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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Nov 29. 2021

초보운전 다둥이 엄마의 첫 사고

항상 운전조심, 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지 않는 법을 배운 날

   

  산봉우리가 태어나고 첫 여름, 아직 세 아이의 엄마이던 시절이다. 6살 솔방울은 지역 주민센터 육아 나눔터에서 열린 미술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이가 혼자 참여하는 수업으로 알고 신청했는데 수업에 가보니 부모가 함께 참여해야 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세 아이를 모두 데리고 수업에 가야 했다. 수업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책상은 솔방울과 나, 이파리와 산봉우리가 옹기종기 붙어 앉기가 참 작았다. 자기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파리를 달래가며 막 앉고 서는 산봉우리를 잡아끌며 참여하는 수업은 항상 버거웠다. 진행하는 강사님은 재료비가 빠듯한지 수업에 온 아이들에게조차 똑 떨어지는 양의 재료만 주는 상황에서 징징거리는 이파리를 위한 종이 한 장을 받는 일도 눈치가 보였다. 누나들 옆을 기어 다니는 산봉우리는 마냥 해 맑았다.

  수업을 몇 번 해보고 나는 육아 나눔터 담당자에게 참여가 힘들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수업은 지역 내 ‘육아 나눔’이 목적이라고 동생들과 함께 와도 괜찮다고 버거워하는 나를 달래었다. 

  시끄럽게 매미가 울던 늦여름 오후, 내게 늘 버겁던 그 미술 수업이 방학으로 몇 주 쉬고 다시 시작하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운전을 한 지 2년 정도 되었다. 운전을 하게 된 건 둘째가 태어나고 한 달 정도 지난 추운 겨울날이었다. 3살 솔방울이 갑자기 열이 났다. 평소에는 고열이 나도 팔팔하던 아이가 그날은 걷기도 힘들어했다. 우리는 그때 서울 언덕이 높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아이가 가는 소아과는 가깝지만 가파른 언덕 아래 있었다. 2개월 된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열이 나는 3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언덕을 내려가도 나 혼자는 두 아이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못 올라올 거 같았다. 나는 아픈 아이를 안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늦은 밤까지 문을 연 병원을 찾아갔다. 그날 이후 나는 10년 된 장롱 면허로 운전대를 잡았다.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선 모든 일에 차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시댁에서 오래된 경차를 빌려주셨다. 1년쯤 그 로를 운전하다 셋째를 출산하며 시댁에 다시 차를 돌려드렸다. 한동안은 남편이 아이들 등하원을 맡아서 몇 달간 운전을 쉬었다. 남편의 출퇴근용 차가 있었고 새 차를 사려면 큰 지출이 필요하니 내 차를 다시 구입 하는 일은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정말 차가 필요한 날 늘 남편의 도움을 받았는데 아이들의 활동이 늘어나며 서로 불편해서 비로소 일주일 전 중고차를 마련했다. 

  중고라지만 반짝거리는 새 차는 어디서나 눈에 띄는 빨간 색이었다. 다시 나만의 차가 생긴 것은 좋았지만 전보다 커진 크기부터 오랜만에 하는 운전은 낯설었다. 그 차에 세 명의 아이를 태우고 가기 싫은 미술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은 출발부터 불편했다. 

  모범생 기질이 남아 있기에 한번 하겠다 시작한 일은 쉽게 관두지 못했다. 버겁다고 느끼는 일도 부담감을 안고 끌고 갔다. 그날도 그랬다. 어린이집에서 솔방울과 이파리를 찾아 미술 수업에 오늘도 동생 두 명을 데리고 수업에 가면 방해가 되진 않는 건지, 자기도 하고 싶다고 이파리가 부릴 투정에 벌써 강사의 눈치가 보였다. 복잡한 내 마음과 달리 뒷자리에 앉은 세 아이들은 새 차가 좋은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머리로 운전하며 주차장 입구가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길로 가는 내 차를 뒤로 다른 차가 따라 오는 모습이 뒷거울로 보였다. 초보운전자인 나는 피할 곳 없이 쫓아오는 차에 마음이 급해졌고 급해진 마음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너무 빨리 핸들을 돌려 버렸다. 사이드 밀러를 보며 ‘이런 새 차인데 옆구리가 좀 긁히겠네’라고 생각하며 브레이크를 밟은 순간!       

“쿵 드르륵!! ”     

  요란한 소리가 났다. 브레이크를 밟고 보니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나의 새빨간 새 차의 반쪽이 주차장 벽을 타고 올라가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 아이들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떡하지? 119에 연락해야 하나 당황하는 동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차 문을 두들기며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벌벌 떠는 손으로 문을 열고 내려서 뒤에 아이들이 타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하였다. 차의 뒷문을 연 사람들은 ‘어머 뒤에 쪼그만 애들이 셋이나 타고 있다’며 벽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내 차를 본 것보다 더 놀라워 했다.

  어디서 알았는지 쏜살같이 사설 견인차 몇 대가 달려왔다, 기사들은 주차장 입구를 막으면 안 된다고 빨리 차를 내리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센터 직원들과 지나던 사람들은 당황하는 나를 토닥이며 괜찮으니 보험사에 연락하여 천천히 처리하라고 말해 주었다. 

  근처에서 일하던 남편도 내 연락을 받고 서둘러 달려와 주었다. 보험사에서 온 견인차는 속절없이 벽을 타고 올라간 내 차를 무사히 내려 주었다. 남편과 내가 어린 산봉우리를 안고 보험사와 사고를 처리하는 동안 주민센터 직원들은 솔방울과 이파리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간식도 주고 그림도 그리며 놀랐을 아이들의 마음을 챙겨 주셨다. 반짝이던 나의 빨간 새 차는 너덜이게 덜렁거리는 범퍼를 달고 덜덜거리며 견인차에 이끌려 정비소로 갔다.

  서커스처럼 차가 벽을 타고 올라간 요란한 사고였지만 며칠 뒤 정비를 마치고 나온 차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차는 멀쩡해졌지만 나는 사고의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남편은 사고는 언제나 날 수 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된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운전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우울감에 빠져버렸다. 그때 내 말을 듣던 여섯 살 솔방울이 나를 불렀다.


  “엄마 나 사실 엄마에게 고백할 게 있어.” 

  거의 울먹이던 나에게 솔방울은 소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사실 난 사고가 나서 좋았던 게 있어. 그건 자동차 바닥을 볼 수 있었거든! 

  자동차 배가 하늘로 들어 올려졌는데 그 밑에 전선들이 이렇게 막 엉켜 있더라고.”     

  아이의 엉뚱한 말을 듣고서 나와 남편은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말에 울다가 웃다가.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웃으며 다시 용기를 내어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아이들 등하원을 해주려면 아무리 겁이 나도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엄마니까 해야 했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차를 고치자마자 운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겁이 나서 아주 오랫동안 또다시 운전대를 잡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이제는 그 미술 수업처럼 버겁다고 느끼는 일은 굳이 힘겹게 참아가며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을 배웠다. 내 한계를 알고 멈출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나는 요란한 새 차 신고식을 하며 초보운전 딱지는 떼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몇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이제는 운전이 익숙하다 싶은 날이면 벽을 타고 올라간 나의 차를 생각하며 언제나 초보처럼 조심하며 안전 운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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