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밍꼬 Apr 14. 2022

이렇게 만나게 된 코로나

신기하고 다행인 이제 흔한 코로나 확진 이야기

    코로나가 시작된 2년 전을 기억한다.  새롭고 위험한 바이러스에 전 세계는 여러 모습으로 대처했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통제안에 들어 올 것을 믿으며 이탈리아의 사람들이 격리된 집안 발코니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모습을 보며 희망을 다. 그러나 뉴욕 한복판에서 코로나 사망자들을 묻을 곳이 없어 시신을 보관한 냉동트럭이 줄지어 서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당시 임산부였던 나는 그야말로 겁에 질렸다. 아이들과 집에서 나오지 않고 도착한 택배 상자도 그냥 만지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전국 확진자 수가 50명 이하로 내려가면 여행도 가고 어린이집도 가자며 달래었다. 이것이 벌써 2년을 꽉 채운 이야기이다. 확진자가 50명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코로나는 모양새를 바꾸며 알파, 델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를 휘몰아쳤다. 나아지지 않고 변하기만 하는 코로나 상황에 적응하아이들은 두 살의 나이를 먹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대한민국 일일 확진자 62만 명을 찍는 날이 있었다. 확진자 50명이 되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했었는데 이 숫자를 보니 최선을 다해 조심하던 그날의 내가 한심했다. 스스로를 집에 가둔 채 사람 없는 곳을 ‘안전하고 운 좋게’ 여행한다던 들을 부러워하며 흉봤었는데 그때의 그들이 현명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2022년 4월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게 되었다.     


  일하는 남편과 두 곳의 어린이집, 학교를 각각 다니는 아이들은 지뢰밭 같은 코로나 확진 속에서 신기할 정도로 무사했다. 가까이에서 몇 번의 집단 발병이 있었지만 제발 이번만 아니길하는 내 마음이 통했는지 피해갈 수 있었다.

 

    어느 금요일 셋째 산봉우리가 심하게 떼를 쓰며 하루 뒤 구토와 함께 열이 났다. 괜찮아지는 듯했지만 투정과 열은 다시 올랐다. 셋째네 어린이집 같은 반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나온 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고 조심하느라 한동안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다. 환절기라 아이들이 가끔 열이 나긴 했지만 자가 키트나 신속항원도 매번 음성이어서 이번에도 감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확인한 아이들의 자가 키트도 결과도 음성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확 나아지질 않았다. 확진자와 만날 수 있는 병원에 마스크 없이 막내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남편을 기다렸고 남편이 퇴근 후 셋째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한참 뒤에 돌아왔다.      


어떡하지? 산봉우리 코로나래.”     


병원에서 결과는 시간이 지나 아주 미세하게 양성이 나왔다고 했다. 아 코로나,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2년간 너무 피하려 애써서인지 막상 닥친 상황은 놀랍지 않았다.  한숨 돌렸던 순간 코로나는 이미 우리 집에 들어와 있었다. 아 어쩌지? 우선 저녁을 먹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우리 가족은 여섯, 아직 마스크를 못 쓰는 막내가 15개월이다. 가장 걱정된 것은 말 못 하는 막내가 아플 것과 시간을 두고 늘어질 릴레이 확진이었다. 최근 동거가족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바뀌어서  와중 9살 첫째와 7살 둘째는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겠다며 마스크를 쓰고 셋째를 옆으로 오지도 못하게 다.우리의 코로나 확진자 셋째는 오늘따라 막내 들판이한테 자기가 먹던 음식까지 나눠주며 너무 친절했다. 속으로 외쳤다 '그만 친절하시게... 너 확진이래.'

   아이의 증상이 나타난 지 째라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등교와 등원을 중지하고 평소처럼 함께 생활하기로 했다. 남편이 음성일 경우 출근을 해야 해서  혼자 도움 없이 세 아이를 챙기며 4살 사내아이를 철저히 격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늘이 도왔나? 코로나가 아닌가?

