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에 ‘달구지를 끌고’라는 그림책 서평을 썼다. 매년 같은 계절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농부의 일 년을 표현한 아름다운 책이다. 평범한 날도 의미 있다, 한 해를 성실히 보낸 나에게 주는 선물의 마음으로 글을 썼다. 아이들을 돌보며 글을 쓴 지 지 1년이다. 그게 마지막 글이었다.
글은 주로 막내 낮잠 시간에 썼는데 아이는 낮잠이 줄고 해맑은 얼굴로 종일 놀아 달라했다. 그래도 써 보려고 지난겨울에도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지만 방학 중 학교에 갔다 오는 첫째의 픽업 시간과 겹쳐 결국 수강취소를 했했다. 도저히 혼자 못 오겠단다. 그 겨울, 나의 글쓰기가 멈추었다.
글벗들의 채팅방에 가끔 나누는 소식만이 쓰기에 대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재촉했다. 처음 한두 달을 써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그 마음도 사라졌다. 이대로 영영 글쓰기와 멀어질 것 같았다. 겨울이 깊도록 일상은 그런 생각의 틈도 없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이들은 겨울 병치레를 하느라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아프려면 한 번에 아프지 꼭 돌아가며 아팠다. 폭증하는 코로나 확진자를 조심한다고 어린이집은 가는 둥 마는 둥 하여 나의 겨울은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였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확진자가 솟구칠 때도 코로나를 피했는데 드디어 4월 초 셋째가 확진되었다. 다행히 가족 내 추가 확진 없이 격리 해제 후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몸속에 남아있던 바이러스가 차례로 고개를 들며 모두의 확진 릴레이가 시작됐다. 두 번째 격리 때는 며칠이 지나도록 혼자 멀쩡한 첫째가 얼른 확진이 되어 긴 격리가 끝나길 바랬다.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쓰지 못하는 동안 예쁜 표지의 책 한 권이 유일하게 나를 위로했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2020) 어렸을 적 읽었던 세계 명작 속 음식들을 주제로 쓴 산문집이다. 책을 읽으면 지친 나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옷장에 고이 숨겨둔 하얀 빵을 상상하던 12살의 나로. 작은 아씨들에서 친구들을 초대한 파티 준비로 설레던 막내딸 에이미가 되는 상상으로 잠시 숨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책과 글을 좋아하게 된 시작이었다.
나에게 겨울이 길고 봄은 늦었다. 그리고 늦은 봄 다시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강의를 듣는 이유를 묻자면 쓰기의 공백 후 돌아올 곳으로 온 것이다. 함께 모여 쓰고 나누는 힘, 정해진 과제 마감 기한이 쓰게 하는 최고의 원동력이다. Zoom 화면에는 익숙하고 반가운 분들이 있었지만 다시 돌아온 나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만큼 긴장됐다. 1년 된 쓰기 짬밤 경력자의 부담감일까 쉬운 질문에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긴장 속 첫 수업이 끝나고 과제로 자기소개가 주어졌다. 익숙하지만 항상 고민인 글, 바로 이 글이다.
나는 처음 글을 쓰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계속 쓸 것이다. 이팝나무가 만개한 늦은 봄날 뒤늦은 올해의 글쓰기 목표를 정했다. 이 수업의 끝에. 한 해의 끝에 글 속에서 ‘존버 하는 나’를 만나고 싶다. 글 속에 ‘존재하며 버티는 나’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