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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런던 프림로즈 힐에서 드로잉

'동행' 구하기의 어려움

by 조용희

프림로즈 힐에서 드로잉 (2019)

작년, 영국으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나름대로 유럽 여행을 적당히 가본 쪽에 속했지만 돌이켜보면 줄곧 나 혼자만 다녔었다. 바르셀로나 여행 갔을 당시 유로 자전거나라에서 하루 가우디 투어 때 친해진 분들이랑 다음날 같이 다닌 것을 제외한다면 모르는 사람과 동행해본 적은 없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무래도 익숙하기도 하고 편해서 누구와 같이 다니는 것을 크게 생각 안 해본 듯하다.


지인들은 '유랑'이라는 카페에 가입해서 여행 온 사람들이랑 만나 동행할 수 있어서 좋다고 얘기해줬다. 이번 여행에서 동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 하루 여행을 마치고 밤에 간단히 맥주 한잔하며 마무리하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각자의 고민이나 여행 이야기들을 나누면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기에.


'동행'을 구한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지 몰랐다.


내가 글을 올리기는 좀 그렇고, 누가 올려놓은 '야경 보며 맥주 마실 분~' 류의 글에 댓글을 달거나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나만의 필요조건은 4명 이상이었는데 그래야 어색함도 없고 이야깃거리도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림로즈 힐에 가려는 계획을 잡은 날, 영국에 온 지 3일 차였다. 프림로즈 힐이라는 곳에서 야경과 함께 맥주 마시며 얘기하면 좋겠다 싶어 쪽지를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왔다. '5명 이상인데 프림로즈 힐에서 보실래요?'라는 물음에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고 시간 및 위치를 남겨달라고 얘기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림 그릴 도구들도 챙겨서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유를 모른 채 그렇게 '동행'이라는 것에 반감이 생겨버렸다


'다시는 동행 구하지 않아야지..'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은 나는 다짐에 다짐을 더했다.


그래도 프림로즈 힐에 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프림로즈 힐에서의 풍경이 나를 위로해줬다.


프림로즈 힐
프림로즈 힐

오후 8시 가까이 도착했는데도 아주 밝았고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림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언덕 위쪽에 가서 앉아 그리기 시작했다. 맥주 대신 생수와 함께.


보통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현장감 있게 그곳에서 담고 싶은 마음에 펜으로 빠르게 그려나갔다. 프림로즈 힐에서의 일정이 마지막이었으나, 늦은 시간인 만큼 해가져 어두워지면 그림을 못 그리기에 스스로 빠르게 그려나가야 했다.


그렇게 현장감 있게 담은 후 나만의 인증을 하고 본격적인 풍경 감상을 쭉 하게 되었다. 해질 무렵, 파스텔 톤의 분홍빛이 보라색을 넘어 남색으로 뒤덮일 때 비로소 런던의 불빛들이 부각되어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렇게 이번 하루도 홀로 여행을 마감했다. 혼자가 편하고 좋다.

프림로즈 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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