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밍꼬 Nov 19. 2021

내가 사랑했던 시간, 스윙댄스

린디합. 스윙 아웃과 함께한 그때의 이야기.

나는 어둑한 19시 50분의 신촌역 8번 출구를 좋아한다. 불 밝히고 늘어선 떡볶이 포장마차들을 코너삼아 홍대로 향하는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번화가인 건너편과 다르게 드문한 인적이 있는 골목길을 달려가고 싶지만 속도 늦춘 걸음으로 겨우 걸어간다. 산울림 소극장으로 뻗은 길을 따라 오래된 식빵 집과 기찻길을 지나면 내가 사랑하는 하얀 간판이 보인다.          


   뜨거운 내 마음을 홀랑 들킬까 문을 열기 전 숨 찬 호흡을 고른다.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땀과 열기가 가득한 공간에 심장을 울리는 스윙 재즈가 눈과 귀로 가득 들어온다. 바쁜 걸음으로 오느라 뛰던 심장은 흥겨운 음악에 박자를 맞춘다. 사람이 가득 찬 입구에서 눈이 마주친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준비한 칠천 원을 사장님께 내밀어 티켓을 받는다.           


  사물함의 빈자리를 찾아 겉옷을 넣고 가방에서 나의 분홍색 스윙화를 꺼내 신는다. 바닥에 가죽을 덧댄 신발은 때탄 모습이지만 언제나 사랑스럽다. 다음은 거울 앞에 서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가벼운 스트레칭과 트리플 스텝을 밟는다. 얼른 누군가와 춤을 추고 싶지만 다치지 않기 위해 꾹 참으며 몸을 푸는 나의 루틴을 사랑한다.       


  한 곡의 워밍업을 끝으로 뒤돌아 눈이 맞은 누군가와 함께 플로워로 나온다.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홀딩하여 만들어 내는 ‘커넥션’으로 말로 묻는 안부를 대신한다.  

  

  흐르는 선율에 따라 연결된 느낌을 이어가며 함께 음악을 타고 만드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움직임의 에너지는 스윙 재즈의 선로를 타고 플로워를 흐른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리더가 주는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나의 몸짓을 사랑한다. 함께 손을 잡고 쫄깃한 에너지로 춤을 추는 여덟 박자의 스윙 아웃을 사랑한다. 미끄러지듯 밀려갔다 파트너에게 당겨지는 린디합의 달콤한 슈가 푸시를 사랑한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른 박자에 팔다리를 휘저으며 추는 찰스턴 한 판을 사랑한다. 손을 놓아도 눈으로 이야기하며 파트너와 함께 도는 나의 턴을 사랑한다.          


  꽃 같은 봄저녁의 바람같이 부드러운 미디엄 템포의 스윙 재즈를 사랑한다. 석탄을 잔뜩 싣고 달리는 기관차 같은 패스트 린디합(fast tempo of Lindy-hop)을 사랑한다. 고된 하루 끝에 무거운 몸을 끌고 만들어진 블루스의 무겁고 끈적한 움직임을 사랑한다.          


  연이은 춤에 한 곡 쉬어가며 스윙 빠 가장자리에 기대어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음악에 좋아하는 이가 눈맞춤하며 다가오는 서로의 발걸음을 사랑한다. 빠른 음악에 춤을 춘 뒤 나오는 뜨거운 호흡과 흐르는 땀방울을 사랑한다. 스윙 빠 플로어 안에 가득한 모든 댄서들의 움직임을 사랑한다.     


  나는 땀에 잔뜩 젖은 옷으로 잠시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는 신촌과 홍대 사이 애매한 뒷골목을 사랑한다. 늦은 시간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적해진 곳에서 춤을 추는 마지막 몇 곡을 사랑한다. 춤을 마치고 가는 길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은 맥주집에 모여 마시는 삼천 원의 크림 생맥주을 사랑한다. 하루를 이야기하다 막차 시간 정류장으로 달려가는 나의 발걸음을 사랑한다. 오늘도 뜨겁게 춤을 사랑한 나의 하루를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하는 맛, 우리의 비빔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