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by 조용희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여행’ 이었다. 2015년 1월 겨울방학에 생애 첫 여행을 영국으로 떠났다. 매형이 주재원으로 영국에 계셨기에 누나가 예전부터 방학 때 영국에 놀러 오라고 노래를 불렀다.


누나의 목적은 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라는 것보다는 조카를 같이 돌보고 집안일도 어느 정도 분담해주길 바랐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보다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한 달 이상 숙박비를 내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누나의 어떤 목적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주 감사히 말이다. 심지어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이 식더라도 꼭 챙겨 오라 하였고 순순히 간장 치킨을 공수해 갔었으니...


큰 캐리어 두 개와 가방까지 메고 갔던 나로서 수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입국심사는 무사히 마치고 짐을 모두 들고나가는데 경찰이 다가와 나를 불러 세워 이것저것 물어봤었다. ‘누나가 뉴 몰든에 살아요’ 이 한마디에 쿨하게 보내줬지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봐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처음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짐을 갖고 나갔을 때 ‘외제차가 정말 많아서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외국이니깐 당연히 외제차가 많은 것인데 첫 해외여행이어서 그런지 당연한 것이 나한테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영국의 첫 느낌이다.


‘차선이 우리와 반대로 좌측 방향이 진행 방향인 것(차 핸들은 우측)‘, ’콘센트가 다른 것‘ 등 한국과 다른 것들이 많았고 이는 신선하면서도 재밌었다. 나는 원래 있던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비교하곤 했다. 좋은 의미에서 비교 말이다. 건축물들도 한국과는 달라서 더 관심이 갔고 이는 곧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영국에서 생활은 주로 오전에 조카와 놀아주고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채운 뒤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뉴 몰든(근교)에서 워털루(런던) 역까지 기차 타고 약 20분 정도 걸렸고 워털루 역에서부터 영국 탐방은 시작되었다. 런던 시내는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으므로 주로 두 다리를 이용해 걸었다. 영국에 오래 머물 것이기에 관광에 급할 것이 없었고 하루 한곳만 보더라도 아쉬움 없이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살면서 그 어느 여유들 보다 여유로웠다.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코벤트 가든, 피커딜리 서커스, 타워브릿지, 빅벤, 런던아이, 세인트폴 대성당, 버킹엄 궁전 등 영국의 주요 랜드마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사진 찍어 간직했다. 영국의 모든 것이 신비로웠고, 외국 영화에서만 볼 수 있던 건축물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중에서도 빅벤, 타워브릿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밤에 집으로 돌아와 찍은 사진으로 일기 쓰는 노트에 그리기 시작했다.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로 말이다.


갑자기 왜 그렸는지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까지 미술학원, 미술과외를 했지만 이후 10년 정도 손을 놨었기 때문에 잘 그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냥 그렸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그린다는 것이 중요했기에. 하지만 처음 그렸을 때는 너무 대충 해서였을까 별로였다.


당시 그림을 꾸준히 그리진 않았지만 가끔 그리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모두들 잘 때 홀로 부엌 식탁에 앉아 그리곤 했다. 일기 노트에 담긴 그림들 중 제일 심혈을 기울였던 그림은 파란색 펜으로 그린 ‘타워브릿지’이다. 명암이 하나도 맞지 않지만 나름의 정교함이 있고 그리고 누가 봐도 ‘타워브릿지‘였다. 그때 그림의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다 그리고 누나한테 보여주면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 그림을 완성했다는 것에 대한 대견함과 나름의 느낌이 있어 오는 뿌듯함이 가장 큰 그림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즉, 자기만족이었다.


그림을 완성하고 다시 내 그림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았다. 어떠한 일을 시작하고 끝낸 것에 대한 성취감도 어느 정도 있었고 내가 그렸다는 게 신기했다. 영국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게 시작되었고 새로운 여행지에서 나만의 추억을 간직하고자 사진을 담아와 카페나 음식점에서 그리고 다시 찍었던 배경과 나의 그림을 함께 사진으로 담곤 했다.




런던의 타워브릿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국 여행', '드로잉'에 관한 글을 쓰고 싶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