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밍꼬 Sep 30. 2021

똥개 페르소나

페르소나에 숨어 자라나기

  ‘철학을 품은 생활 글쓰기’로 3분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주제는 융(Jung)의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Jung)이 말하는 페르소나는 사람이 살아가며 가면을 쓴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이다.  사람들은 왜 사회적인 가면은 쓸까?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감추고 싶은 모습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페르소나의 뒤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그림자’가 있다.    


  “나의 페르소나는 무엇일까?” 지금은 애들 넷 엄마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매일 할 일이 많지만 사실 나의 애엄마 페르소나는 그렇게 두껍지 않다. 받아들이고 익숙해졌으며 신랑과 협업으로 때에 따라 유연하게 쓰고 벗는다. 기억을 더듬어 갔다. 가면무도회의 가면처럼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무겁고 두꺼운 페르소나가 있었을 텐데.   


  초등학교 시절 별명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놀림이 귀찮고 싫은 듯해도 까르르 웃음의 중심이 되던 그런 별명 말이다. 나는 지어줄 별명이 없는 티 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던 내게 중학교 1학년 때 까칠한 친구 하나가 별명을 만들어 주었다. 그 이름 [워리], 고등학교에 가서는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흰둥이를  닮아 [순둥이]가 되었고, 대학교에 가서는 스스로에게 [복실이]란 닉네임 지어주었다. 들리다시피 동네 똥개 이름이다. 같은 느낌으로 마지막에는 스스로에게 지을 정도니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 별명이 마음에  이유는 이 두  이야기를 뺄 수 없다. 나의 엄마와 아빠이다.

 

  경상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혼자 진주에 살며 외롭게 공부하여 상경한 아빠는 불같은 성격으로 감정표현은 10점 만점에 0과 10밖에 없으셨다. 겉모습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감정이 무던하고 표현이 서툴른 엄마는, 그런 아빠의 마음에 대처하며 맞벌이하느라 몸과 마음이 항상 바빴다. 서울 사는 가장의 고됨을 직설적으로 여과 없이 투척하던 아빠와 나름의 방식으로 무디게 살던 엄마는 합이 맞아 지금도 사이좋게 살고 계시지만, 그 둘 사이에는 복숭거리는 강아지 같은 내가 있었다.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아이가 그 자리를 찾지 못하면 어떤 부모들은 이곳이 네 자리이다 일러주지만 그 시절 그렇듯 사는 바빠 애써  자리를 마련해 줄 생각을 못 하셨다.    

  

  지나 보니 그것은 공허한 정서적 허기였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동네 똥개 페르소나가 필요했다. 또 나는 마음을 다정하게 표현하는 일을 충분히 익히지 못하여 그 일에 서툴렀는데,  마음이 날카롭게 나올 때 [워리]는 그것을 숨기는데 도움을 주었.  그렇지만 모든 것을 가릴 수 없었다. 특히 [워리]의 가면을 쓴 채 나의 날 선 감정이 나올 때는 사람들은 [워리]의 짖음에  당황하였고, 그들의 반응에 나도 당황했다. 비집고 나온 칼이 무서운 셰퍼드의 것이 아니라 반격을 예상치 못했던 귀여운 동네 똥개 [워리]였기에 위력은 더하였다.  때로 [워리]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래도 [똥개 페르소나]는 커가는 나를 지켜내는데 좋은 전략이었다. 그렇게 워리로 순둥이로 복실이로 10대와 20대를 살았다. 똥개 페르소나에 기대어 참았고 견디고 울었고 웃었다. 술 먹은 다음날 머리를 감으며 어제를 후회했고 이불 킥도 많이 날렸는데 이제는 속속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와 하루가 쌓이며 자라지 못한 내(self) 자라났다. 두꺼운 가면으로 가려야 했던 ‘작은 나’와 세상 사이의 빈 공간은 진짜 나로 채워졌고 가면은 저절로 얇아졌다. 두꺼운 가면을 쓰지 않아도 세상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날이 생겼다.

 

  똥개 페르소나와 크고 작은 파도를 지나 온 나(self)의 항해는 흔들렸지만 침몰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망망대해를 항해 중이고 갈 길도 모르지만 이제는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살면서 어떤 페르소나가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새롭게 만나게 될 어떤 페르소나도 어울리는 내가 되도록 오늘도 이렇게 쓰고 .        


[똥개 페르소나] 에필로그...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빠는 이제 감정 표현은 3과 7도 하고 젊은 시절 바빠서 마음의 자리를 더 내어주지 못한 엄마에게는 그 일이 엄마 몫이라도 되는 것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는 딸이 되어 심보 부립니다.

글을 많이 쓰고 그 심보가 떨어져 나가길 바래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77년생 김지영씨의 "그럼 당연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