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드로잉을 하면 보통 수채화로 채색하진 않는 편이다. 뭐랄까 펜 드로잉으로 끝낸다면 이후에 수채화를 하거나 그대로 두거나 하는 선택지가 있지만 바로 수채화를 해버리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펜 드로잉을 해놓고 이를 스캔해서 출력한다면 그것을 가지고 다양하게 시도해보면서 느낌을 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본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얘기지만, 순수 펜으로만 그림을 담았을 때 주는 느낌이 묘하다. 채색되진 않았지만 볼 때마다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하다. 드로잉을 바라봤을 때 보는 주체의 마음이나 생각에 따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드로잉을 하다 생긴 꿈 아닌 꿈은 '펜 하나만으로 채색의 느낌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글로 표현하면서도 무슨말인가 싶어 웃음이 나와 미소가 살짝 지어졌지만, 펜 하나로 색채감을 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가 없다. 다만 펜 획의 빈도, 쌓여감을 조절하여 명암(빛의 방향, 거리에 따라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
올해 5월 중순에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연필로 밑그림을 하고 펜으로 채워나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페에서 혹은 집에서 마무리 해 나갔고 며칠에 걸쳐서 완성했다.
완성한 채로 1주 지나서 문득 이번 그림에는 수채화로 채색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내가 바랐던 펜 하나만으로 채색의 느낌이 유독 안 났기에. 작은 크기의 종이(10.5cm x 15.5 cm) 위에 그려서인지 선 하나 하나를 세밀한 느낌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수채화를 하기로 마음먹고 잔디에서 부터 성당, 하늘까지 표현해 나갔다. 물감에 물의 양을 조절해 색의 강약을 조절한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여러 색을 섞기도 하지만 물의 양으로도 명암 차이, 색감을 입힐 수 있다보니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완성하고 나니 펜 드로잉 작품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