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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Oct 21. 2021

마음 속의 우상을 벗어나

철학을 통한 생활 글쓰기 #2 편견의 색안경 벗기

   솔방울이는 매주 학교 숙제로 독서록을 내야 한다. 읽는 건 좋아도 쓰기는 싫은지 꼭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 결국 한 소리를 듣고 울며 쓰기 시작한 독서록을 다 썼다고 가져왔다. 단 4줄이 적혀있다. 여기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난 얼굴을 찌푸렸고 “너 이렇게 쓰려면 쓰지 마!”라고 외치고 싶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심리적 도식이라고 부르며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틀 혹은 지도로 생각할 수 있다. 나의 도식으로는 게으름을 부리다 혼이 나고 써온 솔방울의 4줄짜리 독서록은 아웃이다. 그러나 아이는 굴하지 않고 독서록을 읽어 주었고 내용은 예상과 다르게 간결하고 훌륭했다. 혼나고 쓴 고작 4줄이라고 얕보았는데 아이의 숙제를 바라보는 나의 도식은 솔방울의 도전으로 수정되었다.     


   우리의 도식은 경험을 통해 만들고 , 도식은  아무 경험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기존의 것과 비교/판단하여  우리의 결정을 빠르고 효율적이게 돕고 위험도 피하게 해 준다. 더 넓게는 개인의 도식(스키마)삶의 방향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일생을 거쳐 만들게 되는 도식을 개인의 지도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각자의 지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지도는 가지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을 파악하려 노력할수록 지도는 정확하고, 조그맣거나 대강 그려져 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는 협소하고 오해로 가득 게 될 것이다.


  나의 지도가 정확한지 확인하고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해야 하는데 이를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만약 지도가 단순하고 오류가 많다면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이 말하는 네 가지 우상, [착각, 독선, 거짓말, 편견] 속에 빠져 있는 가능성이 큰 지도이다.  이것은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방해를 하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가래떡을 참기름에 찍어 먹는 집에서 자랐다. 공교롭게 친가와 외가 모두 그래서 그것이 전부로 알고 자랐다. 어느 날 친구들은 가래떡을 참기름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나는 가래떡을 꿀과 조청에 먹을 수 있다는데 놀랐다. 먹어본 그 맛은 아주 맛있었다.

   

  솔방울의 4줄 독서록 그리고 참기름과 가래떡은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오류가 나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면 나는 경직되고 제한된 경험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성별, 민족, 고향, 학력, 종교, 연령 등을  각자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틀 안에서만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나는 자라오며 입시철과 취업철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결과를 묻는 문화에서 자랐다. 가끔 가족 행사나 명절에 먼 친척들을 만나면 혹은 부모님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래서 어느 학교에 들어갔다고? 어디에 취업되었다고?’라는 말은 당연한 인사치레 같았다. 이렇게 자란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런 류의 질문을 하는 것은 통성명과 같았다. 20대 중반이 넘어서 묻지 않아도 되는 말임을 알았고 때론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도 그때야 알았지만 사실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편견과 선입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나도 장담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새롭게 가족이 된 남편에게 같은 것들을 물었다. 당연히 이름만 대면 아는 대학과 직장을 다니고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관심이란 옷을 입은 채 묻는 말이었다. 나는 그냥 좋은데 다녀요라고 말하며 ‘근데 진짜 어디서 무슨 일한다고 하면 아실까나?’ 속으로 생각하며 희끄무레 웃었다.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 공간을 채우는 어색함과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일까? 내가 좋은 학력과 이름난 직장이 최고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문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나의 몫이었을 것이다.    


   현실에 충실하며 경험에 과감히 도전하자. 진실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눈을 크게 떠 본다면 더 큰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베이컨의 경험론, 네 가지의 우상,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p64-p85를 참고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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