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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Dec 03. 2021

인사의 오해

내년 부터는 인사 더 잘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한 마디가 어려웠다.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인사는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나는 그 일이 어려웠다. 첫 마음이 어려우니 누구를 만나 반가운 마음이 있어도 표정은 굳었고 크게 흔들고 싶은 손은 무겁고 뻣뻣했다.


  어린 나에게 인사는 해야만(must do)하는 것이었다. 인사의 첫 기억은 어른이 출근하고 퇴근할 때 문 앞에 서서 경례를 하듯 딱딱했다. 내가 배운 인사가 오해된 예의범절 교육의 결과인가, 시대가 변했음을 알아채지 못한 걸까? 돌이켜 생각하며 나의 엄마아빠도 인사는 반가움의 표현이고 서로가 다정히 주고받아야 한다는 일인지 몰라 놓치신 부분이 있었을 거다. 누구를 향하지만 허공에 뜨는 인사는 달갑지 않은 매일의 숙제였다.    


  엄마는 바빴다. 퇴근하고 돌아와 신발을 벗자마자 저녁을 차렸다. 원래도 급한 사람이 할 일이 많으니 나와 인사할 여유가 없었다. 아빠는 언제부터 인사를 해도 다음 날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그런 때의 인사는 더 반갑지 않았다. 취한 사람과는 최대한 짧고 간결한 게 모두에게 좋았다.


  자라는 나에게 인사의 의미가 이와 같았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있어도 표현은 어색했고,

  어색한 사이인데 인사를 해야 하면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때만 살피다 말이 나오지 않아 결국 인사를 못하는 상황은 손톱 끝 꺼스름 같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인사에 대한 잘못된 내 습관은 오해를 만들었고 오해는 나를 더한 뻣뻣함에 빠트렸다. 상대의 입장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신을 대하는 사람이어야 다가가기 편할 텐데 내 모습은 상대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았을 거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지 하고 모습을 바꾸려 해도 20년 넘게 해온 인사에 대한 내 모습을 바꾸는 일은 어려웠다.    



  

  내 남편은 인사를 잘한다. 누구에게나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잘해서 최측근인 나는 아주 가끔은 과연 저 인사에 영혼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뭐 모든 인사에 영혼이 있을 필요야 없지.  나는 그런 남편의 등 뒤에 숨어 깍두기처럼 인사를 시작했다. 작은 소리로 “안녕하세요. 글쓰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듯 인사에도 연습이 필요했다. 그러니 인사가 입에 붙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말을 하자 귀엽고 예쁘다 말해주는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도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대답을 시키게 되었다. 아이도 따라했지만 사실 반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이의 거울처럼 내가 큰소리로 인사해야 아이도 잘 따라했다. 그러니 내가 잘 해야 했다.  

   

  이것은 이전 이야기들이고 이제는 말 못하고 웃기만 하는 막내와 집에만 있으니 사람이 고파서 밖에서 누구를 만나면 저절로 안녕하세요 소리가 나오고 반가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다. 게다가 네 아이들이 쫑알대는 틈에서 웬만큼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 인사는 쉽게 묻혀 버리니 더 크게 외쳐야 한다. 우리 집 셋째를 정말 예뻐해 주시는 앞집 아저씨는  볼때마다  반가워하며 항상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시는데 그 모습을 보면 반가운 인사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곤혹인 곳이 있다. 친정 문 앞이다. 친정 가는 마음은 반갑지만 하던 버릇이 어디 가지 않아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목에 사탕이 걸린 듯 내 입에서는 ‘왔어’와 ‘갈게’가 전부이다. 나는 사위와 아이들을 앞세워 그 인사 사이에 숨어간다. 친정과 비슷하게 어른을 어려워하는 나는 편할 수만 없는 시댁에서도 뻣뻣한 인사의 레이더가 작동한다. 다정하신 분들이라 때로는 살가운 인사가 나오지만 매번은 어렵다. 시댁식구들은 10년쯤 알고지낸 며느리의 마음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왜이리 무뚜뚝한건지 그 존재가 아직도 의문이실 것 같다.


  까짓 인사 그냥 반갑게 하면 될 것을 뭐가 그리 어려울까. 될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해의 목표를 친정과 시댁에서 인사만은 반갑게 하기로 해야겠다. 포옹까지는 아직 이르다. 인사에 대한 마음 깊은 나의 오해, 이제는 풀고 싶다 그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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