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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Apr 07. 2022

제사상에 대한 마음의 균형

제상상을 대하는 MZ세대 어느 여자의 마음잡기

   몇 번의 짧은 신호음 뒤에 반기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다음 주에 제사가 있던데요.”

 “그래, 오려고?”

 “이번 제사 지내는 거예요? 올해부터 하나로 합치신다면서요.”

 “이번에 지내면서 조상님께 물어보고 합쳐야지….”


  말끝을 흐리신다. 제사 줄이기, 내년에는 가능할까? 결혼 전에는 자로 잰 듯  편한 쪽으로 사는 MZ세대 여자였다. 그런 내가 품 넓고, 손 큰 집 장손 며느리가 됐다. 서울 시댁 근처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경기도 어디로 터전을 옮겼다. 결혼 후 8년 동안 나와 남편은 고만고만한 터울의 아이 넷을 낳았다. 변한 것도 많았지만 결혼 초 어머니가 적어주신 세 번의 제삿날은 매년 음력 날짜에 맞춰 달력에 옮겼다. 이름만 장손 며느리인 내 최소한의 의무로 여겼다.


시어머니는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면 굳이 오라 하지 않을 분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목소리는 반가움을 감출 수 없다. 내가 잊었다면 모를까 제삿날을 알고 지나치지는 못하겠다. 누군가는 적당히 모른 척하라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작년 마지막 제사를 지내며 올해는 제사를 하나로 합친다고 하셔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제사에 간다 답한 내 마음은 푹 질어 버린 밥같이 죽도 밥도 아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은 다음 주가 제사인 걸 아나 싶어 그에게 물었다.


 “다음 주 화요일 제사래. 올해는 합치신다고 했는데….”

 “그래? 이번이 할아버지 제사라 하시는 거 아니야?”

 “이번이 증조부님 제사거든.”


  남편은 누구보다 개방적이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명절과 제사에는 답답할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이 무슨 제사 인지도 모르는 모습을 보니 과연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싶다.


  나도 결혼 전까지 친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며느리가 되어 지내는 제사는 수년이 지나도 어려웠다. 얼굴 모르는 조상님께 상을 올리는 날이면 일상에 치여 못 가는 나를 아끼던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울컥하게 떠올랐다.


  사실 제삿날 장손 며느리가 하는 특별한 일은 없다. 퇴근한 남편과 부지런히 아이들을 챙겨 시댁에 가고 저녁을 먹고 시어머니께서 오후 내내 혼자 준비하신 음식을 차리고 치우고 돌아온다. 그러나 함께 도와 낮부터 음식을 못 하는 것도 무안하고 그렇다고 애들 넷을 데리고 늦은 밤까지 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은 쉽진 않다. 더구나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 후로 평일 늦은 밤 제사는 더 부담되었다.


  일 년에 설과 추석, 세 번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 기혼 여성은 고개를 절렌다. 그런 반응은 내가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여자가 되는 것 같았다. 일 년 3번의 제사를 지내는 집의 며느리는 마음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주 흔들렸다. 그날이 되면 남편과 이유 없이 투닥거렸고 언제부터 그와 나 사이에 이런 논쟁은 부질없는 일이다 싶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며 많은 것을 바라지 않은 남편에게 ‘제사에 대한 내 마음’은 그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이기로 나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 제사가 언젠가는 내 일이 될 것이란 부담은 여전했다.


  다음 주가 되었고 남편의 퇴근 후 아이들과 시댁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아이들은 많이 설레어했다. 도착하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밖까지 익숙한 음식 냄새들이 가득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님은 음식을 하시다 나와 아이들을 돌아가며 한 품으로 안아주시고 말수 적은 우리 아버님은 얼굴 가득 미소만 함박이다. 손 큰 시어머니의 부엌에는 반가운 만큼 음식이 있다. 한참 못 본 그리움만큼 음식이 쌓여있다.


  둘러앉은 저녁상은 애정이 넘친다. 게를 먹기 좋게 툭툭 잘라 양파와 당근을 총총 썰고 양념을 진하게 묻힌 양념게장. 매운맛을 좋아하는 날 위해 고추씨까지 함께 갈아 맵싸하고 시원하게 버무린 배추 겉절이를 한입에 넣기 좋게 죽죽 찢어 주신다. 두 가지만 있어도 소복하고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모자라다. 정성껏 다듬어 조물조물 무친 삼색나물은 옹기종기 담겨 있고, 오후에 부쳐내 아직 온기를 머금은 노릇한 전들은 넉넉하게 담겨 있다. 제사 음식 사이로 아이들 각자 입맛에 맞춰 등갈비며 탕수육과 호박죽도 만드셨다. 제사 음식만도 많은데 이걸 언제 다 하셨을까? 음식을 해본 사람만이 숨겨진 정성과 노력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제삿날은 차마 모른 척할 수 없는 이유다. 시어머니는 늘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이 본인의 기쁨이라 하신다. 시어머니의 밥상에 뾰로통한 내 마음이 녹는다. 속살 꽉 찬 양념게장 한 입, 노릇하고 따끈한 꼬치전 한입에 그 마음을 사그라진다.


  저녁상을 치우고는 예쁘고 굵직한 것으로 고른 과일들을 씻고 윗동을 깎아 제기에 올린다. 곱고 정성 들인 마음으로, 이왕이면 가장 좋은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한다. 부엌 한쪽에서 꺼낸 커다란 들통에는 알록달록 고명을 얹은 생선들이 가지런히 뉘어 있다. 마른 음식들을 놓는 일에는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을 더한다. 윤기가 반지르르한 갈색 약과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사뿐사뿐 그릇을 상 위로 옮기는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도 입맛을 다신다. 하얀 뽀시래기를 부르르 떨구며 담는 한과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간단히 준비한다고 하셨어도 가지 수를 채우니 간단해질 수 없는 것이 제사상이다.


  시댁에서는 절을 한 차례 하고 나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인다. 쌀을 박박 씻어 솥에 올리고 어머니가 국거리 고기를 볶는 동안 썰다 만 무를 내가 잡았다. 얼마만큼 나박나박 썰어야 하는지 아직도 낯선 어머니 부엌의 제사상이다. 내가 사랑하는 저 남자를 보아하니 언젠가 나의 부엌으로 오게 될 제사상이다. 잘 차려진 제사상에 내 마음만 얹는다. 머리 숙여 절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 뒤에서 가장 좋은 마음으로 빌어 본다. ‘이렇게 꼬박꼬박 인사드리니 좋은 일 가득하게 해 주세요.’. 늘 밝고 건강한 나의 아이들을 보며 제사상에 대한 내 마음의 균형을 잡아 본다.



*공모전을 핑계로 오랜만에 글을 써보았습니다.

바쁘고 길었던 겨울은 지났는데 글을 쓸 여유는 아직입니다.

오랜만에 써본 글이라 투박하고 부산하지만 이렇게 올려 봅니다. 5월에는 차츰 더 글을 써보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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