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이 낮잠을 자는 틈에 책장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던 첫째 아이가 책 하나를 들고 왔다. 집에 있는 책은 모두 내 손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제목과 표지가 낯설다. 강아지와 소년이 그려진 표지 “이젠 안녕”이다. 지난번 중고서적을 구입할 때 배송비가 아까워 이책 저책 고르던 중 함께 구입한 책인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상담을 하게 되다면 상실과 애도에 대한 주제에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구입한 책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주인공 해리에게 귀여운 강아지가 생긴다. 메뚜기처럼 홉홉(hop hop)뛰어 이름은 호퍼(Hopper)이다. 해리와 호퍼는 무슨 일이든 함께한다. 해리는 호퍼에게 여러 재주를 가르치고, 목욕을 싫어하는 호퍼를 숨겨주기도 한다. 밤이면 몰래 아빠의 방을 지나 해리의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잔다. 서로 눈을 보고 체온을 나누며서로의 일상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해리가 돌아왔을 때 맞아주던 호퍼가 없다. 아빠는 눈물을 닦으며 호퍼가 사라졌다고 한다.사고였다고...
“호퍼를 묻기 전에 아빠랑 같이 작별 인사 하지 않을래?” “싫어요” 해리는 텔레비전 소리를 더욱 크게 키웠습니다.
해리는..,여느 때처럼 학교에 갔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심지어 친한 친구들에게도 호퍼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해리는 호퍼가 가고 난 뒤 함께 잠들었던 방에서 잠을 잘 수 없다. 아빠는 거실에해리의 잠자리를 마련해주었고,잠이든해리에게는 호퍼가 찾아오고그 포근한 몸을 꼭 안고, 마당을 달리며 신나게 논다. 해리는 그것이 꿈인줄은 알지만 느낌은 생생하다.
해리는 아빠에게 호퍼를 만난 이야기를 한다. 믿어주지 않을까걱정되지만 아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원할때까지 소파에서 자도 괜찮다고한다.
꿈에 찾아오는 호퍼는 점점 옅어진다. 호퍼가 찾아오지 않은 밤,뒷문으로나가니호퍼가 웅크리고 있다. 해리는 호퍼를 안고 침대로 데려간다. 호퍼의 몸은 약했지만 눈만은 반짝인다. “잘 가, 호퍼.”
이야기는 담담히 흘러가며 여백이 느껴진다.그 여백 속에 해리와 호퍼의 일상은 감각적인 단어들로 쓰여있다. 슥슥 핥아 주는, 호퍼의 보드라운 감촉, 포근함, 익숙한 냄새, 짖는 소리. 그들의 일상이 따뜻하고생생하다. 그래서따라오는 상실은 더 마음이 아프다.슬프지만 부드러운색채의그림과연필의 드로잉 선은아픈 마음을 안아준다.
올해 8살인 첫째 아이는 작년부터 자려고 누우면 엄마 아빠가 사라질까 무섭다고 눈물짓는 일이 종종 있었다.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고 설명해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새로운 만남이 가득하고 새싹처럼자라나는아이의 삶에 ‘영원한 헤어짐’이라는추상적인 개념이 스며들던 시기였던 것 같다.
1년이 흘러서인지 아이는 이제 책에서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말과설명으로 전해지지 않는 중요한 무엇을 나누고 싶다면이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1972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간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는 어린이 책에서는어려운 소재를 다루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용기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