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펼쳐 들었다. 책을 받아 들고 그 두께와 페이지 수에 이것이 실화인가를 외쳤다. 우주과학 책은 처음이라 눈꺼풀은 자꾸 내려오고 나의 의식은 지구와 우주를 오간다. 하지만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이 책은 1980년, 약 40년 전에 출판됐다.
우주에 대해 배운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도 나에게 우주란 태양과 지구, 목토 천혜명까지였다. 코스모스는 광속, 빛의 속도를 단위로 우주의 거대함을 알려준다. 지구가 속한 은하의 크기는 지름만 수십만 광년이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대략 1000억 개, 저마다 평균 1000억 개의 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감도 오지 않는 거대한 코스모스를 알기 위해서는 공상이 아닌 과학을 벗어나지 않을 ‘회의’의 정신과 신비로운 코스모스를 그려볼 수 있는 ‘상상력’을 장착해야 한다. 책장을 펼쳐 칼 세이건 호를 탑승하자 풀피리 연주로 표현되는 작은 지구에서 출발하여 웅장한 푸가가 연주되는 719페이지 코스모스 속으로 떠나게 된다.
연신 졸다 깨기를 반복하며 책장을 넘기다 4장 천국과 지옥을 읽었다. 우리에게 샛별, 영어로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불리는 금성의 실체가 밝혀진다. 갈릴레오가 발견한 금성은 두껍고 불투명한 구름으로 덮여 있다고 한다. 금성의 표면은 볼 수 없어서 구름은 지표면에 있는 물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세기가 지나서야 구름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금성의 구름들은 완전히 농축된 황산의 용액이다. 금성은 완전히 몹쓸 세상이었던 것이다."
NASA의 금성 합성사진
맹렬한 더위, 높은 압력, 맹독성 기체들, 그곳은 사랑의 여신이 웃음 짓는 낙원이 아니라 지옥이 구현되는 저주의 현장이었다. 금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질량, 크기, 밀도가 지구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이런 몹쓸 행성이 된 이유는 온실효과 때문이라는 추측이 설득적이다. 태양의 가시광선으로 뜨거워진 복사열을 방출해야 하지만 금성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복사열이 우주 공간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표면온도가 계속 상승되어 불지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일이 지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현대 산업의 주요 에너지원인 화석연료를 태운 폐기기체는 이산화탄소를 지구 대기로 보내는데 그 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온실효과로 기온이 치솟으면 지구의 성층권에도 상당한 규모의 황산 안개층이 형성되는데 언젠가는 지구의 기온도 온실효과로 인해 급격히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40년 전 칼 세이건은 이런 메시지를 던졌지만 인간은 무지와 자기만족의 만행을 묵인한 채 달려왔다. 지구는 불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듯 달려간다. 기상이변에 대한 뉴스들이 연이어 나오고 매년 더해지는 폭염 속에 살고 있다. 이제와 탄소제로를 외쳐보지만 늦은 건 아닌지 겁이 난다. 40년 전 이 이야기가 ‘예측’이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두꺼운 책장을 성큼 뛰어넘어 마지막 13장으로 갔다.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할 것인가라며 인류의 생존을 말한다. 지구 상에는 수많은 핵탄두들이 포진해 있는데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지는 협박의 허세이며, 이 허세는 실행으로 옮겨질 위험을 반드시 동반한다고 했다. 심지어 만약 작은 혜성의 지구와 충돌한다면 그 양상은 핵폭발과 유사하고(4장) 이를 오인한다면 인간을 볼모로 잡은 무기로 자기 파멸하게 되는 것이다. 전면적인 핵전쟁은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없다고 한다. 그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가 외계인을 만난다면 지구에 포진해 있는 핵탄두들과 수많은 형태의 폭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켓의 추진체는 핵탄두를 날리는데도 쓰인다고 한다. 과학 발전의 모순적인 지점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칼 세이건의 짙은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핵전쟁 이후의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지만 그 모습이 어떨지 2차 대전 일본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여학생이 묘사한 당시의 상황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p636) 그곳이야 말로 몹쓸 행성인 금성보다 더한 지옥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폭발로 인해 재에서 태어난 존재이다. 가늠할 수 없는 우주에서 지구인만이 유일한 존재가 아닐 것이며. 티끌 같은 지구에 있는 희귀 멸종류이다. 그 앞에 폭력과 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 우주적 시각이 필요할 때이다.
그래도 칼 세이건은 하나의 해결책을 준다.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는 지구를 지키고 싶다면,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고 싶다면 자신의 아이를 안아주라고 말이다. 유아기에 피부 접촉을 통해 애정표현이 발달된 문화일수록 폭력을 싫어한다고 한다.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은 우리 모두가 단 하나의 종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우주를 얻을 것인가 공멸할 것인가?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 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코스모스를 읽으니 오늘 밤 유독 밝은 달 이면에 거대하고 신비로운 코스모스가 보인다. 얼마 전 첫 민간 우주여행이 두 차례나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구를 떠나 민간 우주여행의 보편화가 된다면 우주에서 바라보는 우리 지구는 어떨까? 여전히 아름다운 푸른 행성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