자신이 태어난 마을 입구로 돌아왔어요. 장수풍뎅이의 등에서 바라본 마을은 행복해 보였어요. 사람들은 무사히 한해를 지내고 집들은 맛있는 음식과 따뜻함으로 가득했지요. 장수풍뎅이는 이팝나무 아래 공주를 내려 주었어요. 이팝나무 공주는 긴 모험에 고단하여 소중한 봇짐을 안고 자신이 태어난 곳에 누워 긴 잠이 들었어요. 하늘에서  빛나던 마지막 별이 이팝나무 공주의 봇짐으로 들어왔어요.

  다음 해 봄 이팝나무 공주가 잠든 자리에서 새로운 이팝나무가 자라났어요. 올해도 이팝나무에서 날리는 꽃들을 보며 사람들은 희망을 얻을 것입니다.     


글을 쓰게 된 이야기

코로나로 집에만 있으니 신나는 모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조선시대 정조가 수원 행차 시 들린 곳으로 왕이 온 마을이라 하여 왕림마을이라 합니다. 도심 속에 있지만 아름다운 곳입니다. 마을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와 왕곡천을 따라 이팝나무 길이 있습니다. 이팝나무는 5-6월에서 개화하는데 하얀 꽃이 흰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 혹은 입하에 피어 입하목(入夏木이)라 불리다 이팝이라 변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릿고개쯤 만개하는 이팝나무는 꽃의 모습이 흰쌀밥을 닮아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팝나무 이야기를 마을 풍경에 맞게 아름답게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롱뇽, 두꺼비, 고라니, 참나무, 다람쥐, 장수풍뎅이는 동네를 산책하거나 아이들이 어린이 집 숲 활동을 하며 만난 생물들입니다. 별을 얻도록 도움을 준 네 동물은 사계절을 뜻하기도, 네 아이들을 키우며 성장하는 저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향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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