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밍꼬 Oct 15. 2021

오! 자랑스러운 나의 동기(同期) 들

낡은 논문방에서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길

  오랜만에 대학원 동기들이 모였다. 누군가 결혼 소식을 전하며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런 시국에 기대하지 못하였지만 마음이 모여 날짜가 잡혔다. 다들 성격인지 조심 또 조심하자 하여  식구들을 잠시 외출을 보내고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모인 것이 다른 동기의 청첩 모임이었으니 2년이 넘었다. 집을 청소하고 오랜만에 잡힌 약속에 들뜬 마음으로 룰루랄라 씻으며 단장을 하니 함께 지냈던 논문방이 떠 올랐다. 요새 학생들도 그런 논문방을 쓰려나? 낡고 서늘한 공기가 일 년 내내 맴돌던 건물 3층 구석에 있던 작은 방이었다. 독서실 책상 8개를 양옆으로 나누어 채우면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던 방. 그 방에 모여 앉아 설문지를 만들고 데이터를 입력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통계를 버벅거리는 컴퓨터로 돌리며 눈물과 콧물이 섞인 우격다짐으로 버티며  졸업논문을 완성하였다. 실험실 생활을 하는 전공이 아니다 보니 낡고 작은 공간이라도 학교 안에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좋았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다 지치면 모여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교수님께 혼이 난 이야기, 해도 해도 어려운 통계에 이래서 졸업이나 하겠나 는데 산아래 학교의 추운 공기를 무릎담요를 덮은 채 서로 의지했던 때가 있었다. 졸업의 문은 높아 보였지만 참 좋았던 날들이다.     


  약속한 2시가 되자 성실한 친구들은 누구 하나 크게 빠르고 늦는 일 없이 벨을 누르며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다들 그때와 변한 이 없다는 얘기들로 웃어 보인다. 왜 변한 게 없겠나. 나만해도 사람 넷을 뱃속에 넣었다 뺐는데.


   나는 졸업을 하고 2-3년쯤 학교 상담자로 일하다 아이를 낳을 때 일을 그만두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이 끝났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 둘째가 생긴 것을 알았고 막달까지 일을 하다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얼른 크기만을 바랬다. 막 돌이 막 지난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자리를 찾는 건 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셋째가 임신된 것을 알고 복직의 꿈은 내려놓았다. 키워야 할 아이들과 책임의 무게가 있으니 생각보다 깨끗하게 포기되었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챙기며 애써가며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크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했고 이것이 내 삶이다 여기는 평안함 속에 넷째까지 낳게 되었다.


  아이가 하나인 채 주 2회 파트타임을 하는 것도 정신이 없었다. 학교 퇴근 시간인 네시 반에 끝나고 달려와도 아이는 어린이집에 혼자였다. 한두 시간이라도 아이를 챙겨주시는 시어머니의 도움이 감사했다. 치열하게 노력하며 공부만 했는데 억울함도 있었고 편안함도 있었다.  똥기저귀를 갈며  이렇게 살려고 여태 공부했나 한숨을 쉬었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빈 집에서 널브러진 옷가지 등을 정리하고 숨을 돌릴 때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아실현을 하려 하느 이렇게 마음 편히 살자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업계에 발을 걸쳐놓겠다고 학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소식을 듣고 돌아올 때면 부러웠고 씁쓸해하며 나는 작아졌다. 누군가 나의 소식을 물으면 언젠가 다시 일을 하고 싶다 라고 말하며 늘 말끝을 흐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우리가 만난 지도 10년이 지나 있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반가움을 풀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졸업을 하고 몇 년간 힘든 수련을 거쳐 어느새 높고 어려워 보이던 1급 전문가가 되었고 그 사이 박사과정에 임하며 벌써 대학원 강의 경험을 쌓은 친구도 있었다. 누군가는 꿈에 그리던 모교 상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여리고 병아리 같던 친구도 정글 같은 남학교에서 몇 년째 자리를 잡고 잘 버텨 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모두 열심히 살고 있었다. 다들 뿌듯하고 머쓱하게 소식을 전하며 그들은 나의 네 명의 아이들을 보고도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 하나가 말을 했다.


“그러니까 밍꼬야 넌 책을 써봐. 아이들 얘기 쓰면 될 거 같은데... ”

“.... 사실 나 얼마 전부터 글 쓰고 있어.   


나는 수줍게 브런치 채널 소식과 최근 월드비전 후원 에세이에서 당선되어 오디오 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공유하였다. 행동력 좋은 나의 친구는 얼른 오디오 북을 재생시켰다. 아이들이 빠져나가 조용한 우리 집 거실에 나의 이야기를 낭독해 주신 이상엽 배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이밍꼬님의 우리 집 후원 이야기....”


  아이들을 넷이나 키워도, 나만 바라보는 건강하고 반짝이는 눈들을 매일 바라보아도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며 만들었던 나의 빛나는  알맹이들은 내 안 한 켠에 쓸 곳이 없이 쌓여있었다.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불안함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다 셋째와 넷째는 낳고서 그 불안함은 수면 위로 떠오를 여력이 없었다.


  돌아보니 나의 브런치에는 28개의 글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온전한 나의 것이었다. 나의 것이 있기에 오늘은 진심으로 친구들의 훌륭한 노력과 성에 더없이 함께 기뻐하고 벅찬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었다.


성실함과 무던함으로 나아가는 자랑스러운 나의 동기들, 나도 내 것을 찾아가며 그들을 든든함 뒷심을 받쳐가며 열심히 따라가야겠다. 아주 행복하고 또 행복한 하루였다.

        

https://audioclip.naver.com/audiobooks/CD4B8C9129



매거진의 이전글 똥개 페르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