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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Aug 19. 2021

77년생 김지영씨의 "그럼 당연하지."

그리운 김지영씨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2011년 어느 가을날, 무료한 일상의 호기심으로 나간 소개팅에서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아무런 기대 없이 나갔기 때문일까 약속 장소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마포 공덕동의 어느 갈매기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흔한 소개팅에서 하는 뻔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은 어느 만화보다 재미있고 생생하게 들렸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할 때는 더없이 자신감 있어 보였다. 운동을 좋아하여 예쁘게 다져진 체격도 내 마음의 지분을 한몫 가져갔다.    


  그렇게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연애는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찼던 신랑은 연애의 시작과 동시에 진지하게 결혼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람은 사계절은 경험해 보아야 한다는 이유를 핑계로 삼아 결혼에 대한 내 마음을 대답해 주지 못하고 1년이 넘도록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보통 결혼 적령기에 배우자를 찾는 일은 나와 비슷하거나 나아 보이는 상대를 찾기 마련인데 흔히 말하는 그의 "사회적인 스펙"은 나보다 무엇 하나 나을 게 없었다. 그중 큰 이유라면 7살의 적지 않은 나이 차이와 당시 대학원을 졸업하고 늦게 사회에 나온 나와 다르게 신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해서 사회생활 20년을 채워가고 있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이렇고 사회에서는 그는 ‘고졸’이라 불렸고 그와 나의 학력 차이는 걸림돌이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디에 사는지, 장남에 장손이고 고향이 전라도인 것까지 우리 집 입장에서는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나의 부모님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곧 실력이며 세상의 직업은 대기업 입사와 공무원밖에 없는 줄 아시며 큰 모험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셨다.     


  나도 이런 부모님의 품에서 자랐으니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멋져 보였고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나도 나의 편견을 깨야했고 부모님의 허락도 받아야 했다. 이런저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중 나의 연애를 알아채신 부모님께 이런 사람과 결혼을 생각한다고 니 집에서는 이 결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로...!!!”라며 드라마 같은 난리가 일어나고 있던 때였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어린 시절에 무엇인가 채워지지 못한 나의 욕구 때문에 잘못된 사랑의 굴레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고, 채 서른이 되지 않던 나이에 공부만 하던 얕은 경험으로 이 결혼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다. 혼자 고민하기 어려워 주변에 내 연애 이야기를 하면 ‘고졸에 7살 차이 나는 아저씨’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은 ‘괜찮겠어?’라고 되묻거나 ‘괜찮을 거야’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를 포기하기에는 그를 보는 나의 안목과 직감은 신중하였고 무작정 나의 선택을 믿기에는 겁이 났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매일 눈물이 가득한 날을 보내던 중, 내가 상담사로 일하는 학교에 대학원 동기가 파견을 나온 날이었다. 흔한 이름의 그녀는 나보다 훌쩍 나이가 많은 언니지만 동기로 만나 공부하며 여러 날을 서로 의지해 온 사이였다. 언니와 나는 밀린 일을 처리하고 쉬는 시간이 되어 작은 상담실에 마주 앉았다. 종종 연락은 하였지만 졸업 후 서로 다른 곳에 자리를 잡은지라 오래간만에 만남이었다. 나는 나의 고민을 얘기하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나는 정말 모르겠어. 보통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 다들 후회한다고 하잖아. 부모 말을 들으라고... 언니는 주변에 이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도 잘 사는 사람 봤어? 언니는 나보다 언니니까 알지 않을까?"    


매일 눈물지으며 고민의 연속이던 내가, 친구이자 인생의 선배에게 묻는 간절한 질문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잘 사는 분들 있어, 우리 이모랑 이모부님이 그러신대 아주 잘 사셔. 너도 잘할 거야. 남자 친구도 좋은 사람인 거 같아."    


  나보다 8살이 많은 그녀, 평소 말수가 적고 자기 의견을 내비치지 않는 그녀의 이야기라서 이었을까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믿음과 힘이 생겨났다. 내가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하나씩 어려움을 넘고 결혼을 했다. 아주 작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부지런히 아껴가며 살림을 모았고 결혼 9년 차가 되었다. 이제는 크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살며 네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고 남편은 아직도 내게 가장 좋은 사람이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다가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 흔들리는 날에는 마음 깊이 날 잡아주던 그녀의 묵직하고 중심 있는 한마디가 나에게 힘이 되었다. 이제는 속초에 사는 맑은 얼굴의 언니에게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보고 싶은 지영 언니! 오늘도 고맙고 나는 당연히 잘 살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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