  다음 날 남편의 출근을 미루고 온 가족이 보건소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자가 키트와 신속항원의 오진 사례가 많았기에 확실히 하고 싶어 pcr로 선택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첫 검사와 격리 해제 전 두번의 검사 모두 가족 전원이  음성이었다. 이미 확진자가 한둘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모두 음성이었고 격리기간 동안  아무도 증상도 없었다.  형제들과 잠자리 분리와 식기를 따로 쓰는 만이 나름의 집안 방역였고 다른 아이들은 코로나에 걸리기 싫다며  잘 먹고 잘 자며 몸을 챙겼다.      


코로나가 아니기엔 평소와 달랐다.

  아이는 오미크론의 대표 증상이라는 기침과 콧물도 없었다. 열은 해열제를 먹으면 얕게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잘 때만 코가 막혀서 잠을 설쳤고 기운 없고 투정이 심했다. 표현 좋은 4살 아이에게 아무리 물어도 목은 아프다고 지만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좋아하는 막내 사탕을 꺼내 줘도 입만 데고 그대로 쥐고 있었다. 며칠 만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입에 넣어주어도 한입 먹어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물고있 뱉어 버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아이는 평소 아플 때와 많이 달랐다.  4-5일이 지나서야 먹으려는 마음이 조금 돌아왔지만 어느 날은 20시간 내리 잠을 잤다. 열이 완전히 내리고 이틀쯤 지나서는 온몸에 열꽃 두드러기 올라왔다.


  델타와 달리 오미크론은 증상이 경미하고 대부분 아이들은 2-3일의 고열 뒤 멀쩡해지며 크게 고생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미크론을 앓은 어른들도 대게 극심한 목 통증을 호소한다고 들었다. 경미해진  증상이 이 정도라면 초기 코로나는 과연 어떤 바이러스였을까?


이 와중에 좋은 것도 .

  남편은 작은 회사에서 사장님과 오랜 시간 둘이 일했다. 자영업과 비슷한 작은 규모의 사무실이라 20년 넘는 근무기간 동안 신혼여행 말고는 네 번의 출산 당일도 출근을 다. 그러나 사장님은 코로나 매우 조심하셔서 아이가 확진되었다고 하니 먼저 출근을 말라고 셨다. pcr 결과도 음성이었고 자리를 마냥 비울 수 없는 남편은 사장님과 마주치지 않게 오전에 출근하여 급한 일을 처리하고 이른 퇴근 후 집에서  점심식사를 다. 덕분에 나는 가장 걱정했던 외로운 독박 육아 격리에서 구제되었다. 오후에 남편과 커피 한잔을 놓고 있으면 선물같은 평일의 낯선 시간이 좋았다.

   셋째의 몸에 바이러스가 얼마나 숨어있나온건 모르니 내 몸에도 숨어있다 비집고 나올 바이러스를 봉쇄하기 위해 나도 체력이 떨어 않도록 남편이 있는 틈에 잘 먹고 낮잠도 챙겼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다행히 우리 가족은 셋째만 온갖 고생을 하며 온 가족이 pcr 음성결과를 받으며 격리가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셋째의 pcr를 요청했지만 확진자로 등록되면 재검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일반 감기와는 참으로 달랐다. 가족 모두가 슈퍼 면역자인지, 이게 무엇인지 몰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훅’ 치고 들어온 코로나를 이렇게 만나고 이 정도로 마무리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음성이라하니 조심하는 마음은 접을 수 없다.

 

  미심쩍은 코로나 격리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 가족은 진정한 포스트 코로나 시즌에 들어선 것 같다. 입소를 하고 걱정되어 달째 보내지 막내도 이제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 셋째가  회복되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한적한 곳에 나들이를 가야겠다. 코로나 속에서도 아직 봄이니까 말이다.


                             

격리해제  후,

좀 늦게 핀 동네 꽃구경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 )


매거진의 이전글 제사상에 대한 마음의 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