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내 삶에 닻을 내린 철학을 찾아서
나에게 철학은 졸음이다. 고2, 철학 선생님이셨던 수녀님은 좋았지만 5-6교시에 듣는 철학은 너무 졸렸다. 대학교에서 만난 교육철학은 이른 아침 수업이라 또 졸렸다. 시간 탓만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를 들을 때는 의지에 불타지만 플라톤의 이데아가 나오면 내 정신도 이데아로 날아간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며 존재하지만 철학 시간에 나는 졸며 존재했다. 그래도 철학은 뭔가 있어 보이고 궁금하다. 이 글은 읽는 당신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은 꽤나 팔렸다고 한다. 철학이 나에게만 어려운 건 아닐 텐데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그들이 나와 다른 가, 이 책이 다른 철학책과 다른 것일까?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내 질문에 답을 준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나오는 시간 순에 따른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타 철학 입문서와 구별된다고 한다.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란 타이틀로 50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대표 개념을 사회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 맞추어 소개한다. 그 50개의 개념들은 개별적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고 한 철학자당 내용이 5쪽 정도여서 또 부담이 없다. 관심에 맞게 원하는 내용을 골라 읽을 수 있다.
나는 그래도 처음은 읽어야 할 것 같아 책을 펴니 1장에 니체가 나왔다.(p50)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니체가 무엇을 얘기했는지는 잘 몰랐다. 책은 니체의 르상티망이란 개념을 현대인들의 명품 가방 구입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르상티망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이 뒤섞인 감정이라 한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에서 여우가 먹지 못하는 포도에 대해 ‘저 포도는 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명품가방이 정말 필요하고 갖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다 사니까 나도 구입하거나 혹은 왜 비싸기만 한 명품을 갖지 못해 안달일까? 보세 가방이면 충분한데라고 반대로 생각하며 자신의 르상티망을 해소한다고 한다. 가질 수 없는 게 아니라 갖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런 식의 르상트망 해소는 때에 따라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명품가방을 예로 든 니체의 르상트망은 어렵지 않게 이해되었다. 나도 한 번쯤은 했던 생각이다. 결혼할 때 가격도 모르는 명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때는 에코백도 좋은데 비싼 명품을 왜 사나 생각했다. 지금은 비싼 명품이 좋긴 하겠지만 물건을 험하게 쓰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머문다. 니체를 읽으며 나의 르상티망은 내 삶에 맞게 잘 해소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두 번째 타자 전부터 궁금했던 에리히 프롬이다.(p85) 그는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시민들이 힘들게 얻어낸 자유를 벗어던지고 권위에 맹종하는 나치 독일의 파시즘, 전체주의로 돌아간 사람들을 설명하며 자유에 따르는 고독과 책임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유는 그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중에게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학교 상담자로 일할 때 교감 선생님 외 다른 선생님들이 상담실을 지나시다 꼭 한 마디씩 하신다. “상담실이 아주 좋네요. 자유롭게 혼자 있으시니 좋겠어요.” 그때로 돌아가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학교에서 상담자로서 고충을 나눌 동료 없이 홀로 일해야 하는 상담자의 고독과 책임감을 아느냐고 하지만 또 의문이 든다. 저 말을 곱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학교에서 교사가 아닌 나의 처지에 대한 르상티망은 아닌지 말이다.
삼 번 타자는 사르트르이다.(p94) ‘앙가주망 하라’는 멋진 말은 삶을 주체적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육아의 수용소에 갇혀 애들만 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조각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사르트르는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할 것 같다.
철학은 어떻게 삶에 무기가 되는가라는 묵직한 제목과 다르게 여러 철학 개념들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반가웠던 것은 철학자 외에 융, 스키너, 매슬로 등 익숙한 심리학자들이 나오지만 그들을 알기 때문에 내용의 깊이가 다소 아쉽다. 그래서 작가의 연혁을 보니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지만 조직 경영 분야에서 일을 한 것 같다. 철학을 실용에 초점을 맞춘 조직 및 경영 전공자의 특성이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한 권의 책에 50개의 철학 개념을 현실과 맞닿게 소개하려니 깊이까지 따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철학의 여러 부분에 궁금함이 생기도록 지적 호기심을 건드려 주는 것은 철학 입문서로서의 그 역할이 충분한 것 같다.
다행히 내 책장에는 먼지가 쌓인 니체와 에리히 프롬의 책이 한 권씩 있다. 두꺼움과 빽빽한 글씨에 책을 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책들을 열어볼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두껍고 작은 글씨들 가운데 아는 얘기가 나오면 반가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