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여행을 기록하는 법

여행에서 쓴 일기가 가져다주는 가치

by 조용희

초등학생 방학이 끝나갈 때, 밀린 일기 수십 일치를 한 번에 적어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손은 아프고 시간은 없고 쓸 글은 떠오르지 않는 ‘멘붕’ 상태에 빠진다. 방학 초기에야 매일 꾸준히 기록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미루게 된다. 뒤늦게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지만 하나도 떠오르는 게 없어 상상과 실제 있었던 일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일기 쓰는 때가 있다. 바로 ‘여행할 때’이다. 엄밀히 말하면 해외로 떠난 여행에서 가급적 일기를 모두 쓰는 편이다. 국내가 아닌 굳이 해외에서 여행했을 때를 기록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국내는 마음먹으면 다시 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서이고, 해외를 다시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2015년 첫 해외 여행지였던 영국에 갔을 때, 들뜬 마음에 있었던 일들을 글로 남기고자 얇은 캠퍼스 노트를 사서 갔다. 항공권 표부터 시작해서 뮤지컬 입장권, 기차표, 주차표, 미술관 입장권, 심지어 영수증까지 일기에 붙여져 있거나 끼워져 있다.


일기 속 기차표.jpg


일기 속 항공권.jpg


여행을 기록하는 방법 중 사진, 동영상만큼 찰나를 잘 담아내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풍경이라도 여러 번 찍을 만큼 사진을 많이 찍고 담아온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러니하게도 찍은 사진들을 잘 보게 되진 않았다. 너무 많아서였을까. 가끔 일이 있을 때 사진첩을 열어 보는 정도였다. 오히려 빈도 측면에서 더 자주 본 것은 ‘일기’였다.


일기, 한자어 그대로(日 날 일, 記 기록할 기) 그 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이라는 뜻을 충실히 따랐다. 상대적으로 나의 감정을 많이 담기보다는 서사적인, 즉 시간별로 있었던 사실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쓰는 편이다. 일기를 자주 쓰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있었던 일, 중간중간 느꼈던 감정들을 조금씩 담아 손수 펜을 꽉 쥐고 써 내려갔다. 훗날 다시 보면 그때 있었던 일들이 생생히 떠올라서 잠시 행복했던 여행 추억에 잠기곤 한다.


여행 당시 일기를 썼던 이유는 여행했을 때의 여러 일들을 까먹지 않고 기억해내고 싶었고 좋았던 순간들을 글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목적이 있었기에 숙소에서 자기 전이나 일어난 뒤 나가기 전, 혹은 기차로 이동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썼다. 쓸 당시에는 갖은 이유로 안 쓰고 싶기도 했지만 여행이 끝나면 다시 쓸 일이 없을 거고 무조건 후회한다는 생각으로 썼다. 지나고 보니 어떻게든 쓰길 잘했다 싶다.


직접 쓴 일기가 ‘나만의 책’이 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두껍고 좋은 노트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여행할 일수에 따라 두께가 달라지겠지만 천 원대의 가격인 캠퍼스 스프링 노트면 충분하다. 가볍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 편하고 시간 날 때마다 기록하면 되니 말이다. 여행 갔을 때 추억을 흩어 날려버리지 않고 모두 모을 수 있는 ‘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일기 모음들.jpg 여행 때 썼던 일기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7. 꾸준함이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