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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Jun 10. 2022

단단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존심에 부러지지 않고 유연한 대처

  지난주 아이에 관한 모임이 있었다. 나에게 예방 주사 같은 만남이었다. 대화가 오가고 한참이 지나 조심스레 본론이 나왔는데  큰 아이가 동네 친구들과 하는 수업에서 오해가 생겼다고 했다.  중심에는 ‘내’가 있었고,  안에 내 모습은 천천히 함께 가자 팀을 꾸려 놓고 내 아이만 부단히 연습시켜  질주시킨 감독이 되어 있었다. 내 아이만 생각해 와해시킨 사람인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숙제도 할 때마다 온 아이들에게 너는 조용히 하라 너는 빨리해라 다그치는 집에서 무슨... 굳이 변이라면 아이가 수업을 즐거워하면서 그간 실력이 늘긴 했다.  작은 오해일 뿐이라며 전해 듣는 이야기는 정제되고 둘러 말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들은 돌이 되어 내 심장을 내리쳤다. 저희가 관두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시간이 꽤 지난 오해라는데 이제야 듣는 이야기에 나는 당황스러워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해를 한 당사자를 매일 웃는 낯으로 마주쳤는데 그런 생각인지는 상상도 못 했다. 아이가 관련된 동네 일에 조심스럽고 겁이 났다. 중간에서 오해를 풀기 위해 애를 많이 썼고 이제는 상대방도 마음이 풀려 팀 해체까지 나왔던 말도 없던 일이 되었다고 다. 해결이 되었고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런 폭풍이 지나간 것도 모르고 나는 마냥 편하게 지내왔다. 중심에 내가 있었다니 우선 상황을 정리해준 것이 고맙고 나도 괜찮다고 했지만 뒤돌아 내 마음을 살펴보니 그렇지 않았다. 몇몇 말 머리에 무겁게 남았다. 그 반추는 나를 고등학교 2학년으로 데려다 놓았다.    


  짝꿍과 친해졌다. 1학년 때 같이 올라온 단짝들은 그대로였지만 예쁜 얼굴의 커트 머리 소녀와 짝꿍이 되며 부쩍 가까워졌다. 그 무렵 수준별 수학 시간까지 같은 반이 되며 떨어질 틈 없이 가깝게 지냈다. 그녀는 항상 손에 땀이 많다고 했고 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했다. 내가 상담자 같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며  훗날 나의 모교 된 곳이 상담으로 유명하다 했다. 1년 원하던 모든 대학에 낙방으로 슬퍼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머릿속에 남아있던 그곳에 원서를 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고 축축한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 반 분위기가 묘했다. 몰랐지만 친구는 시험 불안이 심했다고 했다.  시험 때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사건은 밉지만 친구는 애써 감싸주려 했다. 그러나 예민한 문제이기에 반에서만 덮어지기 어려운 일이 되고 그 아이는 전교에 미움의 불씨가 되었다. 당사자인 커트 머리 아이는 토요일 종례 시간 교탁에 서서 미안하다 했다. 그 고백에 나도 눈물이 났다. 내 울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전교생의 미움이 된 그 아이를 다가가 감싸 주지도 못하고 놓아주지도 못하며 주변을 어기적거렸다.

    그동안 그 아이와 내가 친하게 된 것을 보고 누군가는 내가 속없는 바보라 했고 그 아이가 나를 이용한 거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가 소문이 되어 둥둥 떠다녔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즐겁게 헤헤거렸다. 이제야 한동안 수군거리던 시선이 이해됐다. 당시 같은 반이던 만만한 단짝들에게 가서 따져 물었다. 너네는 왜 나에게 얘기해 주지 않았느냐고? 나만 모르고 다 알았다고 했다. 내가 상처받을까 말을 못 했다고. 그때 나의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반에서 가장 눈치 없는 사람이던 나에 대한 화였을까, 용기 있게 다시 친구의 손을 잡지 못한 비겁한 나에 대한 화였을까? 외롭게 버티던 친구는 자퇴했고 나는 한동안 기분 나쁘게 슬펐다. 18살의 꺾여지고 튕겨진 내 슬픔과 화남은 무엇이었을까?      


  이 일이 생각났을까? 알지 못하게 돌아다녔을 발 없는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 나로 인해 마음 불편해진 사람이 있다. 예전 같으면 소란해지는 것이 싫어 오해 마시라 내가 돌아서겠다 하지만 즐거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이제는 나만 생각하여 결정할 수 없다.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어리숙하게 약한 내 마음을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오늘 이야기가 내 안의 18살의 소녀를 건드렸다.


  이제 나는 어른이고 아이의 보호자이다. 주변 이야기에 휘둘려 친구에게 선도 악도 되지 못한 채 어물쩍 손을 놓아버린 18살이 아니다. 오해에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존심에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그 만남을 마주하고 싶다. 진솔함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마주해야 할 만남을 덤덤히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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